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우영우' 18세 바이올리니스트의 꿈
다섯 살에 자폐 판정..음악으로 치료
매일 4~5시간 연습·각종 콩쿠르 휩쓸어
서울시향과 연이어 한 무대 서며 주목
"음악은 내 전부..정명훈, 양인모처럼 되고파"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열여덟 살의 바이올리니스트는 무대에 올라 인사한 뒤 10여 명의 동료들과 눈을 맞췄다. 음을 매만지며 조율까지 하고 나면, 연주를 위한 준비 완료. 발달장애 2급의 공민배 군(화성나래학교·18)은 이 무대에서 제 1바이올린이자, 악장의 역할까지 맡았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에서다.
“보통 자폐를 가진 아이들의 특징이라고 정의된 것을 보면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어려워하고, 순간적으로 변화에 반응하는 것을 꺼려하는데 민배는 완전히 정반대인 친구였어요.”
서울시향 단원 최해성(바이올린)은 민배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떠올렸다. 두 사람의 인연은 서울시향의 사회공헌사업인 ‘행복한 음악회, 함께!’에서 시작됐다.
이 음악회는 지난 2017년 서울시향의 정기공연 관람 중 객석에서 자폐아동이 소란을 일으켰던 것이 계기가 돼 출발했다. ‘음악엔 장애도 편견도 없다’는 가치를 담아,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을 열고자 했다. 단순히 관람을 넘어 음악회는 전문 연주자를 꿈꾸며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는 ‘미래 음악가’들의 성장을 돕는 프로젝트로 확장됐다. 공민배 군은 올해 ‘행복한 음악회, 함께!’를 열기 위해 오디션을 통해 뽑힌 여섯 명의 학생 중 한 명이다. 2008년 입단한 최해성이 공민배 군을 지도했다.
이날 만난 공민배 군은 “인스타그램에서 공지를 보고 지원해, 3월 21일에 오디션을 봤다”고 말했다. 공민배 군의 어머니인 임미숙 씨는 “매일 서울시향은 물론 전 세계 악단들을 다 찾아본다”며 “행복한 음악회 지원서도 민배가 직접 작성해서 냈다”고 말했다.
“오디션에선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중 1악장을 연주했는데, 하나도 떨리지 않고 너무나 즐겁고 재밌었어요.” (공민배)
공민배 군은 ‘현실의 우영우’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고기능 자폐’를 안고 있다.
다섯 살에 자폐 판정을 받은 공민배 군이 음악을 접한 건 치료 차원의 시작이었다. 임미숙 씨는 “어릴 땐 소리를 듣는 것을 힘들어 해 늘 손으로 귀를 막고 다녔는데, 음악을 통해 치료가 많이 됐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한 분야에 파고 드는 자폐 특성이 ‘음악적 재능’으로 발현됐다.
공민배 군은 “피아노를 치다가 열한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악기를 바꾼 것에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바이올린이 더 좋았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로의 꿈을 키우고 있는 공민배 군은 개인 레슨을 받으며, 매일 4~5시간씩 연습 시간을 갖고 있다. 전국 장애인 콩쿠르 대상(2017), 한국 클래식 콩쿠르 대상(2020), 전국 학생 온라인 콩쿠르 대상(2021) 등 다수의 콩쿠르에서 트로피를 휩쓸 만큼 음악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연주자다. 최해성은 “민배가 오디션에서 연주한 ‘시벨리우스 협주곡’은 바이올린 레퍼토리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곡 중 하나다.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으면 다른 레퍼토리는 거의 다 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며 “제 경우엔 고등학교 때 어려워 엄두도 내지 못한 곡”이라고 말했다. 공민배 군은 “스스로 더 성장하고, 나중에 서울시향과 그 곡으로 연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벨리우스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번 연주회를 위해 지난 석 달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며 호흡을 맞췄다. 공민배 군은 “집에서 서울시향까지 2시간 22분이 걸린다”고 했다. 어머니의 도움도 없이 혼자 지하철을 타고 오는 이 길이 공민배 군에겐 더없는 행복이다.
“선생님과 서울시향에서 첫 리허설을 시작한 4월 26일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이 즐겁고 행복했어요. 서울시향에 오는 날이 가장 행복해요.” (공민배)
연주회의 준비 과정에서 주력했던 것은 다른 연주자와의 “소통과 호흡”이다. 최해성은 “민배는 이미 연주를 잘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가 아닌 함께 연주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고 말했다.
“음악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자기 파트를 연주해 내는 것에 집중했어요. 우리가 사회생활 하면서 타인에게 귀 기울이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적절히 내야 하는 것과 같은 거죠. 함께 하는 것, 눈짓을 주고 받고 사인을 나누는 것, 달라진 템포에 반응하고 공부하는 것에 중점을 뒀죠. 민배는 자기가 배운 걸 집중해서 잘 소화해냈어요.” (최해성)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로 공민배 군의 연주엔 음악을 향한 넘치는 사랑이 묻어난다. 최해성은 “민배는 일반 학생들 수준의 연주 실력을 가지고 있고, 연주 스타일은 굉장히 정열적”이라고 했다. 리허설 중엔 너무 격렬하게 연주해 활이 부러진 적도 있다. “어려운 레퍼토리들을 수월하게 소화해내기도 하지만 마음이 많이 앞서다 보니 소리와 음악을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아요. 넘치는 에너지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면 더 좋은 연주자가 되리라 생각해요.” (최해성)
석 달을 함께 한 서울시향 단원들과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만남은 서로에게 많은 이야기가 남겼다. 최해성은 “아이들을 통해 우리가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됐다”며 “음악의 알 수 없는 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고 했다.
“음 하나를 긋는 것, 소리 하나를 내는 것이 저희에겐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일 수 있는데 친구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그 행복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큰 선물이었어요. 이 과정을 통해 음악의 알 수 없는 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어요. 음악은 장애를 넘어, 그것을 잊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믿음과 증거를 보게 됐어요.” (최해성)
지난 5월 ‘행복한 음악회, 함께!’와 최근 열린 ‘SPO 패밀리데이’에 이어 이날 서울시향과 마지막 공연을 끝낸 공민배 군의 얼굴엔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는 “즐겁고 행복한 연주였지만, 헤어져야 하는 공연이라 너무 아쉽고 서울시향과 계속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민배 군의 연주도 여기가 끝은 아니다. 공민배 군은 다음 달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코리아 아트빌리티 체임버, 데이비드 이 서울시향 부지휘자와 함께 하는 ‘썸머 브리지 콘서트’(아트센터인천, 8월 5일) 공연도 예정돼있다.
“선생님과 만나면서 많이 느끼는 음악을 배웠어요. 음악은 제 인생의 전부예요. 구스타보 두다멜, 파보 예르비, 정명훈, 오스모 벤스케, 김은선, 윌슨 응, 사이먼 래틀처럼 지휘도 해보고 싶고, 리처드 용재오닐, 한수진, 양인모, 크리스티안 폴테라처럼 연주해보고 싶어요. 또 다른 무대를 기대하면서 더 연습하려고 해요.” (공민배)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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