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IMF'? 벼랑 끝에 선 정의당

박성의 기자 2022. 7. 2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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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빚‧리더 부재‧당 내홍 '삼중고'에 시름
진중권 "이데올로기 탈피..2030세대에 전권 넘겨줘야"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늦은 밤 비례의원에게 전화가 왔다. 힘들다고."

지난 19일 정의당의 한 당직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명색이 젊은 의원인데 '폼 나는' 이야기는 못 하고 당의 오늘 내일만 걱정하더라. 소주 한 잔 사달라고 하는데 내 자식처럼 안쓰러웠다"고 했다. 이어 "IMF 당시 중소기업 사장님의 모습, 그게 지금 딱 정의당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정의당의 위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거대 양당이 양분한 정치판에서 진보 정당은 늘 고전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정의당은 사생(死生)의 기로에 놓인 모습이다. 수십억의 빚을 떠안은 상황에서, 당의 존재감을 키울 의제 설정에도 실패한 탓이다. 노회찬, 심상정을 이을 차기 리더까지 부재하다보니 당원의 '줄 탈당'까지 이어지는 양상이다.

정의당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1차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이은 패배가 안긴 '마이너스 가계부'

정의당이 당면한 문제는 '살림'이다. 당장 당을 운영할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 당사 월세와 당직자 임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기업으로 치면 부도 위기에 몰린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속 의원들이 대출까지 해가며 당을 겨우 굴리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정의당은 지난 19일 의원총회를 열고 의원들이 대출을 통해 당직자 임금 지급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의원들이 개인적으로 내놓은 금액은 총 1억2000만원 규모로 알려졌다. 정의당은 이 돈으로 우선 당직자 급여 및 각종 운영비를 지급할 방침이다.

정의당은 '약 열흘간의 유동성 경색을 없애기 위한 일시적 차입'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가계부를 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현재 정의당의 알려진 부채만 35억~36억원 가량이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여의도 당사 이전까지 결정했다. 자금난의 주원인으로 연이은 선거 패배가 꼽힌다.

통상 정당은 선거 과정에서 지출한 돈을 정부로부터 돌려받는다. 선거보조금은 국회 교섭단체 구성여부와 국회 의석수 비율, 최근 실시된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 또는 최근 전국적으로 실시된 선거의 득표수 비율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정의당은 3·9 대선과 6·1 지방선거에서 낮은 득표율을 기록한 탓에 선거보조금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6·1 지방선거 선거보조금으로 더불어민주당은 237억5772만원, 국민의힘 210억3273만원을 수령한 반면 정의당은 31억7311만원을 지급받는데 그쳤다. 정의당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9명의 당선자만 배출했기 때문이다. 이는 진보당(21명 당선)보다 못한 처참한 성적표다.

'민주당 복제품' 꼬리표, '간판 상품'이 사라졌다

'민주당 2중대', 정의당의 위기는 이 단어에 함축돼있다. 정의당은 지난 수년간 '히트 상품'과 '스타 의원'을 내놓지 못했다. 과거 노동, 복지 분야를 선도하며 굵직한 이슈마다 캐스팅보터로서의 입지를 뽐냈다. 그러나 최근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정쟁 앞에 정의당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모습이다. '조국 사태'를 비롯해 이슈가 부상할 때마다 민주당과 비슷한 색(色)의 주장을 반복하면서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양상은 비슷하다. 최근 논란이 된 '탈북 어민 북송 사태', '경찰국 신설' 등과 관련해 정의당은 민주당과 유사한 입장을 내놨다. 이탓에 대통령실-국민의힘-민주당 간의 공방전 속에 정의당의 의견은 '민주당 아류'로 묻히는 게 반복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의당 의원이 대중을 접할 기회도 점차 줄어드는 모습이다.

한 종합편성채널의 방송 작가는 "정치 현안을 토론하는 방송을 편성하면 찬성과 반대의 색이 명확한 패널, 혹은 차별화된 주장으로 화제를 모은 인물, 아니면 뛰어난 언변을 지닌 정치인이 주 섭외 대상"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 면에서 고(故) 노회찬 의원에게 섭외 요청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최근 정의당 관계자 중에서는 눈에 띄는 인물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전 대표가 당내 성폭력 은폐 의혹을 부인했던 정의당 지도부가 정정 입장문을 준비했으나 선거를 이유로 발표하지 않은 채 사퇴했다고 6월11일 밝혔다. ⓒ연합뉴스

실망한 '진보 소비자', 정의당 등지고 떠난다

진보정당의 가장 큰 무기인 '도덕성'에도 흠집이 간 상황이다. 지난해 1월 장혜영 의원은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 전 대표가 사퇴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사건은 계속됐다. 지난 5월에는 '당 내 성추행을 당 지도부가 은폐하려 했다'는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의 폭로가 이어졌다.

위기가 반복되면서 당원의 충성도도 떨어지는 모습이다. 선거권을 갖는 '당비 6개월 납부' 기준 정의당 당원은 지난 2019년 약 3만 명에 달했다. 현재는 1만 명 가까이 줄어든 1만 명대 후반으로 전해진다. 이 추세대로라면 '당원 수천 명' 대의 군소 정당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제기된다.

당원 사이에선 '극약 처방'을 바라는 목소리까지 제기된다. 지난 5일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이 페이스북에 "정의당 2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강은미, 류호정, 배진교, 이은주, 장혜영) 사퇴권고 당원총투표를 대표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정 전 대변인은 관련 안건에 대한 당원 서명 절차에 착수했다. 다음 달 7일까지 당직선거 투표권을 가진 당원 가운데 5%인 약 910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하면 총투표안을 발의할 수 있다. 총투표에서 당원 20% 이상이 재적해 과반 찬성을 얻으면 사퇴를 권고할 수 있다. 다만 강제할 구속력은 없다. 비례대표 의원 중 상당수가 이를 거부한다면 당이 더 큰 혼란으로 치달을 수 있다.

정의당 일각에서는 당이 현 위기를 '오랜 정치 문법'으로 타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의원의 얼굴을 바꾸고, 당사를 옮기는 방식으로는 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당 수뇌부 및 의제의 세대 교체와 '낡은 이데올로기' 탈피 등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도출돼야 한다는 쓴소리가 당내에서 나온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른바 '586'(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의 시대는 끝났다. 진보의 재구축을 해야 한다"며 "우리(정의당)가 펼쳐온 담론의 역사적 시효가 끝났다. 이제 진보적 자유를 추구하는 2030세대 젊은 층에게 당의 전권을 넘겨주고, 선배들은 이들을 후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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