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에 외벽 타고 노트북까지 해킹, 기말시험지 빼돌린 고교생들(종합2보)
'솜방망이' 처분 4년 만에 파문 반복, 방범설비·CCTV조차 없어
(광주=연합뉴스) 전승현 정회성 기자 = 광주 대동고등학교에서 발생한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답안지 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교무실에 침입한 재학생 2명을 잇달아 피의자로 입건했다.
학생들은 담당 교사들의 자리를 특정하고 늦은 밤 교무실에 침입, 출제에 쓰인 노트북(랩톱) 컴퓨터를 해킹했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해 학생이 교사의 컴퓨터에 접근하고 답안을 빼낸 이례적인 범죄가 발생한 학교는 2018년에도 시험문제 유출 파문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심야에 4층 외벽 타고 교무실 침입
광주 서부경찰서는 26일 건조물침입, 업무방해 등 혐의로 A군 등 대동고 2학년 재학생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A군 등은 최근 기말고사를 앞둔 출제 시기 교무실에 침입, 교사들 컴퓨터에 악성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갈무리한 화면 내용을 며칠 뒤 회수하는 수법으로 시험 문제와 답안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교사들이 퇴근한 심야 시간대 잠금장치가 해제된 4층 창문을 통해 교무실에 침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건물 4층 내부까지는 계단으로 이동했고, 외벽 돌출부와 창밖 추락 방지봉 등을 디딤대와 난간 등으로 사용했다.
지구과학, 한국사, 수학 Ⅱ, 생명과학 등 4과목의 출제 자료를 컴퓨터에서 회수할 때도 같은 경로를 이용했다.
경찰은 A군 등이 해당 과목 담당 교사 자리를 미리 파악해 교무실에 침입한 것으로 확인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않는 A군 등은 기말고사 문제와 답안을 빼내기 위해 야간에 다시 학교를 찾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정확한 침입 일시는 추가 조사를 통해 파악할 예정이다.
노트북 비밀번호까지 무력화
경찰은 A군 등이 출제 단계의 미완성 문제뿐만 아니라 답안지 작성 당시의 컴퓨터 작업 화면 갈무리 자료도 함께 빼돌린 것으로 확인했다.
노트북 화면을 수초 간격으로 갈무리한 사진 자료가 방대해 필요한 내용만 선별해 회수, 시험 문제와 답안 조합을 짜 맞추는 과정을 거쳤다.
A군 등은 선택 과목을 포함해 이번 기말고사에서 각각 8과목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나머지 4개 과목의 문제와 답안도 A군 등이 빼냈는지 파악 중이다.
범행에 이용한 악성 프로그램은 입건된 학생 가운데 '해커' 역할을 한 B군이 제작했다.
B군은 인터넷에서 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여러 기능을 더해 맞춤형으로 완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트북마다 설정된 잠금 번호를 무력화한 방법도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확인했다.
경찰은 B군에게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추가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컴퓨터 활용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A군은 범행 당시 교무실 바깥 동태를 살핀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완전범죄' 목전서 들통난 범행
B군은 문제와 답안을 빼낸 과목의 풀이 과정을 완전하게 숙지해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유출된 4과목 가운데 B군은 지구과학과 수학Ⅱ 등 2과목에서 만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출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나머지 과목에서 B군은 40점대와 60점대 등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은 B군과 달리 A군은 지난 11∼13일 기말고사 기간 4과목 시험지 모퉁이에 작은 글씨로 답을 적어 '커닝페이퍼'로 활용했다.
A군은 이 쪽지를 시험이 끝날 때마다 잘게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이러한 태도를 수상하게 여긴 동급생들이 조각을 주워서 퍼즐처럼 맞춰 정답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A군은 지구과학과 수학Ⅱ 각 100점, 한국사 93점, 생명과학 86점을 받았다.
생명과학 과목은 4개 문제의 정답이 시험 출제 이후 바뀌었는데 정정 이전의 답안을 A군이 적어 내면서 결과적으로 오답을 제출해 만점을 받지 못했다.
생명과학 4문제 정답이 정정되지 않았다면 100점을 받을 수 있었다.
학교 측이 자체 인지하지 못한 사이 여러 수상한 정황을 일부 학부모가 시 교육청에 신고하면서 답안 유출 의혹 파문이 일었다.
경찰은 지난 25일 오전 A군 주거지 노트북 등에서 증거물을 확보하고 자백을 받아 당일 늦은 오후 공범 B군을 추가 입건했다.
1학년 때 A군의 내신은 3.0대인 것으로 전해졌다.
A군 등은 경찰에서 "더 잘하고 싶었다"며 범행을 자백했다.
4년 전 '그 학교'…솜방망이 그쳤던 책임자 처분
시험 출제 과정에서 대동고 측 보안 관리는 허술했다.
올해 2월 이전한 교무실 내부에서는 교장실이나 행정실 등 다른 공간과 달리 사설 경비업체 방범 설비가 가동하지 않았다.
교무실 내부에는 폐쇄회로(CC)TV도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창문도 잠기지 않은 교무실에는 시험 출제에 쓰인 교사들의 노트북이 방치됐다.
대동고에서는 지난 2018년에도 3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 모든 과목 시험 문제가 유출됐다.
당시 행정실장은 운영위원회 회식 자리에서 부탁을 받고 학교 등사실에서 시험지를 빼내 학부모에게 전달했다.
학부모는 빼돌린 시험문제를 재정리해 아들에게 기출문제인 것처럼 건네 아들이 미리 풀어보고 시험에 응시하도록 했다.
지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인데도 학교 법인은 교장에게 경징계인 견책을, 교감과 연구부장에게는 불문경고 등을 처분했다.
학교 법인이 시 교육청이 요구한 징계 양형인 교장 정직 1개월, 교감 감봉 2개월, 연구부장 견책 등을 따르지 않았다.
2018년 사건으로 행정실장과 학부모는 1·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나 당시 교감은 현재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학생들이 교무실에 침입해 교사들의 노트북을 해킹한 사건과 관련해 시 교육청은 조만간 특별감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여 학교 관계자들에 대한 징계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shch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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