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완화 조짐..금융권은 알뜰폰 관심 커지고, 전문 업계는 걱정 커지고
(지디넷코리아=서정윤 기자)금융당국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공식화하며 은행들의 알뜰폰 업계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중소 알뜰폰 업계에서는 출혈경쟁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구축하는 게 먼저라는 지적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내부적으로 비금융 사업 확장을 논의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제1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열고 금융규제 혁신 추진 방향을 보고했다. 은행의 비금융자회사 지분 소유 15% 제한을 풀고, 업종 제한 없이 자기자본 1% 이내 투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현행 은행법 감독 규정상 은행이 자회사로 둘 수 있는 업종은 은행업, 금융투자업, 상호저축은행업무 등 15개로 제한돼 있다. 제도가 개선될 경우 은행은 자기자본 1% 이내에서 비금융 자회사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비금융 회사에 대한 지분 투자와 인수도 쉬워진다.
■ 금융권, KB국민은행 시작으로 알뜰폰에 관심
시중은행들 중 가장 먼저 알뜰폰 사업에 진출한 곳은 KB국민은행이다. KB국민은행은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시행 이후 지정된 1호 혁신금융서비스로 리브엠을 선보였다. 리브엠은 출시 2년만에 약 30만명의 가입자를 모으는 등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KB국민은행은 리브엠을 토대로 통신과 금융을 결합하며 소비자를 양쪽으로 확보하고 있다. 급여이체 실적이 있거나 청약 상품을 보유한 이용자들에게 리브엠 요금을 월 2천200원씩 할인해주는 식이다.
신한은행도 최근 알뜰폰 업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KT망을 이용하는 KT엠모바일, 스카이라이프, 스테이지파이브, 세종텔레콤 등과 손잡고 제휴요금제 12종을 출시했다. 신한은행 자체가 알뜰폰 요금제를 출시한 건 아니지만, 소비자들은 신한은행의 모바일뱅킹 앱 '쏠(SOL)'에서 요금제에 가입할 수 있다.
하나은행과 NH농협 역시 알뜰폰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앞서 하나은행은 SK텔링크와 손을 잡고 알뜰폰 요금제를 출시한 바 있다. 농협중앙회에서도 지난해 9월 모바일뱅크 'NH콕뱅크' 전용 알뜰폰 요금제를 출시했다.
토스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도 오는 9월 알뜰폰 사업을 선보일 계획이다. 토스는 최근 머천드코리아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토스는 알뜰폰 시장의 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있으며, 복잡한 요금제 가입 등을 간소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다만 토스는 아직 금융상품과 알뜰폰을 연계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토스 관계자는 "서비스 초반에는 요금제 단순화와 가입 경험 개선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금융상품 연계 판매는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과도한 출혈 마케팅은 지양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 "신용평가 고도화" vs "출혈경쟁 촉발"
업계에서는 금융권이 알뜰폰 시장에 진출하려는 주된 이유로 통신상품과 금융상품을 결합해 소비자 이탈을 막는 '락인효과' 극대화를 들고 있다. 또한 통신 데이터를 확보해 마이데이터 시대에 대비하고, 신용평가 고도화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시민들 모두가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신용평가 대안 정보로 통신 데이터를 활용하기도 좋다고 본다"며 "요금제 종류, 통신비 연체 여부 등을 활용해 신용평가를 고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알뜰폰 업계에서는 금융권이 알뜰폰 사업에 진출하는 건 통신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닌 만큼 과도한 출혈 경쟁을 야기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통신업이 주가 아니라 단순히 금융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통신상품을 판매한다면,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 관계자는 "금융업계에서 알뜰폰 분야에 진출한다면 중소 알뜰폰 업계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며 "왜 금융업계에서 알뜰폰 시장에 들어오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금융쪽은 아직 통신 분야에서 규제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시장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며 "시장 자본력을 바탕으로 도매대가 이하의 상품을 판매하는 등 손해를 보면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알뜰폰 업계의 다른 관계자도 "금융업계에서 알뜰폰 사업에 진출한다면 시장 자체가 활성화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서도 "과다경쟁, 망 도매대가 이하로 판매하는 요금제 등 야기될 수 있는 부작용이 많을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금융기관이 개인정보를 사유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보내는 시선도 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사의 음식 배달과 휴대폰 판매 허용이 금융산업의 미래인지 의문"이라며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각종 금융규제·감독을 완화해 취약한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더 약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비판했다.
서정윤 기자(seojy@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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