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문법 중 무엇이 먼저일까..아르헨티나 '성중립 언어 금지' 논란[플랫]
남미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시 정부가 학교에서 성중립 언어 사용을 금지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오라시오 로드리게스 라레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은 지난달 부에노스아이레스 교사들이 학교 수업이나 학부모와의 통신에서 성중립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라레타 시장은 “아이들이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배울 수 있도록 교사들은 스페인어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시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성소수자 배려 정책과 충돌하며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아르헨티나는 성소수자 관련 정책에서 가장 앞서가는 국가 중 하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동성결혼과 성전환자의 성별 전환이 합법이다. 지난해 7월에는 중남미 최초로 신분증에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별 ‘X’ 표기를 허용했다. 공공부문 일자리의 1%는 성전환자에게 할당해야 한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자녀 중 한 명이 논바이너리(자신이 남자와 여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중남미에서는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 포용적 언어 사용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와 칠레 등에서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특정 성별을 지칭하지 않는 성중립 언어를 사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예컨대 ‘친구들’을 뜻하는 “amigos”는 “amirues”로, ‘모두’를 뜻하는 “todos”는 “todxs”로 쓴다. 성별 구분이 있는 스페인어는 남성형 명사에 주로 ‘o’를 쓰고 여성형 명사에는 ‘a’를 쓰는데, 이를 성별을 표시하지 않는 ‘e’나 ‘x’로 바꾼 것이다.
하이메 페르크시크 아르헨티나 교육부 장관은 부에노스아이레스시 정부의 방침은 학생들에게서 아르헨티나 문화에 만연한 성차별적 태도에 맞서 싸울 수단을 빼앗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소수자 단체와 인권단체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시 정부는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학교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철자를 바꾸는 방식의 포용적 언어 사용은 학생들의 문해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입장이다.
일부 교사와 학부모도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팔레르모의 한 초등학교 교장 바니나 마리아 카살리는 NYT에 “성중립 언어는 그다지 포용적이지 않다”면서 “우리 학교에는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있는데 성중립 언어는 이 아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과학자인 플로렌시아 살바레사는 성중립 언어가 문해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면서도 성중립 언어가 학업에 불편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학생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시 정부 방침은 자신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논바이너리인 아고스티나 페르난데스 티라(17)는 “모든 학생을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획일적 상자에 가두려는 한다”면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의 존재는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이라고 말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성중립 언어의 사용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방과후학교 교사인 알렉산드라 로드리게스는 “이미 사용되고 있는 것을 금지할 수는 없다”면서 “살아 있는 언어는 언제나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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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식 기자 bachwsik@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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