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중률 떨어지는 러시아 '고물 미사일'이 우크라 민간 희생 더 키워
바이든 美 대통령, 11월 중간선거 때문에 적극 대응 못해
(시사저널=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6월27일 오후 3시45분 러시아 Tu-22M3 초음속 전략폭격기가 두 발의 대형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발사 5분 만에 320km 떨어진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크레멘추크의 암스토르 쇼핑센터에 30도 각도로 내리 꽂혔다. 커다란 미사일이 쇼핑센터를 고속으로 강타하는 장면은 한 주민의 휴대전화로 촬영됐다. 폭발 충격으로 인근 연못의 물이 흔들리는 장면까지 또 다른 주민의 휴대전화로 촬영됐다. 곧이어 한 발이 더 날아와 450m쯤 떨어진 아스팔트·콘크리트믹스 생산공장을 타격했다.
이 공격으로 최소 23명이 숨지고 59명이 부상했으며, 36명이 실종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1000명이 쇼핑하고 있는 쇼핑센터에 미사일을 쏘았다"며 분노했다. 러시아군은 쇼핑센터에 대한 미사일 공격 주장은 거짓이며, 인근에 있는 우크라이나 탄약고가 미사일에 맞아 폭발하면서 손상을 입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쇼핑센터는 더 이상 민간인이 사용하지 않으며 우크라이나군의 군용 건물로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까지 덧붙였다. 옛 소련이 미국과의 핵전쟁에 대비해 개발하고 현재 러시아가 운용하는 Kh-22 초음속 순항미사일이 서방세계에서 '분노 유발자'가 되고 있다.
쇼핑센터·아파트 건물 등에 미사일 날아들어
미국의 국제 안보·분쟁 전문가인 세바스티엔 로블린은 앞서 국제관계 전문 인터넷 매체인 '1945닷컴(19fortyfive.com)' 기고문에서 "1970년대의 낡은 기술을 사용한 러시아군 미사일은 절반 정도만 원래 노렸던 목표물의 600m 안에 떨어진다"며 "한 목표를 노린 두 발의 미사일이 기술 부족으로 각기 다른 곳에 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Kh-22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6월30일과 7월1일 사이 밤에는 Tu-22M3가 발사한 세 발의 Kh-22가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70㎞ 떨어진 작은 마을인 세르히브카의 9층짜리 아파트와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타격했다. 아파트 건물 전체가 무너지고 12세 소년을 포함해 적어도 21명이 숨졌으며 6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39명이 부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공개한 동영상에서 강한 어조로 울분을 토했다. "오늘 러시아군은 또다시 잔혹한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러시아 미사일은 초음속 대함 순항미사일로, 오데사 지역 세르히브카 마을의 평범한 주거용 건물을 타격했다. Kh-22 같은 미사일은 항공모함이나 대형 군함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된 것인데, 러시아군은 이를 일반 시민이 거주하는 평범한 9층 건물에 사용했다."
Kh-22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적대로 옛 소련이 원래 서방의 항공모함과 항모전단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한 대함 공대지 순항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은 탄두 무게 최대 1000kg의 재래식이나 핵탄두를 장착하고 최고 마하 4.6의 고속으로 최대 600km를 날아가 목표물을 타격한다. 항모 전력이 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옛 소련이 고육지책으로 적 함대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순항미사일을 발사해 자국의 전략폭격기를 보호하면서 적 항모를 공격하는 대응 전술을 개발한 것이다.
눈여겨볼 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부터 Kh-22 순항미사일을 발사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여러 발을 한꺼번에 발사한 것은 오랫동안 저장했던 전략물자의 정확성과 신뢰도 확인 차원으로 볼 수 있다. 1945닷컴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5월12~25일 우크라이나 전역에 44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이 가운데 적어도 10발이 Kh-22였다. 6월에만 45발 이상의 Kh-22가 수도 키이우와 북부의 체르니히우, 서부 리비우, 남부 미콜라이우, 동부 도네츠크 지역 등 우크라이나 전역을 타격했다. 옛 소련이 60년 전인 1962년 개발해 거의 50년도 더 전에 생산하고 비축해둔 미·소 전쟁용 미사일을 러시아가 21세기에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거주 지역에 퍼붓고 있는 셈이다.
"소 잡는 데 쓰는 칼을 닭 잡는 데 마구 사용하는 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민간 지역 폭격의 의도는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쉽게 유린할 순 없으니 민간인 공격으로 사기를 떨어뜨려 협상으로 이끌려는 속셈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오래된 전략물자를 꺼내 쓰는 것일까. 한마디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에 충분한 재래식 미사일의 재고도, 생산 여력도 없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는 개전 직후 시작된 서방의 제재로 심각한 반도체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반도체는 미사일은 물론 거의 모든 고등 무기체계의 필수 부품이다. 러시아는 폐기 직전의 고물 장비 등에서 반도체를 뽑아 쓰는 한편, 중국 등에서 어렵사리 물량을 조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러시아의 미사일 소모량은 상당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7월17일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발사한 순항미사일이 3000발을 넘는다"며 "포격을 포함한 다른 공격의 횟수는 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비난했다. 2월24일 개전 이래 하루 평균 20발 이상의 순항미사일이 우크라이나 땅에 떨어진 셈이다. 미사일의 다량 사용으로 재고가 소진되자 '소 잡는 데 쓰는 칼을 닭 잡는 데 마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침공 초기 지상군이 밀리면서 러시아군의 미사일 의존도가 높아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ABC뉴스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행적을 정밀 관측해온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가 Kh-22를 비롯한 대함 순항미사일을 지상 목표물 공격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항모 파괴용으로 개발된 이 미사일이 민간 지역에 떨어지면서 비극을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 국방부는 이런 종류의 미사일은 대단히 부정확해 심각한 부수적 피해와 희생자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군사적으로 부수적 피해란 민간인 피해를 주로 가리킨다.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민간인들이 무차별 희생되고 있는 셈이다.
미군은 지난 2주간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100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추산했다. 키이우 주재 미국대사관은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즉각 출국을 권고했다. 중부 크레멘추크와 서남부 세르히브카에 이어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었던 몰도바 국경 인근의 서부 빈니차까지 러시아의 순항미사일 공격을 받아 민간인이 희생되면서다. 미국까지도 우크라이나에 더는 안전한 곳이 없다는 판단 아래 자국민의 철수를 종용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미사일 공격은 어느 정도 효과를 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일부에서 전쟁에 대한 염증이나 불안 여론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도 만만치 않다. 7월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책임 회의'에 참가한 미국, 유럽연합(EU) 회원국, 캐나다, 멕시코, 호주 등 45개국은 러시아의 공격에 따른 잇따른 민간인 희생과 관련해 러시아를 전쟁범죄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러시아의 민간인 공격을 통제하고, 전쟁을 속히 끝내기 위한 지혜나 힘을 모으기에 국제사회는 여전히 무기력해 보인다. 무엇보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유권자 앞에서 러시아 제재나 우크라이나 지원 카드를 충분히 날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으로선 모든 신경을 국내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다. 이 틈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마음껏 휘젓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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