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에 '혐오의 연료'를 투하한 아베

야스다 고이치 2022. 7. 26.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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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총격을 비난하는 동시에, 그의 공과를 냉정하게 논하는 것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아베 정권은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를 육성한 최대 '공로자'였다.
ⓒEPA

반한 넷우익 단체 재특회(在特會)를 탐사보도한 야스다 고이치 프리랜서 기자가 아베 전 총리 사망을 둘러싼 일본 사회의 다양한 논점을 짚었다. 〈일본 우익의 현대사〉 〈일본 넷우익의 모순〉 등 그의 저서들은 국내에도 번역 소개됐다. 〈시사IN〉과 기사 교류를 맺은 일본 독립언론 〈슈칸 긴요비〉 제1385호에 실린 그의 원고를 전재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을 맞고 사망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뭔가 가슴이 울렁거리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나는 충격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범인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되리라 예상되는 풍경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그런 나의 염려는 적중했다.

인터넷상에는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한, 추악한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범인은 조선인” “또다시 자이니치(재일 한국인)의 범죄”. 근거도 없이 인터넷상에 올라간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는 재일 한국인 사회에 강한 공포를 갖게 했다.

“오로지 범행이 재일(한국인)과 관련이 없기를 빌고 있다.” 피격 직후 복수의 재일 한국인이 나에게 이런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른 풀에 불을 붙이면 불꽃이 삽시간에 퍼지는 것처럼 증오의 폭주를 우려했다. 당연할 것이다. 간토대지진 직후 학살이라는 조부모 시대부터 이어져온 공포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사회에서는 헤이트 스피치가 횡행하고 있다. 자신이 조선인을 혐오한다는 이유로 재일 한국인이 모여 사는 지역(교토 우토로 지구)을 방화하는 사람이 나오는 그런 시대에, 공포는 더더욱 증폭된다. 후쿠오카 주재 한국총영사관이 재일 한국인을 대상으로 헤이트 크라임(혐오 범죄)을 조심하라고 공식 트위터에 주의를 호소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사건 직후 한 신문사에서 “피격 사건에 관해 평가(코멘트)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나는 테러 행위를 비난하는 한편, 우토로 지구에 대한 방화 사건 등을 예로 들며 “레이시즘(인종차별) 선동도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나의 이런 평가에 대한 비난과 비방 중상, 욕이 인터넷상에 올라간 것은 예상대로였다. 동시에 사회의 ‘분위기’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일본 패전일이자 한국 광복절인 2019년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에서 극우 인사들이 욱일기를 들고 있다. ⓒAP Photo

권력자의 죽음에 ‘표현의 자유’ 빼앗겨

아베 전 총리의 죽음에 애도의 뜻을 표하고 총격이라는 범죄행위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동시에 그의 공과를 냉정하게 논하는 것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단언한다. 과거 아베 정권은 이 나라를 덮은 차별과 편견, 헤이트 스피치를 육성한 최대의 ‘공로자’였다.

일본 사회에서의 배타주의 확산은 2012년에 출범한 제2차 아베 정권의 행보와 일치한다. 북한에 강경 자세를 취하는 것을 공략 포인트로 삼고 총리 자리를 되찾은 아베가 한 첫 번째 일은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었다. 이를 찬동·환영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헤이트 데모(혐오 시위)를 격화시킨 것은 이듬해 2013년부터였다. 조선인 살해를 외치는 시위가 주말에 반복되었다.

한일 관계에서도 아베 정권은 양국 간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왔다. 2015년,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해결”을 담은 한일 합의가 맺어졌지만, 아베 전 총리는 ‘위안부’ 당사자들에게 직접 사과하는 것을 거부했다. 또한 징용공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자세를 계속 취함으로써 양국 관계는 ‘전후 최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악화했고, 지금도 균열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즉, 아베 전 총리는 일본 사회에 ‘혐오의 연료’를 계속 투하한 것이다. 혐오 조장 문제뿐이 아니다. 재임 중 모리토모(森友)와 가케(加計) 학원에 특혜를 준 ‘학원 스캔들’, 정부 주관 행사에 자기 지역 후원회를 초청해 권력 사유화 논란이 일었던 ‘사쿠라 스캔들’ 등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 설명할 책임이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런 사람들에게 질 수 없다”라고 가두에서 외쳤다. 반성과 후회, 사죄와 설명을 할 기회가 그의 죽음으로 영원히 사라진 것이 너무도 아쉽다.

그런 아베 전 총리를 추모하며 뉴스 앵커들은 검은 옷을 입고, 도쿄타워의 전등을 껐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비판이나 공죄(公罪)를 입에 담는 것조차 조심성이 없다고 공격당하게 된다.

주요 언론은 일제히 이번 사건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보도했다.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권력자의 죽음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빼앗기는 것,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위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복하건대 이번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총격 사건은 용납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다.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가 사회에 남긴 차별의 각인이 그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휘몰아치는 차별의 폭풍 속에서 빼앗기면 안 되는 말이 반드시 있다.

번역·문성희 〈슈칸 긴요비〉 편집국장

야스다 고이치 (저널리스트·<거리로 나온 넷우익>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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