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경제 확산으로 대·중기 상생협력 틀 무력화
이해 당사자 많아지고 갈등 관계 복잡
플랫폼은 경쟁 관계이자 의존 대상
동반위 "중기 적합업종 지정 최소화할 것"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꾀하는 정책의 대표 격인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제도가 무력해지고 있다. 지정 건수가 미미한 데다 지정에 따른 효과 또한 미흡한 실정이다. 플랫폼 경제의 확산으로 이해관계의 대립구도가 복잡해진 사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
26일 동반성장위원회 누리집에 실린 중기 적합업종 지정 사례를 보면, 올해 들어선 지금까지 ‘자동차 단기대여 서비스업’, ‘대리운전업’ 등 2건 지정됐다. 그나마 자동차 단기대여 서비스업은 2019년 이미 한 차례 지정된 바 있었다. 동반성장위가 중기 적합업종을 지정할 때는 3년 동안 관련 업종과 품목에 대해 대기업의 진입 자제 등을 권고하며, 3년 범위에서 한 차례 더 지정할 수 있다.
적합업종 제도 적용 첫해인 2011년 지정 사례는 23건에 달했다. 김, 김치, 두부, 떡, 순대, 어묵, 막걸리, 세탁비누 등이었다. 이듬해엔 단무지, 도시락, 엘이디(LED)등, 부동액을 비롯한 30건이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그 뒤 들쑥날쑥하던 지정 건수는 2015년 24건을 고비로 하락세를 탔고, 2017년(2건)부터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2020년엔 ‘고소 작업대 임대업’ 1건뿐이었고, 지난해엔 아예 한건도 없었다.
적합업종 지정 사례 감소 흐름에 대해 동반성장위 쪽은 “초기 3년 동안 신청 건수가 300건가량으로 많았다가 이후 대폭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경제 확산 흐름 속에서 근래엔 그나마 조금 늘어 한 해 20~30건 가량에 이른다고 한다. 적합업종 신청·지정 모두 줄어든 상태는 앞으로도 이어지고, 특히 지정 쪽의 감소세는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동반성장위원회 관계자는 “중기 적합업종 지정은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상생 협약을 맺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적합업종 지정 사례는 앞으로도 보기 드물 것이란 예고이며, 적합업종 제도의 무력함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관계자는 “상생이라 하면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과 협력을 기준으로 삼고 (중기 적합업종 지정제의 근거인) 상생협력법(‘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도 그 전제를 깔고 있는데, 플랫폼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사정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대·중소기업 간 단선적인 대립 구도로는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제의 효과에 의문을 품게 한 일은 대리운전업 분야에서 잘 드러났다. 대리운전 서비스 시장에 진입해 있는 에스케이(SK)그룹 계열 티맵모빌리티는 지난달 국내 1위 대리운전 중개 프로그램 업체 ‘로지소프트’를 인수했다. 동반성장위가 지난 5월 대리운전업을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기존 대리운전 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으로는 점유율을 확대할 수 없도록 한 권고 조처를 피해간 행보였다.
전화 유선콜 대리운전 시장에서 중개 프로그램을 제공하던 로지소프트는 다수의 중소 대리운전 업체들과 달리 대기업 플랫폼 업체의 시장 진입을 바라는 쪽이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 T대리’를 중심으로 ‘앱 플랫폼’ 대리운전 시장이 급격히 커져 새로운 성장판을 마련해야 할 처지였기 때문이다. 대리운전 시장에서 카카오와 티맵이 충돌하고 중소 업체들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뚜렷하게 갈라진 양상이라 대기업의 진입 제한을 위주로 한 동반성장위의 조처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웠다.
정기환 중소벤처기업부 상생협력정책관은 “중기 적합업종은 지역 베이스(기반)의 전통적인 오프라인 영업을 보호하는 장치인데 플랫폼 경제에선 지역의 개념이 사라지고, 과거와 달리 플랫폼과 중소기업·소상공인이 서로 얽혀 경쟁하는 동시에 의존하는 관계”라며 “갈등의 양상이 달라 기존 제도로 재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입 제한은 곧 소비자 편익 저하로 이어질 개연성도 플랫폼 경제에서 더 뚜렷해졌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제의 법적 토대가 약하다는 점이 여기에 더해져 제도의 무력감을 키운다. 동반성장위는 상생협력법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으면서도 민간 의결기구 성격이며 조처는 ‘권고’ 형식으로만 내리고 있다. 명백한 한계를 띠는 대목이다.
오영교 동반성장위원장은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나 양극화 해결의 궁극적인 방법은 적합업종 울타리를 치기보다 갈등을 벌이지 않도록 사전적으로 상생의 방안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합업종 지정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마지막에 선을 긋는 역할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오 위원장은 “대·중소기업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기엔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동반성장위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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