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검거에 국경은 없다" 베트남에서 검거된 동남아 마약왕

조해수 기자 2022. 7. 2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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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폴, 베트남 현지 경찰과 3년여 공조 수사 끝에 마지막 남은 동남아 마약왕 검거

(시사저널=조해수 기자)

범죄액션 영화 《범죄도시2》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1000만 명 관객을 모았다. 영화는 베트남 최대 도시인 호찌민을 배경으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납치·강도·살해를 일삼는 범죄자를 소탕하는 내용이다. 마석도(마동석 분) 형사는 "범인을 잡는 데 국경은 중요치 않다"며 베트남을 종횡무진한다.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베트남에서 검거된 마지막 피의자 김모씨가 7월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강제 송환되고 있다.ⓒ연합뉴스

70억원 상당의 마약 국내 유통시킨 '사라 김'

영화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졌다. 경찰은 7월19일, 베트남에서 약 70억원어치의 마약을 유통하던 40대 남성 A씨(일명 '사라 김')를 붙잡아 국내로 강제 송환했다고 밝혔다. 사라 김은 2018년부터 텔레그램을 이용해 필로폰과 합성 대마 등 마약을 국내로 밀수입·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가 '동남아 마약 밀수의 최상선 총책'이라고 지목했다.

사라 김은 그동안 서울, 경기, 인천, 강원 등 전국 13개 수사기관의 수배를 받았다. 경찰은 사라 김이 베트남에 머무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 3년간 베트남 공안부와 국제 공조를 한 끝에 검거에 성공했다.

사라 김은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한명이다. 국내 판매책 등 공범만 20여 명에 이른다. 베트남으로 도주한 후 머리도 염색하고 피부도 까맣게 태워 현지인 행사를 했다고 한다. 국내로 마약을 밀반입하기 위해, 마약이 담긴 봉지를 '구슬 공예품'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사라 김이 국내 수사기관에 꼬리를 잡힌 것은 마약을 국내로 유입하는 속칭 '지게꾼'을 검거하면서부터다. 2020년 9월경 K씨와 S씨는 인천공항을 통해 필로폰을 들여오려다 적발됐다. 이들은 사라 김에게 마약을 건네받아 1g당 약 10만~15만원을 받고 마약을 국내에 유통했다. 사라 김은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국내 마약을 주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마약을 어떻게 해외에서 국내로 밀반입하는가'이다. 영화 《마린보이》에서는 마약을 비닐로 감싼 다음 이를 삼킨 후 들여오는 방법이 나온다. 몸속에서 비닐이 터지면 운반책은 즉사할 수밖에 없는 위험천만한 방법이다. 사라 김의 운반책인 K씨와 S씨 역시 이 방법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위험성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대담하게도 캐리어에 마약을 넣어 들여오는 방법을 택했다. 구슬 공예품으로 위장한 것이다. 필로폰을 비닐랩 등으로 싼 다음 구슬 줄로 여러 번 감아 정상적인 작품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마약을 숨긴 구슬 공예품은 베트남 공항은 통과했지만, 인천 세관의 벽은 넘지 못했다. 이로써 사라 김에 대한 본격적인 검거 작전이 시작됐다.

경찰은 인터폴 국제공조팀, 베트남 공안 등과 공조 수사를 통해 사라 김의 주거지 특정에 나섰다. 주거지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자 경찰은 지난 5월 베트남을 직접 방문해 사라 김의 신상을 최종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사라 김의 주거지 인근 CCTV를 확인한 결과, 노란 머리에 검게 그을린 사라 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은 사라 김이 베트남 현지인처럼 위장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염색과 태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라 김 체포에는 베트남 현지 경찰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범죄도시2》에 나온 것처럼, 한국 경찰은 베트남에서 유형력을 행사할 수 없다. 한국 경찰은 체포 등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고, 단지 베트남 경찰을 보조하는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 경찰이 3년여 동안 인터폴은 물론 베트남 현지 경찰과 공조 수사에 공을 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거 시에도 베트남 현지 경찰이 나서고 인터폴, 한국 경찰이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10·20대 마약사범 폭증

검거 작전은 마치 영화와 같았다. 경찰이 사라 김의 집을 급습하기 직전, 사라 김이 이사를 가버린 것이다. 언론에 공개된 사라 김의 집 내부 사진이 매우 어수선한 것도 압수수색 등이 아닌 이사의 흔적이다. 그러나 베트남 현지 경찰이 재빨리 정보를 수집해 이사 간 집을 알아냈고, 다시 한번 급습해 사라 김을 체포할 수 있었다. 오전에 이사를 간 사라 김을 오후에 새집에서 잡은 것이다.

경찰은 사라 김의 체포로 이른바 '동남아 3대 마약왕'을 전원 검거했다고 밝혔다. '텔레그램 마약왕' 박아무개씨는 2020년 10월 필리핀에서 검거됐고, 탈북자 출신 여성 최아무개씨는 지난 4월 캄보디아에서 잡혔다. 박씨의 경우, 2016년 필리핀 경찰에 검거돼 현지 교도소에 수감됐지만 2017년 탈옥했고, 다시 잡힌 후 2019년 또다시 탈옥했다. 우리 정부는 베트남에 박씨의 송환을 요청했지만, 박씨가 살인죄로 60년형을 선고받은 상태라 국내 송환은 사실상 힘든 상황이다. 박씨는 국내 마약 총책인 '바티칸 킹덤'을 통해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의 마약범죄에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약왕이 잡혔다고 해서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18년 8000명대를 유지하던 연간 마약사범은 2019~21년 1만 명대로 늘어났다. △2016년 8853명 △2017년 8887명 △2018년 8107명이었던 마약사범은 2019년 1만411명으로 처음으로 1만 명을 뚫었다. 2020년에도 1만2209명으로 전년 대비 17.3% 늘어났고, 2021년 1만626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올 상반기에는 5988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10대와 20대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10대 마약사범은 2016년 81명에서 2021년 309명으로 5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어났다. 20대의 경우 같은 기간 1327명에서 3507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3대 마약왕을 검거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다. 특히 해외로 도주한 마약사범들을 끝까지 추적해 검거했다는 것은, 범죄자들에게 두려움을 줄 만한 일"이라면서도 "범죄세계에 '무주공산'은 없다. 새로운 마약왕이 곧 탄생한다. '마약 청정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내 수사기관은 물론 국제 공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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