쿠데타 이후 더 위험해진 미얀마의 전태일들.."글로벌 패션 산업 노동 착취 더 심해져"
군부·기업 유착 사례 가산어패럴 언급
미얀마 군부가 지난해 2월 선거에 불복해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현지 의류업계의 노동 탄압과 인권침해가 심해지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자라, H&M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의 하청기업과 군부가 결탁해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겨냥한 불법적 체포가 이뤄지고 있으며, 임금체불 등의 불법 행위를 묵인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글로벌 기업윤리 감시단체인 ‘기업 및 인권 리소스 센터’는 25일(현지시간) 쿠데타 이후 미얀마 의류업계 노동인권 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미얀마 의류 노동자 6만8000명이 지난해 2월 이후 최근까지 겪은 104건의 인권침해 사건을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조사 대상 노동자들은 아디다스, 자라, H&M, 유니클로 등 33개 이상 글로벌 패션기업의 하청 공장 70여곳에 고용된 이들이다.
보고서는 “쿠데타 이후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국제 공급망에서 광범위한 조직적인 학대가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유형별로 보면 임금삭감 및 미지불 등 임금 관련한 착취가 5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가혹한 업무량 할당과 강제 연장근로(35건)·모욕·학대(35건) 순이었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폭력과 괴롭힘(28건)도 급증했다. 법정 최저임금은 일 3.5달러 수준이지만 쿠데타 이후 많은 노동자가 일 2달러 이하를 받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노조에 대한 탄압도 극심해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최소 55명의 노조 지도자가 사망하고 301명의 활동가와 조합원들이 체포됐다. 노조 활동에 대한 공격(31건)과 노동자 임의 체포·구금(15건)도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보고서는 피해자들이 보복을 두려워해 실태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알려진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청 기업별로 보면 자라와 베르쉬카를 소유한 스페인 기업 인디텍스 그룹이 9건으로 가장 많았다. 덴마크 기업 베스트셀러(9건), 독일의 저가 유통업체 리들(8건), 스웨덴 기업 H&M(6건)이 뒤를 이었다.
한 노동자는 “여러 면에서 노동법 위반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야근해야 하고 욕설을 감수해야 했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 현재 급여로 적절한 생활을 할 방법이 없다. (원청) 브랜드들이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노동인권 탄압은 기업과 군부의 공모로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18개월 동안 광범위하게 노동법 위반이 벌어졌어도 고용주들이 거의 처벌받지 않았던 것이 단적이다. 특히 지난해 11월부터 기업이 군부와 적극적으로 결탁했다고 진단했다.
미얀마 군정은 지난해 5월 쿠데타에 저항하는 노조 활동가들을 체포하기 위해 양곤에 있는 한국 기업 가산 어패럴 공장을 급습했다. 가산 어패럴은 인디텍스 등 원청 기업의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공장 관리자들이 군부 인사로 추정되는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이들이 노조 간부들의 이름을 군부에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가산 어패럴에서 임금삭감 등에 반대해 35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자 지난해 11월 트럭 5대에 나눠 탄 군정 보안군이 공장에 투입돼 신속하게 파업을 진압했다. 코 트윈 아웅 가산 어패럴 노조위원장에게는 징역 3년이 선고됐다. 보고서는 이 무렵을 기점으로 미얀마 전역의 의류공장에서 광범위한 노조 탄압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의류노동자들은 쿠데타 직후부터 군부에 가장 강렬하게 저항한 집단이었다. 미얀마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저임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브랜드들의 하청기업을 유치하면서 의류업이 급성장했다. 전국 350곳의 공장에서 70만명이 일하고 있으며 노동자 90%는 여성이다. 2011년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노조활동이 합법화되면서 의류업계 전반에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군부는 노조의 불복종 운동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얀마에서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의류산업 노조는 많은 인원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디텍스는 군부 유착설이 불거지자 가산 어패럴에서의 생산을 중단했으나 여전히 미얀마 전역에서 많은 하청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인디텍스는 보고서가 발표되자 성명을 내고 “우리는 공급업체 및 주요 파트너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노동자에 대한 공정한 대우와 노조 지도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하청 선택 기준에서 중요한 조건이라고 밝혔다. H&M은 “미얀마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위반 사항을 파악하고 적절하게 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산 어패럴 관계자는 군부와의 결탁은 오해이며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미얀마 투자청(DICA)과 주미얀마 한국 대사관이 지난해 11월 경제 관련 행사를 공동개최하고 가산 어패럴이 참여해 시민사회의 비판이 쏟아졌을 때 당시에도 대사관과 가산 어페럴 측은 “유착설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기업 및 인권 리소스 센터의 노동권 담당 연구원인 알리샤 캄베이는 국제 인권단체들이 쿠데타 이후 글로벌 브랜드들에게 미얀마 철수를 요구했던 사실을 거론하며 “공급망에서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보장할 수 없다면 책임 있는 퇴출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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