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쓸 때마다 100번 넘게 고친다”...‘킹 줌마’ 김윤덕 기자 [송의달 LIVE]

송의달 에디터 2022. 7.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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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인 탐구 [미디어 프리즘]

30대 중후반에 시작해 올해로 15년째 중앙 일간지에 기명(記名) 칼럼을 연재(連載)하고 있는 언론인이 있습니다. 2007년 ‘줌마병법’ 칼럼을 시작한 김윤덕(52) 조선일보 기자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2009년 스웨덴 스톡홀름대에서 1년 연수를 다녀온 후 2010년부터 ‘신(新)줌마병법’으로 이름을 바꾸어 계속 쓰고 있습니다. 딱딱한 시사(時事) 칼럼 위주인 우리나라 언론계에서 꽁트식(式) 칼럼인 ‘줌마 병법’은 독창적이고 독보(獨步)적입니다.

그의 표현을 빈다면, “어느 땐 팔도(八道) 사투리를 동원해 쓰기도 하고, 아버지·남편·아들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해 쓰는 글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글쓰기 교본’...‘킹 줌마’

김 기자는 “나에게 가장 많은 영감(靈感)과 글감을 주고 실제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 건 역시 우리 어머니들, 할머니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킹(King) 줌마’ 또는 ‘줌마 기자’로 불립니다. ‘줌마 병법’ 칼럼을 빼놓지 않고 열독(熱讀)하는 독자와 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월간 ‘샘터’에 입사한 김 기자는 경향신문을 거쳐 2002년 4월 조선일보에 입사했습니다. 입사 첫 해에 ‘올해의 문화부 MVP(최우수) 기자’로 선정됐으니, 기자로서 역량과 문재(文才)를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생동감 넘치고 맛깔나는 문체로 ‘살아있는 글쓰기 교본’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 기자는 조선일보 저널리즘 아카데미에서 ‘맛있는 글쓰기’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문화부장으로 일한 뒤 지금은 주말뉴스부장으로서 매주 토요일 아침 배달되는 주말섹션 ‘아무튼, 주말’을 책임지고 있는 그를 만났습니다.

본인 신상 공개를 부탁합니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1970년생 개띠 아줌마입니다. 드디어 허리 무릎 다리가 욱신대고 내 몸에 관절이 이렇게 많았나 절감한다는 갱년기가 시작됐지만, 동시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조금씩 보이고 가끔은 ‘인생 훈수’도 둘 수 있는 지천명(知天命)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뿌듯한 1인입니다. 아, 현재 휴전선 최전방에서 군복무 중인 아들을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팔불출 엄마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김 기자의 가족은 외국계 IT 기업 임원인 남편과 아들, 딸 등 모두 4명입니다.)

2021년 겨울, 고(故) 이어령 선생과 김윤덕 기자가 함께 했다./김윤덕 제공

본인의 특징이나 강점이 있다면?

“특별한 강점은 없고요.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길러온 문학적 감수성이 조금 있다는 것? 그리고 일반 독자, 혹은 서민들 눈높이에 맞는 대중적 공감 능력이 있다는 것, 하나 더 있다면 소설·드라마·영화 같은 ‘이야기’를 좋아해 ‘스토리 시대’에 글을 재미있게 엮을 줄 아는 잔재주가 조금 있다는 것이 30년 글밥을 먹고 사는 데 쏠쏠한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만의 글쓰기 노하우나 루틴(routine)이 궁금합니다.

“기자 생활 30년이 넘었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두렵고 어려워요. 하지만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해요. 저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메모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극의 전개와 반전(反轉)이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유심히 보는데, 특히 대사를 집중해서 듣고 보는 편입니다.”

김윤덕 기자는 2018년 5월 이화여대 출신 언론인들의 모임인 이화언론인클럽이 수여하는 제18회 '이화언론인상'을 수상했다. 이화여대 홈페이지에서 김 기자를 소개하는 내용/인터넷 캡처

김 기자는 “글을 완성해 출고하는 시간은 어떤 종류의 글이냐에 따라 다른데, ‘줌마병법’이나 시사칼럼의 경우 마감 일주일 전에 초고(草稿)를 써놓고, 마감 직전까지 읽고 또 고치고 고치면서 대략 100번 이상 수정 보완한다”고 했습니다.

첫 직장이 월간 샘터사였는데, 그때 경험이 어떤 도움이 됐나요?

“샘터사에서 내 글쓰기의 70%를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샘터사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기르고 다양한 글쓰기 훈련을 했던 것 같습니다.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에게서 취재할 때 디테일을 찾아내는 법을 배웠고, 법정스님, 소설가 최인호, 시인 이해인 수녀의 ‘글 심부름’을 하면서 이야기와 메시지를 만들어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경향신문으로 옮겨서는 ‘맨땅에 헤딩하는’ 용기와 맷집, 그리고 보다 넓은 분야에 대한 지식과 취재력을 길렀습니다. 20대여서 파격적인 글쓰기에도 도전해봤는데, 그런 경험과 시행착오들이 쌓여 기자 생활에 보약(補藥)이 된 것 같습니다.”

김윤덕 기자가 조선일보 주말섹션 '아무튼, 주말' 섹션 11면에 매주 쓰는 편집장 레터/인터넷 캡처

늘 시집(詩集)이나 단편소설을 가방 속에 넣어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런가요? 어떤 시(詩)나 소설을 좋아하나요?

“스마트폰 시대라 버스나 지하철에서 휴대폰 보는 시간이 늘어나긴 했지만 지금도 ‘읽을 거리’는 꼭 한편씩 가지고 다닙니다. 어휘를 늘리고 좋은 생각과 문장들을 채집하는 데 더할나위 없이 좋은 교과서이니까요. 김수영과 기형도, 정호승의 시도 좋아하지만, 이정록 시인이 자기 어머니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채록해 재구성한 시집 ‘어머니 학교’를 글쓰기 강의 교재로 삼았을 만큼 반복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소설은 특정 작가보다 시니컬하고 유쾌하며 위트 넘치는 작품을 좋아하는 편인데, 최근 읽었던 소설 중에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 1·2′, 공쿠르상 수상작인 에르베 르 텔리에의 ‘아노말리’가 인상 깊었고요. 몇 년 됐지만 이기호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갑수 소설집 ‘편협의 완성’을 깔깔깔 웃으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 우리말과 사투리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된 계기는 최명희의 ‘혼불’,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입니다.”

김윤덕 기자가 2012년 낸 저서. 2009년 스웨덴 연수 시절 김 기자가 홀로 10살 아들과 20개월짜리 늦둥이 딸을 데리고 유럽 10개국을 여행한 기록이다. 김 기자는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두 아이와 유모차를 밀고 유럽 여행을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인터넷 캡처
김윤덕 기자가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인터넷 캡처

지금까지 한 인터뷰나 기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쉬웠던 순간이라면?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죄수인 엄마와 함께 부득이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아기들의 슬픈 이야기를 취재해 종합 1면에 게재했던 기사가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기사가 나간 뒤 배우 고현정 씨를 비롯해 수많은 독자들이 그 아기들을 돕고 싶다는 성원이 답지했고, 몇 년 뒤 김윤진 주연의 ‘하모니’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기자 최초로 2009년 12월 제109회 노벨상 시상식과 만찬장을 현장 르포한 것도 뿌듯합니다. 스웨덴 국민들의 노벨에 대한 자부심, 학문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을 온 몸으로 느꼈던 현장이었습니다.”

김 기자는 “이어령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을 때 바쁘다는 이유로 한 주 미뤘던 것이 가장 후회된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신문기자가 될 건가요? 신문기자라는 업(業)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1순위는 아니지만 3순위 안에는 들지 않을까요? 신문기자는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신문기자의 본질은 온갖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 진실을 찾아내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이 아닐지. 가짜뉴스와 확증편향, 편가르기가 만연한 시대에 냉철한 이성(理性)과 발로 뛰는 취재로 사건의 실체와 진실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 대중들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안(代案)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기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윤덕 기자는 잡지와 신문을 넘어 2014년 4월부터 TV조선 '뉴스 판' 앵커로 활약했다./조선일보 DB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언론인이 혹시 있나요?

“제가 몸 담고 있는 조선일보의 김대중(金大中) 고문을 존경합니다. 기사 때문에 늘 혼나기만 해서 무섭고 두려운 선배이지만, 언론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 글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깐깐함까지 다 본받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좌우할 것 없이 비판하며 언론의 정도(正道)를 걸어오신 그분의 삶을 존경하고 닮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후배 기자에게 조언한다면?

“훨씬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후배들에게 거꾸로 배워야 할 점이 많지만, 굳이 한말씀 드리자면, 기자는 글을 쓰는 업(業)이므로 글쓰기 능력과 취재 능력을 최우선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좋은 글쓰기는 데스크로부터 끊임없이 질책당하고 지적받으며 시행착오를 개선해가는 과정에서 단련(鍛鍊)될 것이고, 취재 능력은 디테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열정과 부지런함이 좌우하겠지요.”

김 기자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베테랑 검찰 담당 기자는 자신이 취재한 것이 100이라면 그중 70~80만 기사에 넣는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충분한 취재를 한다는 뜻이겠지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은 물론 문학적 감수성을 지녀야 하고, 우리 사회 전반에 안테나를 세우고 공감능력과 비판능력을 키워 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2021년 <아무튼, 주말> 커버스토리로 등장한 박지성 선수와 함께 한 사진/김윤덕 제공

언론사에 입사하려는 청년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사람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好奇心)이 왕성해야 좋은 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란, 끊임없이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라 그런 호기심과 애정이 없으면 롱런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다양한 그룹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觀點)을 기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 기자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책, 신문 등 활자매체를 통해서 단련한다면 글쓰기 실력까지 덤으로 늘겠지요? 데드라인(deadline·마감시간)에 쫓겨 기사를 미친 듯이 쓸 때는 숨이 꼴깍 넘어가는 듯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튿날 종이신문으로, 온라인으로 활자화되어 나오는 자신의 기사를 보며 희열과 보람을 느끼는 중독성(中毒性) 있는 경험을 여러분도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2021년 2월 2일자 조선일보 지면에 게재된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살아보니 人生, 무승부더라' 삽화/조선일보DB

김 기자는 “예전에는 한 달에 한번꼴로 ‘신(新)줌마병법’을 게재하다가 최근 ‘신줌마병법’의 마감 간격이 두 달로 늘었는데 더욱 심기일전해 독자분들을 찾아뵙겠다”고 했습니다.

본인의 ‘15~20년 후 모습’을 그려 본다면?

“손주들 키우는 할머니가 돼 있지 않을까요? 맞벌이 엄마로 두 아이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죄책감이 커서 유쾌하고도 지혜로운 할머니 선생님이 되어 우리 손주들을 멋지게 키워주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아들 딸에게 허락도 안 받고 말이죠^^. 글쓰기 선생님이 되어 충청도 산골마을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성주 아나운서(사진 오른쪽)는 김윤덕 기자의 두 살 아래 친동생이다. 2014년 7월 18일 오후 방송된 TV조선 '시사토크 판'에 김성주 아나운서가 출연해 김 기자와 대담하고 있다. 김성주 아나운서는 이날 "나도 원래 신문기자가 꿈이었는데 누나가 먼저 기자가 돼 나는 아나운서가 됐다"며 "(당시 '시사토크 판'의 진행자인) 누나가 생각보다 방송 진행을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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