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감세로 재정건전화? 정부의 난센스[김유찬의 실용재정](11)

2022. 7. 2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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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재정지출, 재정수지, 국가채무를 제약하는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하고 실효성을 주기 위해 법적 근거를 두겠다고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에서 재정수지 증가와 국가채무 누적이 예상되기 때문에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한 종합적·체계적 정책의 수립 및 시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기후변화, 글로벌 공급망 위기, 인플레이션(물가 오름세), 양극화 등 중첩된 위기의 경제사회적 여건에서, 최후의 구원자인 정부의 재정지출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규범을 서둘러 도입하는 일이 과연 현실적으로 적합한 것인지 묻고 싶다. 제 손발을 묶는 행위다. 실사구시적이고 균형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정책당국자들의 사고 틀에서 나올 수 있는 해법인지 허탈하고 실망스럽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운데)가 7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2022 세제 개편안 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전임 정부가 확장재정을 통해 국가부채를 늘렸으므로 재정정책 기조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논리인데,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라는 예외적인 국면에 있었다. 코로나19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여건이라는 의미다. 주요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은 매우 신중한 수준의 확장정책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코로나19 정점기인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의 경우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26.0%포인트 증가한 데 비해 한국은 7.6%포인트에 그쳤다.

주요국 재정준칙 운영성과 평가

1990년 5개국에 불과하던 재정준칙 도입 국가가 2012년 76개국에 이를 정도로 빠르게 증가했으나, 이들의 재정준칙 형태와 내용은 다양했으며 법제화의 수준도 상이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려는 많은 나라에서 대규모의 재정지출이 필요했고, 재정준칙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추구하던 국가들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엄격한 준칙의 적용은 적극적 재정운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재정준칙은 더 이상 엄격한 준수를 요구하지 않고, 유연성과 강제성의 조화가 요구됐다. 준칙의 내용, 준칙 이탈 후의 복귀 방법에 대한 요구도 다양해지면서 준칙의 운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관료 전문가들의 소통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이 인식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으로 인해 재정준칙을 이미 도입한 유럽국가들도 재정준칙을 완화하거나 효력을 정지시켰다. 유럽연합(EU)은 재정준칙인 안정·성장협약(SGP)을 도입해 엄격히 시행해 왔으나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을 맞아 재정준칙 준수를 일시 중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엄격한 재정준칙을 유지한 유로존 일부 국가들의 경우 경제의 근본역량 자체가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경제위기 이후 주요 국가들의 재정정책은 코로나19 이전과 매우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율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회복까지는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들고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따라서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어떻게 정착되는지를 보면서 재정준칙을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경제위기 시기에는 재정이 위기극복, 거시경제 안정화, 복지제공 등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정준칙은 경기 대응과 예기치 못한 국가적 위기의 재정 대응에 유효할까. 정부 역할의 적극성과 유연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국가부채 수준의 제한은 정부투자를 통한 국가경제의 위기극복을 어렵게 한다. 민간경제에 부담을 가중시켜 결과적으로 국가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경기침체 때 재정지출 확대 및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한 효과가 더욱 크다는 국제기구들의 최근 연구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경제위기 때 정부지출 확대를 통한 고용보험 등 ‘자동안정화장치’는 경기 변동의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 위기회복 과정에서 지출을 줄이고 세수를 늘려 재정적자가 감소한다. 이러한 적자감소의 속도는 경제가 회복되는 속도에 따라 결정된다. 무엇보다 저금리와 저물가 기조에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는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기존 재정균형론이 이를 간과한 것은 명백한 한계로 지적돼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 주거권네트워크, 집걱정없는세상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6월 2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의 주거대책과 감세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불확실성이 높은 현시점에서 재정준칙을 논의하는 것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오히려 재정을 덜 쓰는, 잘못된 경기 대응을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위기가 진행되는 시기임에도 위기의 경중을 보는 시각에 따라 재정준칙 적용의 예외조항을 둘 것인지 그 자체를 놓고 논란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전문가 집단의 의견도 상이한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오히려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폭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부자감세하면서 재정건전화라니

재정준칙 도입이 복지지출 증가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복지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직면한 저성장 및 양극화의 해결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주요 선진국들의 재정준칙은 1990년대 이후 복지제도가 충분히 확충된 상태에서 과도한 복지지출 증가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이는 복지를 더욱 확충해 나가야 할 한국과는 다른 상황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중장기적인 재정안정화 차원에서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재정지출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에 의한 디지털 기술변화는 큰 폭의 정부투자를 필요로 한다. 재정준칙에서 더 나아가 고령인구의 사회적 교육 및 일자리 재교육 마련도 시급하다.

재정건전성을 진정으로 우려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시도 중인 부자감세를 중단해야 한다. 많은 정부가 경제위기에서 일반적으로 중저소득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감세를 선택하는 것에 비해 매우 특별하게도 윤석열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소득 최상위 계층에게만 유리한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의 혜택은 결국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는 상위 1% 계층에게 귀속될 것이며, 부동산에 대한 감세는 고가주택 소유자들에게, 그리고 상속증여세 인하는 역시 자산 상위계층에게 혜택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들의 계좌에 소비로도 투자로도 사용되지 않고 고여 있는 여분의 자금을 더 늘려주는 건 국민경제에 어떤 형태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정건전성만 해친다. 부자감세를 하면서 재정건전성을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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