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징글 녹조띠 100m..낙동강에 뭐가 있냐고, 다 죽었어"
"낙동강물로 기른 채소서 독성물질, 정부는 뭘 하나"
"녹조 가장 심했던 2018년보다 올해 더 심각할 수도"
휘저으니 역한 냄새 훅.."강바닥 조개까지 다 죽어"
119 구조대원도 "직업 아니라면 절대 안 들어가"
“예전엔 붕어가 알 까러 몰려들 만큼 물 상태가 그런대로 괘안았습니다. 근데 보소. 지금 뭐가 있소? 저 징그러븐 녹조 말고 뭐가 있냐고.”
지난 23일 오전 대구 달성군 구지면 낙동강변 도동선착장에서 만난 선외기 어선 주인 허아무개씨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짙은 녹조띠에 선착장과 어선이 둘러싸인 모습을 보니 그가 화내는 게 이해가 됐다. 녹조띠는 강 가장자리에서 강 중심 쪽으로 조금씩 옅어지며 100m 남짓 이어져 있었다. 민물고기 포획용 어구 숫자와 설치 방법 등을 적어놓은 선착장 들머리의 ‘내수면어업 허가 안내판’이 무색해 보였다.
나무 막대기로 녹조 무더기를 휘저어봤다. 생각보다 녹조층이 두꺼운 듯, 묵직한 저항감이 손아귀에 전해졌다. 조금 더 힘을 써 수면을 헤집자, 초록색 종이에 붓으로 칠한 듯 막대기 꽁무니를 따라서 시커먼 무늬가 생겨나더니 얼마 안 가 다시 초록색으로 덮였다. 시궁창에서 나는 것과 비슷한 역한 냄새가 코안으로 훅 들어왔다.
30년 넘게 낙동강 어부로 살았다는 허씨의 푸념은 이어졌다. “강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니 산소 먹은 새 물이 돌지 않아. 숨 쉴 산소가 없으니 물에 살던 것들이 버틸 수가 있나. 강바닥 조개까지 다 죽었어. 모조리 다 죽었어.”
언론 인터뷰에도 여러차례 응했던 듯 허씨 집에는 기자들 명함이 한묶음이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자들 만나 하소연하는 게 부질없어 보인다고 했다. “4대강 사업으로 강물 막히니까 기자들이 수도 없이 찾아왔지. 그런데 아무리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이제 내도 입만 아프니 말 안 할란다.”
선착장 인근에는 조선시대 대표 서원인 도동서원이 낙동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 이날 기자와 함께한 ‘낙동강 녹조 탐사대’ 회원은 강물을 가리키며 “녹조가 물 위에 거대한 수묵채색화를 그려놓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동행한 다른 탐사대원이 맞장구를 쳤다. “맞네. 저 낙동강 녹조그림 탓에 도동서원이 도통 눈에 안 들어와. 그래도 저게 세계적 문화재인데.” 서원 입구엔 ‘대구광역시 최초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낙동강 녹조 탐사대’가 발족한 지는 한달이 채 되지 않았다. 대구시, 경북 고령군, 경남 창녕군에 사는 환경운동연합 회원 가운데 낙동강 생태계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뜻을 모았다. 이날은 탐사대의 첫 현장활동. 도동선착장에서 출발해 경북 고령군을 거쳐 경남 창녕군 초입까지 회원들이 거주하는 세 지역의 낙동강 구간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날 탐사에 참여한 12명 가운데 7명은 카약 4대에 나눠 타고 낙동강에 들어가 강 중심부를 탐사하고 나머지 5명은 차를 타고 강변을 따라 이동하며 강 바깥 부분을 살폈다. 녹조 현상이 심한 곳도 있고 덜한 곳도 있었는데, 유독 양수장 주변의 녹조 현상이 더 심했다.
탐사대의 대변인 격인 곽상수 고령군 우곡면 포2리 이장은 “통상 양수장은 취수가 용이하도록 물 흐름이 느린 곳에 설치하는데, 4대강 사업 이후 전체적으로 물 흐름이 느려지면서 녹조 현상이 양수장 주변에 특히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구지면 일대에 들어선 낙동강레포츠밸리에선 피서객 수십명이 수상스키 등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양수장 주변보다는 덜했지만, 물에 둥둥 떠다니는 녹조 알갱이는 이곳에서도 쉽게 눈에 들어왔다. 피서객들은 강물에 거리낌 없이 몸을 담갔고, 물놀이 도중 강물이 입에 들어가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수질검사표는 레저활동 구역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각 이곳에서 수중수색훈련을 하던 119구조대원 한명이 피서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러다가 녹조물을 삼킬 수도 있을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저야 직업 때문에 지금 이러고 있지만, 일만 아니라면 절대로 이런 물엔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탐사대는 이날 도동·답곡양수장 등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양수장 2곳과 대구국가산단 취수장, 친수시설인 낙동강레포츠밸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소하천인 응암천 주변에서 물을 떴다. 취수·양수장에 공급되는 낙동강물의 독성물질 함유 여부를 분석하기 위해서다. 채집한 물은 이틀 뒤인 25일 이승준 부경대 교수(식품영양학) 연구팀에 전달됐다. 지난해 환경운동연합의 의뢰를 받아 낙동강물로 재배한 벼와 채소의 독성물질 함유량을 검사한 이 교수 연구팀은 녹조 성분인 마이크로시스틴을 벼와 채소에서 검출한 바 있다.
탐사는 순조롭지는 않았다. 하류 쪽에서 강하게 불어온 맞바람이 상류에서 출발한 카약의 진행을 막았기 때문이다. 노 젓기 피로도가 심해지자 일부 대원은 뱃멀미를 했다. 결국 카약 한대는 중간에 탐사를 중단했다. 애초 계획한 대암양수장 물 뜨기도 포기했다. 최종 목적지는 경남 창녕군 초입이 아닌 대구국가산단 취수장으로 변경됐다. 첫 현장활동을 마무리한 대원들은 체력을 키워 탐사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기로 했다.
임희자 낙동강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며칠 전 온 큰비가 녹조를 쓸고 간 덕에 낙동강물 상태가 평소보다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메마르고 무더운 올여름 기후 상태를 볼 때 4대강 사업 이후 녹조 현상이 가장 심했던 2018년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윤발 고령농민회 회장은 “낙동강물로 재배한 채소에서 독성물질이 나왔다고 하니까 농민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대체 정부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구/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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