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가스차단 Q&A] '혹독한 겨울' 예고된 유럽
에너지값 치솟으면 인플레 악화·경기침체 우려
유럽 대안 '아껴쓰기'..혼란·걱정 속 내홍 조짐도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러시아가 독일에 공급하는 천연가스를 20% 수준까지 추가로 줄이겠다고 25일(현지시간) 예고했다.
노르트 스트림-1으로 불리는 주요 가스관의 가동을 열흘 간 중단했다가 일정 수준 수송을 재개한 지 나흘 만에 다시 줄인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는 가운데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 삼아 서방의 경제제재에 보복하려고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장기전을 멈출 돌파구가 없는 까닭에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 밸브를 완전히 잠글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그 때문에 난방 수요 때문에 에너지 사용량이 급증하는 유럽에 시련이 다가온다는 관측이 많다.
러시아의 이번 조처의 영향과 전망을 주요 외신과 관련 통계를 토대로 정리했다.
--노르트 스트림-1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 노르트 스트림-1은 발트해 해저를 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잇는 가스관이다. 2011년 개통됐으며 길이는 1천223㎞에 달한다.
한해에 가스를 550억㎥만큼 옮길 수 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한해 가스 소비량 10%에 달하는 규모다.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는 노르트 스트림-1을 통해 일단 독일로 왔다가 별도 가스관을 통해 유럽 내수시장으로 뻗어간다.
물론 노르트 스트림-1이 러시아 가스의 유일한 수송로는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기존 주요 수송로를 통한 러시아 가스 공급이 이미 크게 줄어 중요해졌다.
벨라루스와 폴란드를 지나 독일로 러시아 가스를 실어 나르는 '야말-유럽 가스관'이 대표적이다. 러시아가 전쟁 뒤 가스관 운영사인 유로폴 가즈 등을 비롯한 유럽 내 에너지 기업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면서 이 가스관을 통한 러시아 가스 수송이 중단됐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관 역시 가동이 사실상 중단됐다. 노르트 스트림-1과 동일한 규모로 추진된 노르트 스트림-2 사업은 독일 정부가 대러시아 제재의 하나로 승인을 보류해 폐기 위기에 몰렸다.
-- 러시아는 왜 유럽행 가스를 감축하나.
▲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스프롬은 가스관을 돌리는 데 필요한 설비인 터빈을 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르트 스트림-1의 포르토바야 가압기지에선 현재 2개의 터빈만이 가동되고 있는데, 1개 터빈이 더 가동 중단되면서 터빈 하나만 남게 돼 20% 수준까지 수송량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기술 문제'로 인한 공급량 감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달에도 기술적 이유로 가스 공급을 40% 수준으로 줄였다. 최근에는 정비점검을 이유로 아예 열흘 간 가동을 중단했다가 21일부로 재개한 바 있다. 그마저도 평소의 40% 수준까지만 가동하는 데 그쳤는데 이번엔 그 절반 수준인 20%까지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서방은 러시아가 경제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에너지를 무기화한다고 비판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는 유럽에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서방의 전쟁개입 축소나 대러시아 제재완화 같은 조치를 끌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 대변인은 "정보에 따르면 가스 수송을 감축할 기술적 사유가 전혀 없다"고 반발했다.
-- 유럽 및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미칠 영향은.
▲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을 기준으로 EU가 수입하는 전체 가스의 40%가 러시아산이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노르트 스트림-1을 포함해 주요 가스관 3개를 통한 유럽행 러시아산 가스의 수송량은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정도로 줄었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로 삼고 있다면 감소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가스 수입량이 많은 국가는 물론, 직접 수입 규모가 크지 않은 유럽 내 다른 국가도 직간접적 악영향을 받는다.
영국이 단적인 사례다. 전체 가스 수입량 가운데 러시아산이 4%도 안 되지만 이미 에너지 가격이 올라 전체 물가가 치솟았다.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던 국가들이 대체 에너지를 찾아나서면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수요가 늘고 상대적으로 공급이 줄어든다.
결국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 영국처럼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지 않는 곳도 피해를 보게 된다.
러시아의 가스 차단이 그렇지 않아도 부진한 유럽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가 가스를 전면 차단하면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이탈리아 등이 경기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스를 서로 나누거나 가스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내리지 않고 유럽 각국이 사재기나 수출규제로 서로 경쟁할 경우 발생할 최악의 시나리오다.
-- 유럽에 돌파구는 있을까.
▲ 아예 없진 않다. 유럽 각국 정부도 이미 노르웨이, 알제리아, 미국, 카타르 등 다른 주요 자원국으로부터 수입량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가스관으로 직접 수송하는 대신 주로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유럽에 해상 수송을 한다.
러시아산 기체 가스가 아닌 액체 가스인 LNG를 받으려면 맞춤형 시설이 따로 필요하다.
하루 아침에 LNG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독일의 경우 LNG 하역을 위한 터미널 신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 각국은 일단 겨울을 앞두고 가스 비축량을 가능한 한 많이 채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각국에 11월까지 가스 비축량을 80%까지 확보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추가 감축을 예고한 상황인데다 겨울에 난방 수요가 많기 때문에 에너지 불안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LNG 가격 등도 이미 급등한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러시아 가스 감축분을 메우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결국 '아껴 쓰자'고 자국민에게 호소하는 것 외엔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EU는 최근 러시아산 가스 감축에 대비해 내년 봄까지 가스 사용을 15% 줄이자고 회원국에 제안한 상태다.
뚜렷한 돌파구 없이 우왕좌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당장 EU 내부에서는 남유럽을 중심으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은 가스절약이 독일을 배려하려는 의도라며 자국민에게 부당한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EU는 독일 때문에 가스를 절약하자는 게 아니라 러시아 가스 중단 시 모든 회원국 경제가 휘청인다며 설득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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