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토록 북한 송환 기다려온 '마지막 빨치산' 이두화씨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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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토록 북한 송환을 기다려온 비전향 장기수 이두화씨가 25일 오전 8시30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1928년 8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태어난 이씨는 항일운동의 하나로 중국 룽징(용정)시에 학교를 세운 아버지를 따라가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보냈다.
1953년 7월27일 유엔, 북한, 중국이 정전협정을 맺자 이씨는 같은 해 가을께 다른 대원들과 지리산으로 옮겨 빨치산 정치공작대 활동을 하다 이듬해 2월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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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빨치산 활동 중 체포
평생토록 북한 송환을 기다려온 비전향 장기수 이두화씨가 25일 오전 8시30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향년 95.
1928년 8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태어난 이씨는 항일운동의 하나로 중국 룽징(용정)시에 학교를 세운 아버지를 따라가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보냈다. 이씨는 10살이 되던 해 다른 가족과 함께 아버지 고향인 함경남도 함주군 천원면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1947년 9월 김일성종합대학 조선 사학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 3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0년 7월 정치공작대 소속으로 전남 무안군에 파견, 전남도당학교 강사로 활동했다. 같은 해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으로 갈 수 있는 퇴로가 끊기자 영암 월출산으로 들어갔고 이후 광양 백운산 등에 4년 동안 머물렀다.
1953년 7월27일 유엔, 북한, 중국이 정전협정을 맺자 이씨는 같은 해 가을께 다른 대원들과 지리산으로 옮겨 빨치산 정치공작대 활동을 하다 이듬해 2월 체포됐다.
군사재판에서는 집행유예로 석방됐으나 1955년 12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광주형무소에서 3년을 복역하고 1958년 12월 출소했다. 당시 32살이었던 그는 빨치산 활동을 함께 했던 통일운동가 최장열씨와 결혼했으며 곡성 옥과고등학교에서 역사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전남 나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통일단체를 후원했다.
그는 6·15공동선언이 있었던 2000년 9월 1차 송환 때는 신청하지 않았으나 2006년 정부가 2차 송환 신청을 받자 신청서를 낸 뒤 북에 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2017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광주의 한 요양원에서 지냈다.
통일운동단체, 시민사회단체는 ‘통일애국열사 이두화 선생 통일장’(3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하고 26일 저녁 7시 추도식을 열 예정이다.
유족은 딸 최정희, 며느리 이전영씨가 있으며 빈소는 광주 국빈장례문화원 101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7일 아침 8시30분, 장지는 광주 영락공원이다. (010)3603-6133(박동기 남녁현대사연구소 소장).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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