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에 평화를.." 노벨상 수상자 트림블 별세

김태훈 2022. 7. 2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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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간 갈등으로 유혈충돌이 끊이지 않았던 영국령 북(北)아일랜드에서 분쟁을 종식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이비드 트림블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초대 수석행정장관이 25일(현지시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최근 북아일랜드에서 탈(脫)영국 및 이웃 아일랜드와의 결합 움직임이 거센 가운데 고인의 타계 소식이 이 지역에 어떤 울림을 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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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굿프라이데이 평화협정' 체결의 주역
협상 파트너 흄과 그해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

종교 간 갈등으로 유혈충돌이 끊이지 않았던 영국령 북(北)아일랜드에서 분쟁을 종식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이비드 트림블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초대 수석행정장관이 25일(현지시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최근 북아일랜드에서 탈(脫)영국 및 이웃 아일랜드와의 결합 움직임이 거센 가운데 고인의 타계 소식이 이 지역에 어떤 울림을 줄지 주목된다.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고인의 유족은 성명에서 “트림블 전 장관이 짧은 투병 끝에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리게 매우 슬프다”고 밝혔다. ‘짧은 투병’이라고만 했을 뿐 정확한 사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25일(현지시간) 타계한 1998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이비드 트림블. AP연합뉴스
고인은 1944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북아일랜드 최대 도시 벨파스트의 퀸스대학교를 졸업했다.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68∼1990년 모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끊임없는 분쟁과 그에 따른 인명피해를 끝장내겠다는 꿈을 안고 북아일랜드 정계에 뛰어들었다.

아일랜드가 1937년 영국에서 독립할 당시 벨파스트를 중심으로 한 섬의 북부지역은 그에 동참하지 않고 영국에 남았다. 이후 북아일랜드는 가톨릭을 믿으며 민족적·정서적으로 아일랜드와 가까운 이른바 ‘신페인’, 그리고 개신교를 신봉하며 영국에 친밀감을 느끼는 이른바 ‘얼스터’, 두 진영으로 갈라져 반목을 거듭해왔다. 특히 신페인 측에서도 강경파 일색인 ‘아일랜드공화군’(IRA)이란 무장조직은 “북아일랜드를 영국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며 폭력과 테러를 일삼았다. 그로 인해 1990년대까지 3500여명이 목숨을 잃는 등 끔찍한 희생을 치렀다.

고인은 영국에 가까운 얼스터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북아일랜드의 분리독립에 반대하고 IRA 해산을 요구하는 등 신페인 쪽에서 볼 때는 강경파 정치인었다. 그런데 신페인 계통의 북아일랜드 사회민주노동당 당수 존 흄과는 ‘죽’이 잘 맞았다. 흄은 오직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북아일랜드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만을 목표로 삼은 온건파 정치인이었다. IRA로부터 ‘배신자’란 비난을 들어도 개의치 않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고인과 흄을 필두로 북아일랜드 각 정파가 머리를 맞대고 평화를 정착시킬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영국 및 아일랜드 정부도 함께 참여했다. 고인의 강경파 이미지가 때로 협상을 결렬 직전까지 몰아갔으나 흄의 끈질긴 설득 노력 등에 힘입어 1998년 4월 벨파스트에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일명 ‘굿프라이데이 협정’)이 체결됐다. 이를 통해 IRA가 외쳐 온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주장은 힘을 잃고 가톨릭과 개신교, 친(親)아일랜드계와 친영계 주민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자치정부를 운영하게 됐다. 고인은 새롭게 출범한 이 북아일랜드 자치정부의 초대 수석행정장관에 취임했다.
2000년 3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 초청으로 백악관에 모인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체결의 주역들. 왼쪽부터 신페인당 당수 제리 애덤스, 사회민주노동당 당수 존 흄, 클린턴 대통령,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초대 수석행정장관 데이비드 트림블. 이 가운데 흄과 트림블은 1998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AP연합뉴스
노벨위원회는 1998년 10월 벨파스트 협정을 통해 북아일랜드에서 유혈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킨 공로를 들어 고인과 흄을 나란히 그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공동 수상자인 흄은 2년 전인 2020년 83세를 일기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최근 북아일랜드에선 새로운 갈등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가톨릭을 믿고 친아일랜드 성향이 강한 신페인당이 처음으로 자치정부 의회 다수당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신페인당 당수 미셸 오닐은 “북아일랜드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며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통일이라는 신페인당의 목표를 주제로 솔직하게 토론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향후 5년 이내에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1998년 벨파스트 협정이 자칫 무효화할 상황에 내몰린 가운데 고인의 타계 소식이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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