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멘델 탄생 200주년
내가 이룬 과학 업적에도 대단히 만족한다. 틀림없이 세계가 곧 그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그레고어 멘델의 유언 중
지난 20일은 멘델 탄생 2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럼에도 다음날 나온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사설로 다루는 데 그쳤다. 심지어 이틀 뒤에 나온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멘델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현대 유전학의 아버지로 초중고 생물 수업 시간에 등장하는 유명 과학자임을 생각하면 뜻밖이다.
다행히도 국제학술지 네이처 유전학은 7월호에 이를 기념하는 여러 편의 글을 실렸다. 현대는 유전학을 넘어 유전체학의 시대로 넘어왔는데 출발점은 멘델의 실험이 있다. 멘델 탄생 200주년을 맞아 기고문에서 눈을 끄는 내용과 함께 관련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참고로 몇몇 자료에는 멘델이 1822년 7월 22일 태어났다고 나와 있는데 이날은 사실 멘델이 태어난 이틀 뒤로 세례를 받고 출생신고를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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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종이 원래 목적
멘델의 유명한 완두 교배 실험은 1854년부터 1863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브륀 수도원의 정원에서 진행됐다. 멘델은 데이터를 해석한 결과를 1865년 두 차례에 걸쳐 브륀의 자연과학협회에서 발표했고 1866년 협회지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논문에 나온 데이터로 추정하면 멘델은 이 과정에서 완두 2만4000 개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수도사의 취미활동으로는 엄청난 작업이다. 도대체 멘델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네이처 유전학’ 7월호에는 이 질문에 답한 논문이 실렸다. 뜻밖에도 지금까지 멘델이 완두 교배 실험을 한 정확한 동기를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 교과서에는 멘델이 유전의 법칙을 밝히기 위해 실험을 했다고 나와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교과서적인 얘기이고 실제 멘델이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없다.
따라서 멘델 연구자들은 여러 추측을 하고 있는데, 멘델이 당시 막 제시된 유전 이론을 테스트해보려는 심산이었다는 얘기도 있고 심지어 멘델은 유전에 대해 관심도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멘델의 논문에 ‘유전’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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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육종회사 키진의 페터 판 다이크 박사 등 논문의 저자들은 최근 수년 사이 구축된 유럽의 신문 데이터베이스에서 멘델을 검색해 1861년 멘델의 활약을 다룬 신문 기사 두 편을 찾아냈다. 브륀의 지역신문인 ‘새로운 사건들’ 7월 26일자에 실린 기사는 수도사 멘델이 외국의 씨앗을 구해와 완두콩, 강낭콩, 오이 등 채소의 크기와 맛을 개선하기 위해 육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수일 뒤 또 다른 지역 신문인 ‘브륀 소식’에서는 앞서 기사가 멘델 연구의 경제적 효과를 과장하고 있다면서도 “실제적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하는 모든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논문의 저자들은 멘델이 1853년과 1854년에 발표한 작물 병해충에 관한 짧은 논문이 지금껏 간과돼왔다며 이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53년 논문은 무잎을 갉아먹는 나방 유충이 양배추로 퍼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이고 1854년 논문에서는 완두콩바구미 때문에 완두콩 농사가 파국을 맞을 수 있음을 걱정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멘델은 농사에 관심이 많았고 교배 실험 역시 작물로서 좀 더 나은 특성을 지닌 완두콩을 만드는 게 원래 목표였을 거라는 말이다. 멘델은 독일 등 외국의 종자까지 구입해 1854년 모두 34가지 품종으로 실험을 시작했다. 1861년 기사에 따르면 이때까지도 육종이 중요 목표로 보인다. 아무튼 수학에도 뛰어났던 멘델은 여러 품종 사이의 교배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유전학의 토대가 되는 중요한 발견을 했다. 참고로 중세 이래 당시까지도 유럽의 몇몇 수도원에서는 가축이나 작물의 육종에도 열심이었다.
어찌 보면 멘델은 우장춘과 비슷한 면도 있다. 우장춘 역시 재배 기간이 짧지만 수확량이 적은 일본 재래 유채와 수확량은 많지만 재배 기간이 긴 서양 유채 사이에서 둘의 장점을 지닌 잡종을 만들려다 실패하는 과정에서 종의 합성이라는 유전학의 중요한 발견을 했다. 두 종의 게놈이 합쳐서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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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형질의 염색체 자리
여러 완두콩 품종을 비교한 멘델은 둘로 나뉠 수 있는 7가지 특징을 추려냈다. 여문 완두콩 모양(둥근 것과 주름진 것)과 색깔(노란색과 녹색), 꽃 색깔(자색과 흰색), 덜 여문 꼬투리의 모양(매끈한 것과 굴곡진 것)과 색깔(녹색과 노란색), 꽃이 줄기에 붙은 위치(끝과 중간), 줄기 길이(긴 것과 짧은 것)가 그것이다.
각 특성에 대해 서로 다른 품종을 교배해 얻은 잡종의 형태는 중간이 아니라 둘 가운데 하나와 같았다. 예를 들어 완두콩이 둥근 품종과 주름진 품종을 수정해 생긴 꼬투리를 열어보면 모두 둥근 완두콩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렇게 얻은 둥근 콩을 심어 자란 식물체를 자가수분해 맺힌 꼬투리에는 둥근 콩과 주름진 콩이 3:1의 비율로 들어있었다. 멘델은 잡종 1세대에서 보이는 형질을 우성, 이를 자가수분해 얻은 2세대에서 다시 등장하는 형질을 열성이라고 불렀다. 어떤 형질이 특정 인자(훗날 유전자로 부르게 될)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는 ‘분리의 법칙’이다.
한편 다른 특성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고 유전된다는 ‘독립의 법칙’도 중요한 발견이다. 예를 들어 완두콩의 모양과 색이 그런 경우로 주름진 노란 콩과 둥근 녹색 콩을 교배하면 전부 둥근 노란 콩이 나온다. 이를 자가수분하면 둥근 노란 콩과 주름진 노란 콩, 둥근 녹색 콩, 주름진 녹색 콩이 9:3:3:1의 비율로 나온다. 이는 두 형질의 분리의 법칙이 독립적으로 적용된 결과다.
훗날 유전학이 발전하면서 멘델의 두 법칙은 다양한 유전 현상의 일부만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런 경우를 ‘멘델의 법칙을 따른다’고 표현한다. 그 결과 멘델이 자신의 법칙에 맞는 7가지 형질을 추린 건 운이 좋았다는 얘기가 있다. 예를 들어 독립의 법칙은 두 유전자가 서로 다른 염색체에 있을 때에만 적용되는데, 운 좋게도 7가지 형질을 보이는 유전자가 7개인 염색체에 하나씩 분포한 결과라는 것이다. 문득 7가지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검색해보니 지난 2011년 학술지 ‘식물과학의 경향’에 멘델의 유전자에 대한 리뷰 논문이 실렸다. 20세기 들어 다양한 유전학 기법이 개발되면서 유전학자들은 멘델의 유전자를 찾는 연구에 뛰어들었고 여러 완두콩 품종을 교배해 7가지 형질의 분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염색체에서 7가지 형질의 배경이 되는 유전자가 있는 자리 9곳을 찾아냈다. 7곳이 아니라 9곳인 이유는 꼬투리 모양과 꽃 위치의 경우 품종에 따라 두 자리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어떤 특성에는 유전자 네트워크가 관여하므로 이 가운데 다른 유전자가 고장나도 같은 변이형이 나올 수 있다.
둘 가운데 하나만 골라 7곳으로 만들어도 각각이 7개 염색체에 하나씩 들어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완두콩 모양과 꼬투리 색을 결정하는 유전자 자리는 같은 염색체에 놓인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두 형질을 동시에 보는 실험을 하면 9:3:3:1인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멘델은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
답은 멘델이 이에 대한 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립의 법칙을 보려면 많은 개체를 키워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제한이 있었다. 따라서 멘델은 식물체(F2)가 아니라 모체(F1)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성인 콩의 모양과 색깔을 대상으로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실험을 했다. 다행히 두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 자리는 서로 다른 염색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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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 유전자의 실체는?
염색체의 유전자 자리를 파악한 뒤 실체를 밝히는 연구가 진행됐고 그 결과 지금까지 멘델 유전자 5개가 규명됐다. 1990년 가장 먼저 여문 콩의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 SBEI가 밝혀졌다. SBEI은 녹말 생합성에 관여하는 효소로 열성 변이형(주름진 콩)은 이 유전자가 고장난 결과다. 분석 결과 유전자의 5번째 엑손에 전이인자가 끼어 들어가 뒷부분의 아미노산 서열이 엉망이 돼 기능을 잃어버린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1997년에는 줄기 길이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밝혀졌는데 식물 호르몬인 지베렐린의 생합성에 관여하는 GA 3-산화효소를 지정했다. 분석 결과 열성인 키가 작은 변이형은 유전자의 염기 하나가 구아닌(G)에서 아데닌(A)으로 바뀌어 그 산물인 효소 단백질의 229번째 아미노산이 알라닌(A)에서 트레오닌(T)으로 바뀌면서 구조가 틀어지며 기능이 떨어져 지베렐린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그 결과 줄기가 짧은 것으로 밝혀졌다.
10년이 지난 2007년 세 번째로 콩(떡잎) 색깔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밝혀졌다. 완두콩은 덜 익었을 때는 녹색이지만(우리가 먹는 상태) 여물면 노란색이 된다. 열매가 여물면 더이상 광합성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엽록소가 파괴된 결과다. 그런데 열성 변이형은 콩이 여물어도 여전히 녹색이다. 분석 결과 변이형은 엽록소가 파괴되는 과정에 관여하는 SGR 유전자의 네 번째 엑손에 6개 길이의 염기가 끼어 들어가 있었다. 따라서 산물인 단백질에 아미노산 두 개가 추가되면서 구조가 무너져 기능을 잃었고 그 결과 엽록소가 제때 파괴되지 않아 콩이 여물어도 여전히 녹색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0년에는 네 번째로 꽃의 색깔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밝혀졌다. 자색 꽃잎은 안토시아닌 색소 덕분으로 흰색 꽃이 피는 변이형은 전사인자를 지정하는 AN1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 안토시아닌 색소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결과다. 분석 결과 특이하게도 유전자 인트론의 염기 하나가 G에서 A로 바뀌며 전사체의 가공에 오류가 생겨 중간이 잘린 온전치 못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9년 마침내 완두콩의 게놈이 해독됐다. 유전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식물임에도 이처럼 늦어진 이유는 게놈이 44억 염기로 꽤 크고 반복서열이 많아 해독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참고로 콩과 작물은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고 게놈도 11억 염기로 크지 않은 대두가 2010년 가장 먼저 해독됐다. 그런데 완두콩 게놈 해독 논문에는 멘델 유전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네 번째 멘델 유전자를 찾고 11년이 지난 2021년 다섯 번째로 덜 여문 꼬투리의 색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실체가 거의 드러났다. 이 경우 녹색이 정상(덜 여문 상태이므로 광합성이 일어나야 한다)이고 노란색이 열성인데, 이는 mRNA의 분해에 관여하는 효소의 발현 조절 부위에 변이가 일어난 결과로 밝혀졌다. 공교롭게도 이 조절 부위 양쪽으로 RNA 분해 효소 유전자가 자리하고 있어 둘 가운데 어느 쪽이 영향을 받은 결과인지는 밝히지 못했다. 아무튼 이 효소의 발현량이 늘어나 엽록소 생합성에 관여하는 mRNA가 많이 파괴되면서 엽록소가 부족해 노란색을 띠는 것으로 보인다.
꼬투리의 모양과 꽃의 위치와 관련된 유전자의 실체는 각각 두 유전자 자리가 있음에도 아직 밝히지 못한 상태다. 유전자 규명의 관점에서 멘델의 유전학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말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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