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지적하면 '꼴페미'라 공격"..인하대 사건 후 붙은 대자보

김소정 기자 2022. 7. 2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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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학교, 안전한 학교를 세우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길 넘어 ‘뒤늦은 과제’임을 분명히 말한다”

사망 사건’이 벌어진 인하대에 대자보 하나가 붙었다. 대자보를 쓴 익명의 학생 A씨는 그동안 인하대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나열한 뒤 “여성(학생들)들은 화나도 참고 무력감을 느끼며 숨 죽여야 했다”며 “이제 판을 갈 때다. 함께 평등하고 존엄한 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25일 인하대에 붙은 대자보/트위터 '익명의 인하대학교 학생 A' 계정

대자보는 25일에 붙었다. A씨는 대자보를 29일 자진 철거하겠다며,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남겼다. A씨는 대자보에서 “공공연하게 떠드는,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공공연하게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학교 커뮤니티에서, 정치권에서,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떠든다”며 “반면 숨죽여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폭력이 걱정돼 불쾌한 상황에도 ‘친절’하게 살아야 하는 여성들. 이전의 학내 성폭력 사건과 평소 학내 성차별적 문화를 지적하면 ‘꼴페미’, ‘메갈X’으로 공격 당할까 봐 자기를 검열하는 사람들. 그들은 화나도 참고, 무력감을 느끼며 좁은 공간에서 숨죽여 말한다”고 했다.

이어 “이번 사건으로 실추된 ‘위신’은 무엇이냐. 이 학교에서 공공연하게 떠드는 이들의 위신은 너무 무겁게 다뤄지지만 반면 숨죽여 말하는 이들의 위신은 너무 가볍게 다뤄진다. 누구는 ‘갑자기’ ‘상관없는 사람’ 때문에 ‘잠재적 가해자’로 불려서, ‘입결과 학벌’이 떨어져 ‘남성’으로써, ‘대학생’으로서 위신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이들은 공공연히 자기 체면이 무너져 화가 난다 떠든다. 반면 다른 누군가는 폭력과 수치가 걱정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낀다. 이들은 숨죽이며 자신과 동료 시민의 안녕을 걱정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번만의 일이 아니다”라며 “남성 의대생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여학우들을 성희롱하고, 남성 총학생회장 후보가 한 여성 학우를 스토킹했을 때도, 한 남학생이 여학생 앞에서 자위행위를 했을 때도, 교내 커뮤니티에서 여성을 조롱하고 헐뜯는 게시글들이 늘 올라올 때마다 누군가는 성별 갈등을 조장하지 말라며, 섣부른 일반화하지 말라며,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며, 우리 학교의 아웃풋과 입결은 그래도 괜찮을 거라며 자기 체면을 걱정하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고 했다.

이어 “반면 누군가는 폭력, 수치를 걱정하며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 권리에 대해 숨죽이며 말했다. 이렇듯 숨죽여 말하는 이들을 보기 앞서, 서로의 안녕을 묻기에 앞서, 수치와 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기에 앞서,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 권리를 말하기에 앞서, 성별과 지위에 따라 구분되는 현실을 보지 않고 자랑스러운 인하대의 역사, 명예, 입결, 아웃풋 따위를 논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했다.

A씨는 “판을 갈 때다. 최근 마주한 전대미문의 사건은 평등한 학교, 안전한 학교를 세우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길 넘어 ‘뒤늦은 과제’임을 분명하게 말한다. 오늘날 학교가 맞은 위기는 무엇을 우선 말하고, 우선 듣고, 우선 답해야 하는지 가리지 못해 벌어졌다. 뻔하고 시끄럽기만 한, 내용 없는 소리가 아닌 대안이 필요할 때”라고 했다.

이어 “대안은 지금까지 숨죽여 말한 이들의 목소리, 움직임이 공공연해지기 시작할 때 찾을 수 있다”며 “이제는 숨죽여 말하던 이들이 공공연하게 말해야 할 때다. 함께 평등하고 존엄한 학교를 만들자 제안한다. 이 외침에 대자보로, 포스트잇으로, 댓글로, 행동으로 응답해달라”고 제안했다.

26일 인하대에 붙은 대자보/트위터 '익명의 인하대학교 학생 A' 계정

A씨 대자보 이후, 26일엔 ‘성차별을 성차별이라 부르지 못하고’라는 제목의 또 다른 대자보가 학교에 붙었다. 익명의 학생 B씨도 “인하대 내부는 물론, 여러 대학가에서 여성이 모욕당하고, 물리적, 성적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 끔찍한 장면을 목도하고도 우리는 개인의 일탈, 숨기고 묻어야 할 끔찍한 오류로 치부하기에 급급하다”며 성차별적 대학 문화를 비판했다.

이어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하나 단편적으로 대응하는 대증요법으로는 이 뿌리 깊은 병은 치유되지 않는다. 온라인 성교육 강의만으로는 너무나 더디다. 성차별이 단순한 감정적 불화나 일부 사람들 사이의 분란이 아닌 중력처럼 이 전체에 퍼져 있는 사회 문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15일 새벽, 인하대 단과대학 5층 건물에서 1학년 여학생이 1학년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추락해 숨졌다. 경찰은 남학생 A씨를 준강간치사 등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학교는 학칙에 따라 A씨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또 전교생을 상대로 성폭력 관련 특별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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