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은 정말 200만원만 받을까?
지난주 금요일(22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하청 업체 노사의 파업이 타결되자, 가로·세로·높이 1미터 철장에서 31일간 파업 농성을 이어간 하청 노동자 유최안 씨가 들것에 실려 나와 구급차로 옮겨졌습니다.
유 씨의 동료들은, 연신 박수를 치며 '사랑합니다'를 외쳤습니다.
당초 유 씨는 기자들 앞에 서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누울 수도, 심지어 몸을 제대로 펼 수도 없는 좁은 철장 안에서 웅크린 채 생활하다 보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김형수/조선하청지회장 (7월 22일)] "걷기가 힘들다, 몸이 좀 제대로 말을 안 듣는 거죠. '우리'에 갇혀 있으면 또 폐소공포증 같은 것들도 걱정이 되고…" 그리고 곧장 인근 종합병원으로 이송돼 입원했습니다.
입원 3일 째일 지난 일요일.
<스트레이트> 취재진은 유최안 씨가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유 씨는 휠체어를 타고 나왔는데요, 한동안 스스로 걷기 힘든 상태라고 했습니다.
[유최안/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지금 몸 건강은 어떠세요?) "안에 있을 때는 뭐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봤는데 실질적으로... 하룻밤 자고 나니까 여기저기 아파서 일단 재활 치료 준비하고 있는.." (어디가 좀 안좋으세요?) "허리하고 무릎에 이게 근육이 많이 빠지다 보니까 허리하고 무릎이 좀 안 좋아요" 원래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데, 철장 안에서 살과 근육이 많이 빠져서 덥지 않다는 뼈있는 농담도 던졌습니다.
이번주에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정밀검사도 받고, 한동안 재활치료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인 유 씨는, 파업 21일차인 지난 6월 22일 스스로 철장에 갇혔습니다.
몸을 펼 수도 없는 작은 철골 구조물로 들어가, 용접까지 해 철장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 좁은 공간에서 31일 동안 생활했습니다.
하청 노동자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사무실 한쪽 벽면에, 동료들끼리 적어 놓은 일종의 '롤링페이퍼'가 붙어 있었는데요, 유 씨의 장점에 대해 '끈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기자인 저도 '끈기'로는 자신있지만, 그런 결심은 못할 거 같습니다. 어떤 절박함이 스스로를 가둔 이유가 됐는지, 이 질문을 가장 먼저 유 씨에게 했습니다.
유 씨의 대답을 그대로 옮기면요. [유최안/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그 철장에 들어간 이유는 파업을 탄압하기 위해서 대우조선해양 측이 계속 물리적인 폭력을 동원했기 때문에 저희 조합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장에 들어간거죠. 사측에서 동원된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조합원들이 다쳐서 병원에 실려가시고, 병원에 실려가신 분들이 몇 주씩 치료를 받으셔야 되고, 또 그렇게 부딪힐 때마다 '노노 갈등'은 커지고, 그 갈등은 또 다른 오해를 생산하고.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일단은 부딪히는 걸 막아야 되겠다 싶어서 고립이 된 거죠. 저희 조합원도 보호하고 더 이상 갈등도 커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을 한 거죠" 유 씨는 철장 안에서, 파업 현장을 찾는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고, 그 모습이 언론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습니다. 그 때마다 표정에 흔들림이 없었는데요. 혹시 철장 안에서 걱정되는건 없었는지 물어봤습니다.
유 씨는 역시 정부의 '공권력 투입 시사'를 꼽았습니다. [유최안/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공권력 투입에 대한 압박이 있었잖아요. 경찰병력이 왔다 갔다 하고 위에서 헬기 날아다니고 막 그러고 밖에서 막 진압 준비하고 있는 모습 보면서 솔직히 무섭죠" 실제로 경찰병력이 투입된다면, 갇혀 있는 자신은 물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6명의 하청 노동자들, 그리고 다른 조합원들까지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 컸다고 합니다. 특히 가족 생각이 났다고 했습니다. [유최안/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근데 그걸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고가 벌어질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저항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저는 저항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저항을 해야 될 건지에 대한 뭐 부모님에 대한 걱정, 가족에 대한 걱정 그리고 우리 조합원들에 대한 걱정. 그럼 계속 걱정 솔직히 다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어요. 그냥 계속 걱정 미안함 이런 감정 말고는 가질 수가 힘든 상태였던 거죠" 이런 걱정과 별개로, 협상 전망이 어두워졌음도 직감했다고 했습니다.
■ '더 떨어지지 않을줄 았았는데..'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유최안 씨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유최안/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한 달에 200만 원 받는 생활을 2016년부터 지금까지 해오고 있어요. 평생을 최저시급 받는 것도 억울한데, 최저시급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4대 보험 떼 먹히고, 일은 힘들어지고, 사람들은 다치고, 이 모든 문제들이 계속 심각해지고 있잖아요" 최저시급 받으면서 일하면 더 이상의 바닥은 없을 줄 알았는데, 상황이 계속 더 악화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합니다.
입원 사흘째였던 지난 24일, 유최안 씨의 인터뷰가 MBC <뉴스데스크>에 방송됐는데요.
'0.3평 농성' 유최안 "200만 원 월급 받는 사람들에 8천억 내놓으라 해"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91590_35744.html
예상하지 못한 댓글들이 제법 발견됐습니다.
"월급명세서 까서 보고 이야기 합시다. 각종 수당, 잔업비..월 실수령 500만원 넘는다 이놈들아" "뻥치고있네, 한달에 200만원 번다고? 뻥도뻥도 누가 들음 진짤줄 알겠다" "그동안 받아온 월급 명세서 한장 올리는 사람이 없다" 한 달 내내 일해도 손에 쥐는 건 2백만원 안팎이고, 평생 기술을 익혀도 최저시급밖에 받지 못한다는 하청 노동자들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하청 노동자들 중 가장 연차가 오래된, 정년 퇴직을 1년 앞둔 63년생 노동자의 월급 명세서를 확보해 봤습니다.
그의 올해 1월 월급명세서. 야근에 특근까지 근로시간은 291시간이고, 급여합계는 266만원입니다.
교육비와 각종수당, 인센티브 등등의 항목엔 0원 적혀있습니다. 세금과 4대보험료를 떼고, 손에 쥔 돈은 233만원뿐입니다.
9,160원, 최저시급만 받기 때문입니다.
혹시 다른 달에 다른 수당이나 상여금이 포함된 거 아닐까, 의심스러워서 올해 월급명세서를 다 받아봤습니다.
[2월 / 근로시간 256시간, 실지급액 204만원]
[3월 / 근로시간 374시간, 실지급액 295만원]
[4월 / 근로시간 292시간, 실지급액 234만원]
하청 노동자들의 월급 계산 방식은 간단합니다. 최저시급 9,160원에 총 근로시간을 곱하고, 세금과 4대보험료만 떼면 끝납니다.
추가 수당이나 상여 같은 건 없었습니다.
심지어 381시간을 일한 5월에는 월급명세서에 실지급액이 311만원이 찍혔는데요, 사내 하청업체가 돌연 폐업을 하는 바람에 실제로는 77만원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에이 올해만 그런거 아냐?' 또는 '연말에 수당 몰아주는거 아냐?'
이런 의심까지 하시는 분들 계시죠? 그래서 제가 이 노동자의 '원천징수영수증'까지 받아 봤습니다. 1년만 보면 안될거 같아서 7년치를 발급 받았는데요.
우리가 흔히 세전 연봉이라 부르는 원천징수영수증의 '총급여' 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2015년 3,863만원 / 2016년 3,699만원 / 2017년 3,397만원 / 2018년 3,227만원 / 2019년 3,368만원 / 2020년 3,379만원 / 2021년 3,393만원]
2021년 기준으로 '네이버 임금계산기'를 통해 '예상 실수령액'을 계산해보니까요, 3,008만원이 나옵니다. 월로 따지면 250만원 정도입니다.
총급여를 그래프로 보니까, 조선업계 임금 삭감이 시작됐던 2016년 전후로 급여가 꾸준히 감소했다가,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도 볼 수 있네요.
자, 이정도면 '정말 2백만원 받는거 맞아?'에 대한 의문이 어느정도 해소되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건, 이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도색 경력 23년차, 대우조선해양에서만 19년동안 일해온 사람이라는 겁니다.
■ 왜 그돈 받고 거기서 일하나요? "중소기업 사람 모지라서 난리고, 거기 가서 잔업 특근하면 두배 번다" "쿠팡 물류센터도 300이상 준다더라, 싫음 나가면 되지. 이해할 수가 없네"
이런 반문도 나올법 합니다.
이에 대해서 유최안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최안/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나간다 이거예요. 근데 못 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럼 과연 이 사람들을 그냥 우리가 모른 척 해야 되나? 조선소에서 20년 30년씩 일한 사람들. 하청 노동자의 평균 연령이 상당히 높아요. 실제 현장에서는 55세에서 60세 사이가 거의 다수예요. 이분들은 이제 다른 데 가서 일을 못하시는 분들인데, 이분들을 끊임없이 쪼고 있는 거잖아요." 물론, 30·40대 젊은 인력들은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지역에서 20년 넘게 일해온 숙련공들에겐 '박차고 나가는게'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취재진이 직접 만난 63년생 노동자 또한 그랬습니다. 경남 거제에서만 수십년째 같은 일을 했는데, 지금와서 다른 일을 찾는 건 엄두도 못내서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계속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내 하청업체'에서 퇴직을 하고도, 더 대우가 열학한 다른 하청업체에 취업해 다시 일터로 복귀하는 고령 노동자도 다수 있다고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 현실을 이용하는 사용자만 남게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겁니다.
■ "삭감된 월급 돌려달라"
다시 63년생 하청 노동자의 세전 총급여 그래프를 볼까요.
2015년부터 총급여가 계속 하락했고, 여전히 회복이 안되고 있습니다. 이 기간 가파르게 오른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이 노동자의 삶은 더 팍팍해졌을 겁니다.
노동자들은, 그간 삭감됐던 임금 30%를 다시 원상복귀 해달라며 이번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측이 처음 제시한 임금 4.5% 인상으로 타결됐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여전히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노동자들을 내몰고, 사측은 8천억의 손해배상을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최안/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정부가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이 구조(원청-하청)를 만들어서 피 빠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하고, 피해 받는 사람들한테는 엄정하게 대응하고, 이게 무슨 원칙이에요. 우리는 국민이 아닌 거예요? 우리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거예요?"
이문현 기자 (lmh@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2/society/article/6392148_356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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