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밑바닥 보여준 인하대 성폭력·사망 사건 보도

노지민 기자 2022. 7. 2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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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현장 묘사로 호기심 자극, 커뮤니티 받아쓰기도
잘못된 제목 바꾼 매체들, 고백하고 반성한 한겨레에 호평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인하대학교 교내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사망한 지 열흘, 언론은 또다시 제2의 가해자가 됐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선정적 보도에 대한 문제 제기로 잘못된 사례가 점차 줄긴 했으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보도와 속보 경쟁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난 15일 사건을 처음 알린 보도는 국가기간 뉴스통신사 연합뉴스의 '“인하대서 여성 옷 벗은 채 피흘린채 쓰러져”…경찰 수사' 제목의 기사다. 대학 캠퍼스에 쓰러져 있던 20대 여성이 행인의 신고로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경찰이 사건 경위를 수사하고 있다는 첫 속보였다. 제목에 앞세운 정보는 학교명과 여성의 신체 상태였다.

오전 7시40분경 노출된 기사 제목은 이후 '“인하대서 여성 피흘린채 쓰러져”…경찰 수사'로 바뀌었다. 오전 9시59분 '인하대서 피 흘린 채 발견된 여대생 숨져(종합)'라는 제목의 종합 기사가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시간20분. 그 사이 수많은 매체가 연합뉴스를 받아 썼고, 대다수 제목에 '옷 벗은 채' '탈의 채' '탈의한'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7월15일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 최초 보도와 이어진 보도들 제목. 사진=네이버뉴스 갈무리

같은 날 피해자 사망 소식이 알려졌음에도 피해자의 신체 상태 묘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서울경제 '인하대서 옷 벗겨진 채 발견된 20대女…끝내 숨졌다', 뉴스1 '인하대에서 나체로 피흘리며 발견된 20대 여성 사망…경찰 수사'와 같은 식이다. 이날 하루 네이버 기준으로만 약 227건의 기사가 보도됐다.

인하대 남학생이 가해자로 드러나고 수사가 진행되면서는 구체적 범행을 연상케 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교내에서 발견된 피해자 의류에 대한 보도가 대표적이다. 세계일보는 '여대생 옷', 서울경제와 이데일리는 각각 '속옷' '하의'란 표현을 제목에 썼다. 불가피한 보도가 아니었다는 점은 타 매체의 보도에서 확인된다. 한겨레는 ''인하대 교내 사망 사건' 화장실서 의류 수거해 조사중'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사안을 전했다.

이런 행태는 가해자의 불법촬영 혐의 보도에서도 두드러졌다. 20일 중앙일보는 제목에 '불법촬영' 대신 '그날의 영상'이라 썼다. 21일 민영 통신사 뉴스1(이수정 “인하대 남학생 폰에 왜 '벽'이 찍혔나…성폭행 촬영하려다 일이”) 보도의 문제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건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전문가의 발언 중에서도 범행 당시 상황을 추측하거나 연상하는 대목을 제목으로 뽑았다.

▲7월16일 같은 사안을 전한 한겨레(위)와 이데일리 기사 제목

이는 두 말할 것 없이 취재·보도 윤리에 어긋난다. 한국기자협회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은 “가해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자세히 묘사하게 되면 피해자를 자극적인 성적 행위의 대상자로 연상, 인식하도록 만들어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화”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실천요강도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보도할 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저속하게 다뤄서도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이입할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도 언론 보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된 기사로 사건을 처음 접한 26세 여성 A씨도 “피해자의 성별, 피해 사실을 자극적으로 보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하대 여학생 성폭행 거부하다 추락' 제목을 봤다. 가해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성폭행을 한 것인데, 기사는 피해 학생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또 그것을 자극적으로 보도해 문제라 생각했다”고 했다.

'커뮤니티 받아쓰기' 관행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재생산하기도 했다. 지난 18일을 기점으로 몇몇 매체가 피해자의 신상을 캐묻는 듯한 인하대 커뮤니티(에브리타임) 게시글을 기사화했다. 뉴스1은 기사 제목에 “학교 명예 어떡해” “예쁜지 궁금”과 같은 노골적 2차 가해성 발언을 붙였다.

▲7월18일 인하대에 마련된 피해자 추모 공간. 사진=연합뉴스

25세 남성 B씨는 “'또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 보도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커뮤니티를 그대로 기사화하는 사례는 줄어야 하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정작 필요한 보도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도 있다. “가해자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또 왜 학교는 이걸 막지 못했는지, 이후 대책은 뭔지 학교의 책임 측면에서도 보도해주면 어떨까”라는 것이다.

B의 지적은 '인하대' 학교명 공개가 용인된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은 피해자의 학교를 비롯한 개인 신상을 보도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최초 보도로 대학명이 알려진 측면이 있지만,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무게가 더 중시돼야 한다. 인하대는 학내 성폭력과 사망 사건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할 핵심 당사자다.

앞서 인하대가 대책으로 낸 폐쇄회로(CCTV) 확대, 야간 통행 금지 등은 본질적 대응이 아니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이 문제에 집중한 보도는 손에 꼽을 수준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일 “인하대 내에서 성폭력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어 왔으며 대학 내 공동체 문화는 어떠했는지, 학생 커뮤니티 안에서 무엇이 용인돼왔고 학교 측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기자협회 성폭력·성희롱 보도 가이드라인 또한 사건 자체에 대한 관심을 넘어 피해를 확산하는 조직문화 및 사회구조적 문제에 주목해 보도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7월20일 한국 여성민우회 성명 이미지 일부

수백 건의 보도 가운데 이런 문제를 다룬 사례는 20일 경향신문(누가 인하대 학생들의 '추모의 시간'을 방해하고 있나[플랫브리핑]), 24일 서울신문(학내 성폭력 범죄 근절 위해서는 '젠더 교육'과 '범죄 엄벌'이 핵심), 25일 연합뉴스(반복되는 대학가 성폭력…“단호한 조치·예방교육 필요”) 등 소수에 그쳤다.

그나마 일부 매체를 중심으로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이 이뤄진 일은 다행스럽다. 15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SBS가 최초 보도로부터 1시간40여분 뒤 피해자의 신체 상태를 제목에서 지우고, 본문에서도 발견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선정적 묘사를 피했다고 밝혔다. 같은날 경향신문은 '여대생 성폭행 거부하자 숨지게 한 같은 학교 대학생 체포'라는 제목을 이후 ''인하대 사망 사건', 같은 학교 남학생 강간치사 혐의 체포'로 수정했다.

한겨레는 기사 제목을 수정한 사실을 자발적으로 밝히고 반성해 호응을 얻었다. 정은주 한겨레 콘텐츠총괄은 18일 온라인, 19일 지면을 통해 '선정적·성차별적 제목, 고백합니다' 칼럼(편집국에서)을 썼다. 15일 오전 10시43분 한겨레 기사의 첫 제목은 '대학 내 알몸 상태로 발견된 여대생 숨져…경찰 수사'였는데, 문제의식을 느낀 디지털뉴스 편집자가 '인하대 교내서 피흘린 채 발견된 학생 숨져…경찰 수사'로 바꿨다. 한겨레 젠더데스크가 작동하기 전에 일상적인 게이트키핑(뉴스 취사선택)이 제 역할을 한 사례다.

▲7월19일자 신문에 게재된 정은주 한겨레 콘텐츠총괄의 칼럼 이미지

정은주 콘텐츠총괄은 22일 “누군가 (최초 보도를) 캡처했으면 저희도 똑같은 언론사가 됐을 것이다. 다행히 편집자가 유능한 분이었다”면서 “젠더데스크에게 헷갈리는 경우 문의를 하지만 이번 기사가 헷갈릴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여학생'을 '학생'으로 바꿀지, 대학명을 써야 할지 등 모든 사안은 획일적으로 답을 내릴 수 없다. 연합뉴스가 아닌 한겨레가 1보였다면 또 다른 고민을 했을 수도 있다. 다만 정 총괄은 “저희는 뒤늦게 문제제기를 많이 한다. (이번 기사도) 눈 밝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고, 젠더데스크를 통해 정리 됐을 거란 믿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기사를 계기로 한겨레에 후원 의사를 밝힌 독자들도 있다고 한다. 정 총괄은 “댓글에서 칭찬이 되게 많은 걸 보고 조금 당황을 했다. '이 정도로도 사람들이 기자에 대한 신뢰를 다시 얻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이것도 또 과하게 칭찬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한겨레 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사들이 요즘엔 특히 이런 고민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보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고민할 때 이를 감추고 합리화하는 언론보다, 잘못을 시인하고 투명하게 밝히는 언론이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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