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 초기" vs "경기 부진 아냐"..경제학계는 논쟁 중 [조미현의 외환·금융 워치]
고(高)물가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경기 진단을 두고 공개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강력한 고용 시장을 고려할 때 지금은 경기침체가 아니다"라고 했고,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 경제가 연착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반박했다.
한국에서도 경기 침체론을 둘러싼 경제학계의 논쟁이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 경제학자 모임 가운데 최대 규모인 한국경제학회는 지난 11일부터 25일까지 '스태그플레이션'을 주제로 온라인 경제토론을 진행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물가 상승과 경기 부진이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과반인 54%는 '징후가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진입 단계다'라고 답했다. 반면 41%는 '인플레이션은 존재하나 경기 부진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5%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라고 밝혔다.
윤영진 인하대 교수는 "산업생산 등 지표를 볼 때 경기는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견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스태그플레이션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승덕 성균관대 교수는 "그간의 잠재성장률 그리고 앞으로 경제가 움직일 경로를 고려할 경우 경기 부진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대내외 경제환경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곽노선 서강대 교수는 "아직 본격적인 경기 부진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공급 측면의 충격(인플레이션 충격)이 지속될 경우 잠재성장률을 하회할 우려가 존재한다"고 했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물가는 상승하고 있으나 아직 본격적인 경기후퇴가 시작되지 않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초기 진입단계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 자체는 진행 중인 상황으로 이러한 측면에 따른 위험성과 불안 요인이 반영돼 외환시장과 금융시장 불안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가 상승의 원인과 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82%가 '유동성 이슈와 비용 충격이 함께 발생해 물가 상승이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응답자의 13%는 '물가 상승이 있으나 기준금리 인상을 통한 유동성 회수로 안정화 가능하다'고 봤고, 5%는 '비용 상승 충격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유동성 회수의 필요성과 효과는 크지 않다'고 봤다.
어윤종 고려대 교수는 이와 관련 "정부는 유류와 농산물을 중심으로 한 물가안정화대책을 유지하여 물가상승이 경제 전체로 확산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며 "유가 상승에 큰 영향을 받는 저소득층과 화물차 운전자 등에게 에너지 비용을 직접 지원하거나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할 수 있는 정책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 경기 상황에 대한 진단과 전망과 관련해서는 '현재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하고 경기 부진 우려가 있다(47%)'와 '현재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웃도나 긴축 통화정책으로 하회할 수 있다(43%)'가 팽팽히 맞섰다. '현재의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 일시적으로 못 미치는 수준으로 곧 개선될 것이다(5%)',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 나타나지 않아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3%)',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의 경기과열이며 이로 인해 물가도 오른 것이다(3%)'라는 응답도 있었다.
허석균 중앙대 교수는 "현재 여러 기관이 예상하는 성장률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에 비해 낮지 않아 보인다"며 "향후 긴축적인 통화정책 기조가 강화되면 이로 인해 성장률이 아래쪽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홍기석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은행의 추정치에 의하면 GDP 갭은 0에 가까운 수준까지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데 힘을 실었다. 국내총생산(GDP)갭은 실질 성장률과 잠재성장률 차이 정도를 보는 지표다.
현재 상황에 대한 진단과는 별도로 스태그플레이션의 경우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는 '물가-임금 소용돌이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 고착화(28%)', '자산 가격의 변동성이 커져 자산시장이 불안정해지면 발생하는 금융시장의 위험 증가(21%)', '일자리 축소에 따른 빈곤 증가와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로 불평등 심화(18%)', '경기 대응에 지나치게 초점을 두면서 경기 악화가 심화하는 상황(13%)'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학회의 경제토론은 미국 시카고 대학의 IGM 포럼을 모델로 해 한국 경제 현안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견해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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