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아니라며 '비상'회의 가는 이창용..변동비중 고작 5%p 낮추려 발권력 동원

최정희 2022. 7. 2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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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워치]이창용 "예전처럼 큰 위기 오는 것 아니다"
비상거시회의 등으로 공식적으로만 두 달 간 네 번 만나
효과 없는 '안심전환대출' 또..금통위 의결 없이 '출자' 발표
내년 금리 인상 여부 확인 안 됐는데 내년에도 안심전환 지원
정부 '비상 마케팅'에 동원..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너무 예전처럼 정말 무슨 큰 위기가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고려해달라. 2008년(금융위기)이나 1997년(외환위기)을 생각하지 말라.”

한국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 이창용 한은 총재는 13일 기자회견에서 전 세계적으로 달러가 오른 것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1300원 넘게 상승한 것을 위기의 전조 증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은을 포함한 주요국들이 물가를 잡겠다며 정책금리를 역사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올리고 있고 그 파장이 어떻게 번질 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 경제 연착륙을 실현한 적이 있었던가라는 의구심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이 총재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은 또 있다.

24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최상목 경제수석, 이창용 한은총재, 추경호 경제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왼쪽부터)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기재부)
◇ ‘위기 아니다’ vs ‘비상회의’ 괴리감 커

정부는 ‘비상’이란 단어를 붙여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이하 비상)’를 수시로 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수장, 청와대 경제수석에 이창용 총재까지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이끄는 ‘5명의 수장’이 ‘비상 회의’라는 이름으로 지난달 16일에도, 이번 달 24일에도 만났고 28일에도 만날 예정이다. 이달초에는 조찬간담회까지 했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더라도 자본유출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최근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정책금리를 올릴 때마다 만나고 있다.

이들이 만난 자리에선 민생을 지원한다는 명목 하에 코로나19때도 하지 않았던 자영업자의 빚을 탕감해주고 한은 발권력을 동원해 고정금리에서 변동금리로 대출을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 시행을 논의한다. 이 총재는 과거 위기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지만 그가 참석하는 비상회의에선 마치 큰 위기가 올 것처럼 채비한다. 이 총재의 발언과 수시로 열리는 ‘비상회의’가 주는 괴리감이 크다. 도대체 한국 경제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효과 없는 ‘안심전환대출’에 발권력 동원

이 총재가 13일 “가계 변동금리 대출의 고정금리 전환 지원 등을 통해 가계부채 구조 개선에도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대책이 고작 ‘안심전환대출’이라는 것도 실망스럽다. 24일 비상회의 결과에 따르면 한은과 정부는 올해와 내년 안심전환대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주택금융공사에 6300억원을 출자한다. 한은은 올해 1200억원의 발권력을 동원하고 내년 집행 예정인 4000억원에도 추가 출자한다.

*2015년 3월과 2019년 9월은 안심전환대출이 있었던 시기, 잔액 기준
(출처: 한국은행)
그러나 안심전환대출은 2015년, 2019년 두 차례 시행을 통해 정책 효과가 없음이 입증됐다. 가장 흥행에 성공했던 2015년에도 정책 효과는 반짝하고 말았다. 2015년 1월 변동금리 대출 비중(잔액 기준)은 71.5%였는데 4월 65.8%로 떨어지더니 안심전환대출이 종료되자 곧바로 70%대를 넘어섰다.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와 한은이 올해와 내년까지 6300억원을 쓰고도 가계대출의 변동금리 비중을 줄이는 것은 78% 수준(잔액 기준)에서 73%로 고작 최대 5%포인트 정도에 불과하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78%라면 금융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고 73%는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인가. 변동금리 비중 5%포인트를 줄여 얼마나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심전환대출은 더 높은 이자비용을 내가며 고정금리를 선택한 대출자에게도 패배감을 준다.

효과 없는 안심전환대출을 위해 주택금융공사는 주택저당증권(MBS)를 발행해야 하는데 이를 시중은행이 떠안고 그 과정에서 시중은행이 보유하던 국채 등을 팔아 채권 시장에 대혼란을 가져온 바 있다. 한은은 시장 안정을 위해 RP(환매조건부채권) 담보 증권에 MBS를 추가하고 MBS를 매입할 수 있도록 공개시장운영규정을 개정하기도 했다.

또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1200억원을 주금공에 출자하는 터라 그 만큼 풀리는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 그런데 금리 인상 기조이다보니 대표적인 흡수 수단인 통화안정증권(이하 통안채) 2년물 뿐 아니라 91일물까지 미달되고 있다. RP, 통화안정계정으로 간신히 유동성을 흡수하는 상황인데 유동성 흡수 부담은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안심전환대출로 내년 금리 인상 시사?…금통위 의결도 안 거쳐

더 큰 문제는 한은의 금리 인상 기조에도 의문이 생겼다는 점이다. 안심전환대출은 ‘금리 인상기’에 해야 효과가 있는 정책인데 내년에도 한은은 안심전환대출을 위한 출자를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연말 2.75~3%의 금리 수준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며 연말까지는 금리 인상 시그널을 줬지만 내년에는 어떻게 할지 명확한 메시지를 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에도 안심전환대출을 지원하겠다고 한 것은 내년에도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시그널인가를 의심 받을 수 있다.

오히려 시장에선 내년 한은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를 반영해 국고채 금리 등은 6월 중순 고점을 찍고 떨어지고 있다. 내년 기준금리 방향성에 명확한 신호도 주지 않았고 대출금리의 방향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년에도 ‘안심전환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보다.

절차상의 하자도 있다. 안심전환대출을 지원하기 위해 주금공에 1200억원을 출자하는 방안이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24일 비상 회의를 통해 먼저 발표됐다는 점이다. 사전에 금통위원간 협의로 찬성했다고 해도 28일 금통위 회의에서 금통위원들이 생각이 달라져 반대표가 우르르 나온다고 다시 무를 수 있는가.

이 총재는 4월 취임 당시 뉴스가 안 되게끔 기재부 장관과 수시로 만나겠다고 했고 그렇게 했지만, 그 결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정부의 퍼주기식 정책 지원이 제대로 조화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 회복을 위한 ‘비상 마케팅’에 한은이 동원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이 총재가 ‘위기 커밍아웃’을 안 한 것인가. 11년간 국제기구를 경험한 명성에 국민 기대가 한껏 높은 한은 총재라도 ‘취임 100일’, 허니문은 끝나가고 있다.

최정희 (jhid02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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