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공수처'를 찾습니다
2022. 7. 26. 08:10
'서해 공무원 피격'과 '탈북어민 북송' 사건 수사 의지 없어
공수처는 ‘서해 공무원 피격’과 ‘탈북어민 북송’ 등 2개 사건의 이첩을 검찰에 요청할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건 이첩 요청은 곧 직접 수사하겠다는 의미다. 두 사건은 정치권에서 촉발됐다. 여야가 연일 첨예한 공방을 이어간다. 전례를 보면 이런 ‘정치화’된 사건은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논란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들 사건은 공수처가 담당하기에 적격이다.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비춰보면 그렇다. ‘기존 검찰이 권력 범죄나 정치적 성격이 짙은 사건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처리했다’는 문제의식이 공수처의 출범 배경 중 하나다. 정치적 논란이 있는 사건을 독립기관인 공수처가 공정하게 처리하라는 취지다.
공수처의 답변은 ‘향후 검찰에 사건 이첩을 요청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는 직접 수사에 나설 의향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공수처는 물밑에서 역량 강화를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출범하고 1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공수처는 언제쯤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고발장 모두 검찰로 두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가 각각 맡았다. 이들 부서는 최근 검사 3명을 파견받아 인력을 보강했다. 신속히 결론을 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 검찰은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수사는 사건 당사자의 유족과 시민단체, 국정원 등의 고발로 시작됐다. 고발장은 모두 검찰에 제출했다. 피고발인에는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지난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특히 ‘서해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의 당사자인 고 이대준씨의 유족은 지난 6월 고발장을 내며 공수처를 향한 불신을 드러냈다. 유족 측은 “문재인 정부 때문에 상처를 입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공수처장이 수사한다면 2차 가해”라고 말했다.
피고발인들의 과거 직위와 고발장에 담긴 죄명(형법·국정원법상 직권남용 등)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다. 공수처법에 따라 검·경 등 다른 수사기관은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하면 이를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 공수처는 해당 사건의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아울러 ‘수사 진행 정도’와 ‘공정성 논란 등’을 고려해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 이첩을 요구할 수 있다. 이때 해당 기관은 공수처의 요청에 따라야 한다. 즉 다른 수사기관도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수사할 수는 있으나, 수사 주체는 공수처가 최종 결정하는 구조다. 공수처의 핵심 권한이자 존립의 주춧돌이다.
그럼에도 공수처가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공수처가 그간 보여준 수사역량과 정치적 중립 논란 등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맞물려 검찰에 사건 이첩을 요구하면 다른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검찰은 공수처의 사건 이첩 요구를 거부한 전례가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런 사건들에서 정치적 공방과 논란을 줄이기 위해 중립기관이 수사하라는 취지에서 공수처를 설립한 것”이라며 “다만 공수처가 이 사건들을 처리할 능력을 갖췄느냐는 문제를 놓고선 다른 판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재 국면에서 공수처가 사건 이첩을 요구하면 그 의도 등을 두고 또 다른 정치적 소용돌이가 몰아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태생적 한계인가 공수처는 현재 수사 및 조직의 역량 강화를 중점 과제로 삼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이를 위한 정책연구용역을 발주하기도 했다. 현재 업체가 선정됐고 오는 10월까지 연구를 벌인다.
연구용역 ‘과업 지시서’를 보면 조직체계의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공수처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 내용은 ‘조직체계 적정성 및 강화 방안’, ‘인적 역량 강화 방안’, ‘해외 반부패 수사기관 사례 소개 및 시사점 도출’ 등 크게 세 분류이다.
우선 공수처는 조직 규모를 대폭 키워야 한다고 본다. 공수처는 연구를 통해 검·경 등과 기능, 인력을 비교하고 적절한 공수처의 수사·행정 인력을 도출토록 주문했다. 공수처에 기대되는 조직 역량과 실제 역량 사이의 괴리를 분석해 대안 마련도 요구했다. 김진욱 공수처장도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검사의 적정 인원은 세자리 숫자, 그게 안 된다면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 제시했던 원안(50명)은 돼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라며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2021년 4월 검사 13명으로 출발할 당시 “수사력에 문제가 없다”고 밝힌 것과는 정반대의 입장 표명이다.
현재 공수처 검사는 22명으로 정원(25명)을 채우지 못한 상태다. 수사관도 30명으로 정원 40명에 못 미친다. 공수처는 우수한 인력 확보를 가로막는 제약 사항을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일도 연구 과제에 넣었다. 이는 공수처 검사·수사관의 불안정한 신분(임기제)과도 연결된다. 인재 유입에 걸림돌이 된다고 파악하고 있는 부분이다. 김 처장은 지난 6월 정례브리핑에서 수사력 문제 해소를 위해 검찰 출신이 많이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공수처법상 검찰 출신은 정원의 50%(12명)를 넘을 수 없다. 검찰을 견제한다는 공수처 설립 취지에 따라 마련된 조항이다.
공수처의 조직·인력체계는 모두 법 개정 사안이다.
국과수 교육에 처장도 동행 공수처에 적합한 인재 개발 계획 마련도 연구 과제 중 하나다. 이와 별도로 공수처는 현재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7월에 4차례에 걸쳐 검사·수사관을 대상으로 수사 실무교육을 실시했다. 이들은 법무부 산하 법무연수원이 제작한 수사실무 관련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7월 14일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방문해 디지털 포렌식 관련 최신 기술 동향과 수사 기법 등을 교육받았다. 이 자리엔 김진욱 처장까지 동행했다.
“공수처가 뭔가 해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게 지켜봐야 할 것 같다”(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긍정 평가와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비판이 함께 나온다. 공수처가 지난해 여러 수사를 벌이기 전에 이런 교육 등으로 기본을 다졌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한 법조인은 “사법시험 통과 이후 사법연수원에서 교육받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는 혹평을 내놓았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출범 초기에 6~12개월 정도의 훈련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라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온갖 사건을 입건하는 바람에 정치적 혼란을 준 측면이 있다. 사건 처리의 객관성이나 능력 면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공수처의 이첩 요구권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해 6월 공수처의 이첩 요구를 다른 수사기관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조항 등을 삭제하는 내용이 담긴 공수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모두 공수처의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들이다.
이 밖에 ‘범죄의 인지’ 개념과 불기소 권한 등을 두고 해석이 엇갈려 관련 법 조항의 정비도 필요하다. 공수처 제도가 안착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 처장은 지난 5월 “초대 처장의 역할은 사건 한두건의 성과보다 인적·물적·규범적 시스템의 토대를 마련하고 시스템이 잘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해당 사건은 검찰에 고발돼 수사가 진행 중인 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도 사건 진행 상황 등은 지켜보고 있다. 검찰에서 충실한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공수처는 ‘서해 공무원 피격’과 ‘탈북어민 북송’ 등 2개 사건의 이첩을 검찰에 요청할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건 이첩 요청은 곧 직접 수사하겠다는 의미다. 두 사건은 정치권에서 촉발됐다. 여야가 연일 첨예한 공방을 이어간다. 전례를 보면 이런 ‘정치화’된 사건은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논란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들 사건은 공수처가 담당하기에 적격이다.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비춰보면 그렇다. ‘기존 검찰이 권력 범죄나 정치적 성격이 짙은 사건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처리했다’는 문제의식이 공수처의 출범 배경 중 하나다. 정치적 논란이 있는 사건을 독립기관인 공수처가 공정하게 처리하라는 취지다.
공수처의 답변은 ‘향후 검찰에 사건 이첩을 요청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는 직접 수사에 나설 의향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공수처는 물밑에서 역량 강화를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출범하고 1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공수처는 언제쯤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고발장 모두 검찰로 두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가 각각 맡았다. 이들 부서는 최근 검사 3명을 파견받아 인력을 보강했다. 신속히 결론을 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 검찰은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수사는 사건 당사자의 유족과 시민단체, 국정원 등의 고발로 시작됐다. 고발장은 모두 검찰에 제출했다. 피고발인에는 박지원·서훈 전 국정원장,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지난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특히 ‘서해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의 당사자인 고 이대준씨의 유족은 지난 6월 고발장을 내며 공수처를 향한 불신을 드러냈다. 유족 측은 “문재인 정부 때문에 상처를 입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공수처장이 수사한다면 2차 가해”라고 말했다.
피고발인들의 과거 직위와 고발장에 담긴 죄명(형법·국정원법상 직권남용 등)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다. 공수처법에 따라 검·경 등 다른 수사기관은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하면 이를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 공수처는 해당 사건의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아울러 ‘수사 진행 정도’와 ‘공정성 논란 등’을 고려해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 이첩을 요구할 수 있다. 이때 해당 기관은 공수처의 요청에 따라야 한다. 즉 다른 수사기관도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수사할 수는 있으나, 수사 주체는 공수처가 최종 결정하는 구조다. 공수처의 핵심 권한이자 존립의 주춧돌이다.
그럼에도 공수처가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공수처가 그간 보여준 수사역량과 정치적 중립 논란 등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맞물려 검찰에 사건 이첩을 요구하면 다른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검찰은 공수처의 사건 이첩 요구를 거부한 전례가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런 사건들에서 정치적 공방과 논란을 줄이기 위해 중립기관이 수사하라는 취지에서 공수처를 설립한 것”이라며 “다만 공수처가 이 사건들을 처리할 능력을 갖췄느냐는 문제를 놓고선 다른 판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재 국면에서 공수처가 사건 이첩을 요구하면 그 의도 등을 두고 또 다른 정치적 소용돌이가 몰아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태생적 한계인가 공수처는 현재 수사 및 조직의 역량 강화를 중점 과제로 삼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이를 위한 정책연구용역을 발주하기도 했다. 현재 업체가 선정됐고 오는 10월까지 연구를 벌인다.
연구용역 ‘과업 지시서’를 보면 조직체계의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공수처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 내용은 ‘조직체계 적정성 및 강화 방안’, ‘인적 역량 강화 방안’, ‘해외 반부패 수사기관 사례 소개 및 시사점 도출’ 등 크게 세 분류이다.
우선 공수처는 조직 규모를 대폭 키워야 한다고 본다. 공수처는 연구를 통해 검·경 등과 기능, 인력을 비교하고 적절한 공수처의 수사·행정 인력을 도출토록 주문했다. 공수처에 기대되는 조직 역량과 실제 역량 사이의 괴리를 분석해 대안 마련도 요구했다. 김진욱 공수처장도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검사의 적정 인원은 세자리 숫자, 그게 안 된다면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 제시했던 원안(50명)은 돼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라며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2021년 4월 검사 13명으로 출발할 당시 “수사력에 문제가 없다”고 밝힌 것과는 정반대의 입장 표명이다.
현재 공수처 검사는 22명으로 정원(25명)을 채우지 못한 상태다. 수사관도 30명으로 정원 40명에 못 미친다. 공수처는 우수한 인력 확보를 가로막는 제약 사항을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일도 연구 과제에 넣었다. 이는 공수처 검사·수사관의 불안정한 신분(임기제)과도 연결된다. 인재 유입에 걸림돌이 된다고 파악하고 있는 부분이다. 김 처장은 지난 6월 정례브리핑에서 수사력 문제 해소를 위해 검찰 출신이 많이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공수처법상 검찰 출신은 정원의 50%(12명)를 넘을 수 없다. 검찰을 견제한다는 공수처 설립 취지에 따라 마련된 조항이다.
공수처의 조직·인력체계는 모두 법 개정 사안이다.
국과수 교육에 처장도 동행 공수처에 적합한 인재 개발 계획 마련도 연구 과제 중 하나다. 이와 별도로 공수처는 현재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7월에 4차례에 걸쳐 검사·수사관을 대상으로 수사 실무교육을 실시했다. 이들은 법무부 산하 법무연수원이 제작한 수사실무 관련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7월 14일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방문해 디지털 포렌식 관련 최신 기술 동향과 수사 기법 등을 교육받았다. 이 자리엔 김진욱 처장까지 동행했다.
“공수처가 뭔가 해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게 지켜봐야 할 것 같다”(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긍정 평가와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비판이 함께 나온다. 공수처가 지난해 여러 수사를 벌이기 전에 이런 교육 등으로 기본을 다졌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한 법조인은 “사법시험 통과 이후 사법연수원에서 교육받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는 혹평을 내놓았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출범 초기에 6~12개월 정도의 훈련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라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온갖 사건을 입건하는 바람에 정치적 혼란을 준 측면이 있다. 사건 처리의 객관성이나 능력 면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공수처의 이첩 요구권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해 6월 공수처의 이첩 요구를 다른 수사기관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조항 등을 삭제하는 내용이 담긴 공수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모두 공수처의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들이다.
이 밖에 ‘범죄의 인지’ 개념과 불기소 권한 등을 두고 해석이 엇갈려 관련 법 조항의 정비도 필요하다. 공수처 제도가 안착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 처장은 지난 5월 “초대 처장의 역할은 사건 한두건의 성과보다 인적·물적·규범적 시스템의 토대를 마련하고 시스템이 잘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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