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한마디에 13만 경찰, '잠재적 쿠데타 동원 병력'으로 전락하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스타 장관'이 나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이 장관은 경찰국 신설에 반발하는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를 하나회와 12.12 쿠데타에 비유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군으로 치면 각자의 위수지역을 비워놓고 모임을 한 건 거의 하나회의 12·12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으로 대단히 부적절하다.", "경찰은 물리력과 강제력, 심지어 무기도 소지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이 자의적으로 한 군데 모여 회의를 진행하면 대단히 위험하다.", "특정(경찰대) 출신들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회에 준한다."
이상민 장관의 '쿠데타' 발언이 나올 무렵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행안부와 경찰청에서 필요한 조치를 잘 해나갈 것으로 본다"고 이 장관에게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윤 대통령의 고교 대학 후배이자, 현 정부 '실세'로 통하는 이 장관의 인식과 윤 대통령의 인식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밥투정'하는 경찰들에게 '쿠데타'라고 한마디 퍼 부은 게 이 장관 입장에서 시원할 순 있겠다. 그런데 정치인 대통령과 정무직 장관은 이런 발언이 몰고 올 파장을 미리 생각했어야 했다.
윤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 하락은 이번 '경찰의 난'으로 모두 설명될 수 있다. 이 사례는 윤석열 정부의 현재를 보여주는 샘플러로서 정확하게 기능한다. 한국갤럽이 지난 2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부정 평가는 60%에 달했다. 부정 평가 이유로 응답자는 '인사(人事)'(24%), '경제·민생 살피지 않음'(10%), '경험·자질 부족·무능함'(8%), '독단적/일방적'(5%) '소통 미흡'(5%) '직무 태도'(5%), '정책 비전 부족'(4%) 등을 들었다. (19∼21일 1000명 대상 전화면접 방식. 응답률 11.1%, 오차범위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기에서 '인사 문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라 제외하자.
경찰국 신설 사태가 이슈 주목도를 집어삼킨 이유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와, 전광석화같은 주도자 징계였다. 윤 대통령과 이 장관은 국회를 우회한 시행령을 통해 경찰국 신설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런데 행안부가 국회에 보낸 '행안부-법제처 간 입법예고 단축 사유서 및 확인서'에 따르면 이 사안은 "국민의 권리, 의무 또는 일상 생활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경우"라고 설명돼 있다. 이런 이유로 입법 예고 기간을 40일에서 4일로 대폭 단축해 속도전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일상 생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의 이 속도전이 일선 경찰서장들의 긴급한 회의 개최를 부추겼다. '쿠데타에 준하는' 사태의 원인은 행안부에 있다고 하겠다. 행안부가 직접 밝힌대로 경제, 민생에 대한 '살핌'은 여기에 없다.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토론을 요구하고 '안건 심의를 늦춰달라'고 의견을 낸 총경들에게 이 장관이 건넨 말은 '쿠데타'였다. 이 장관은 자신이 내놓은 이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 이건 경찰대 출신 특정 간부들을 '하나회'에 비유한 수준을 넘어선 발언으로, 일선 경찰들을 '쿠데타 모의 세력의 명령에, 무장 병력으로 동원돼 나라를 전복할 수 있는 존재'로 간주했다는 데에서 심각한 정무적 하자를 안고 있다.
노태우가 전방 9사단 병력을 서울로 진격시킨 것처럼, '하나회'에 준하는 특정 '세력'의 불법적 지시에 따라 경찰들이 무장하고 국민을 향해 총칼을 겨눌수 있다는 가설이다. 이는 서장들이 아니라 일선 경찰들에게 대단히 모욕적인 언사다. 21세기에 쿠데타와 같은 불법적 명령에 무기를 들고 서울로 진격할 경찰들이 과연 존재할까? 인터넷 시대에 그 정도로 경찰들의 지식·정보 수준과 품성, 교육 수준이 형편없다는 걸까? 6공화국 헌법은 쿠데타 방지를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 헌법에 따라 복무하겠다고 선언한 13만 경찰들이 유신 헌법 치하의 쿠데타 군에 비유당한 것도 굴욕을 안긴다. 또 대체 어느 쿠데타 세력이 관외여행 신고를 하고 휴가날에 모여 기자들을 부르고 무력 쿠데타를 모의하나.
이 장관은 "오늘 제가 발표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 하고서 이러한 모임을 하는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부화뇌동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이라고 말도 해 경찰들의 반발을 '무지의 소산'으로 치부해버렸다. 여기에 소통은 없다. 장관은 정무직이다. 정무적 관리를 통해 있던 갈등도 없애야 할 판에, 없던 갈등에 불을 지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청 업체 파업이 노사 합의로 일단락되자 이상민 장관은 정부 입장문을 통해 "그간 정부는 법과 원칙에 기반하여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고 말하면서 뒤에선 파업 현장에 경찰 특공대 투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화와 타협'을 말하면서 '경찰특공대 투입'을 검토하는 이중적 행태도 소통하는 자세가 아니다.
스스로 "국민의 일상 생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 사안을 이렇게까지 키운 것은 윤 대통령과 이 장관의 '정무 감각 부재'를 부각시킨다. 지지율 하락에 따른 조급함이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권자는 어떤 사안 그 자체보다 '사안을 다루는 태도'를 본다. 이것이 국정동력으로 이어진다. 독선의 이미지가 강화되는 것은 향후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을 발목잡을 족쇄가 될 수 있다.
한미 쇠고기협정으로 시작된 광화문 시위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철회로 이어진 과정은, 보수 진영 일각에서 말하는 '광우병 선동' 때문이 아니다. 몽둥이를 든 경찰들에게 내린 시위대 강경 진압 명령, 그리고 불통의 상징인 '명박산성'의 기괴한 퍼포먼스에 대한 정서적 반감 때문이었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이명박 정부의 교훈을 잘 새겨야 한다. 일선 13만 경찰을 '쿠데타 동원 가능 병력'으로 치부한 발언에 대해 이상민 장관은 마땅히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 진행되는 경찰국 신설 이슈의 일방적 속도전을 멈추고 토론과 소통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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