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 전 쐐기문자로 뭘 썼을까..한국 찾은 메소포타미아를 만난다

도재기 기자 2022. 7. 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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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첫 메소포타미아 문명전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인류 최초 문자 기록물, 조각과 장신구 등 선보여
"문명 시초 메소포타미아를 이해하는 드문 기회"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내 첫 메소포타미아 문명전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을 열고 있다. 최초 문자인 쐐기문자가 새겨진 점토판 ‘맥아와 보릿가루 수령 내역을 적은 장부’(기원전 3000년경, 사진 왼쪽)와 흙벽돌의 쐐기문자 명문의 세부(기원전 1200년 경).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인류 최초의 문자인 쐐기(설형)문자와 도시들, 이야기의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인류 최고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가장 오래된 법전인 우르 남무 법전과 함무라비 법전, 태음력과 60진법, 수레바퀴와 도르래….

모두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산물이다. 에덴동산과 바벨탑 등 구약성경의 상당수 내용도 메소포타미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대문명 속에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흔적은 유난히 생생하다.

메소포타미아는 그리스어로 ‘두 강(포타미아) 사이(메소)의 땅’이란 뜻이다. 현재 이라크의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사이를 중심으로 기원전 6000년 전후 농경 촌락들이 생기면서 시작됐다. 지금이야 메마르고 거친 사막으로 인식되지만 당시만 해도 기름진 땅, 풍부한 강수량 등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수천년에 걸쳐 수메르, 악카드, 바빌리(바빌로니아)와 앗슈르(앗시리아) 등 도시와 도시국가, 왕조, 제국으로 이어지며 고대 문명의 한 축을 형성했다. 그러나 여러 민족의 정치체가 이어지다보니 다른 고대 문명들보다 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접하기도 어려웠다.

멀게만 느껴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물들이 마침내 한국을 찾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메소포타미아실(3층)에 마련한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회를 통해서다. 이번 전시는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으로 구성돼 2024년 1월 말까지 열리는 한시적 상설전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후기인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도시 바빌론의 ‘이쉬(슈)타르 문’ 등 당시 건축물 장식으로 활용된 채색 벽돌 유물 ‘사자 벽돌 패널’(기원전 600년경).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회에는 지금으로부터 5000년전 수메르시대에 발명된 쐐기문자가 기록된 점토판, 4000년 전의 인물상, 3000년 전후 바빌리·앗슈르시대에 글과 인물 등을 함께 조각한 원통형 인장, 메소포타미아 문명 후기를 대표하는 신 앗슈르제국(기원전 911~612년)과 신 바빌리제국(기원전 626~539년)의 대리석 조각품과 건축물을 아름답게 장식한 채색 벽돌 패널 등 모두 66점을 선보인다.

유구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 기원전 3000년대 후반인 수메르인의 고대 도시국가 ‘우룩’을 중심으로 한 우룩시대부터 기원전 6세기 신 바빌리 시대까지 다뤄진다. 각종 유물을 통해 기원전의 약 3000년 동안 살아간 사람들과 교감하는 자리다.

먼저 눈길을 잡는 것은 축축한 점토판에 갈대를 쐐기모양으로 잘라 새긴 쐐기문자 점토판, 원통형 인장이다. 그림문자에서 발전한 쐐기문자가 처음 만들어진 우룩에서 출토된 점토판 ‘맥아와 보릿가루 수령 내역을 적은 장부’(기원전 3100년 전후)는 당시 도시국가의 중심 역할을 한 신전에서 맥주 양조업자에게 발행한 거래 장부로 추정된다.

구구단 중 5단 곱셈표를 기록한 ‘5단 곱셈표’(기원전 2000년)와 갖가지 상거래 기록, 판결문, 귀 치료 처방전, 상속 내용, 신과 통치자를 향한 찬가 등이 새겨진 점토판들도 있다. 수메르인들은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활용에 앞서 점토판 기록물을 남겼고, 보존성 향상을 위해 점토판을 구워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쐐기문자와 비슷한 시기에 발명된 원통형 인장은 메소포타미아 조형예술의 큰 특징이다. 대리석이나 뼈, 청금석과 마노 등을 원통모양으로 다듬고 빙 돌아가며 갖가지 문양과 글을 새겼다. 이 인장을 축축한 점토판에 눌러 굴리면 도장을 찍은 것처럼 글·문양 판이 만들어진다. 신을 경배하는 사람들, 결투 장면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원통형 인장은 기록 기능을 넘어 점차 소지자의 지위·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전했음을 전시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섬세한 쐐기문자 점토판과 인장들은 당시 사람들의 일상적 삶의 모습과 희로애락의 감정, 가치관, 신앙생활, 경제와 사회상까지 살펴보는 인류의 귀한 사료다.

4000년 전인 신 슈메르 시대의 돌 조각상 ‘구데아왕의 상’(사진 왼쪽)과 2000여년 전 신 앗시리아 제국 당시 석영에 문양을 새긴 ‘이쉬타르 신상에 기도하는 장면을 새긴 원통형 인장’.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관람객의 감탄을 자아내는 대표적 전시품으로 사자가 화려하고 정교하게 표현된 ‘사자 벽돌 패널’(기원전 600년 전후)도 있다. 신 바빌리 제국의 수도이던 고대 성곽도시 바빌론의 웅장하고 화려한 성문 ‘이쉬(슈)타르 문’과 포장도로인 ‘행렬의 길’을 세울때 활용된 장식 유물이다. 세계적 불가사의인 공중정원이 있던 곳이자 성경 속 ‘바빌론 유수’의 무대 등으로도 유명한 그 바빌론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빌론 유적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미군 기지로 사용되면서 크게 훼손돼 국제적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메소포타미아는 유독 벽돌을 많이 활용했는데 특히 채색의 구운 흙벽돌이 인상적이다.

인물 조각상들도 주목할 만하다. 인물의 개성, 사실적 표현을 강조한 일반적 고전 미술과 달리 인물의 지위나 업적에 걸맞은 이상적 모습을 표현했다. 인물상에 이름과 업적을 새긴 것도 한 특징인데 ‘바구니를 인 우르 남마 상’ ‘구데아왕의 상’ 등을 만날 수있다.

무른 대리석에 정교한 조각술로 작업한 각종 부조, 고대 도시 우르의 왕실 묘에서 발굴된 금과 은·보석으로 만든 장신구 유물 등도 살펴볼 만하다.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화적 혁신을 살피고 예술품을 감상하는 자리”라며 “전시장에 마련한 설명문과 관련 키오스크, 영상 자료 등을 적극 활용하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보다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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