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간병' 굴레.. 가족 옭아맨다 [심층기획]
간병비 10년새 3조6550억→8조
요양원, 경제적 부담 덜 수있지만
어르신들 집에서 돌봄 받기 원해
'저질서비스 논란' 보호자도 고민
'노인장기요양보험' 반쪽지원
방문해 요양·간호·목욕 등 서비스
1등급 판정 땐 월 167만원 지급
의료는 별개, 사각지대 놓일 수도
돌봄·의료 통합 커뮤니티케어 필요
“월급의 대부분이 어머니 간병비로 나가니까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어머니 건강도 걱정이지만 솔직히 앞으로 계속 들어갈 돈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무거웠어요.”
90세가 넘은 노모가 최근 화장실에서 넘어진 후 A씨는 매일 습관처럼 한숨을 쉰다. 친척이 근처에 살긴 하지만, 홀로 사는 노모가 슬개골을 다쳐 혼자선 몸을 가눌 수 없기 때문이다. 60대인 A씨 부부가 24시간 내내 곁에서 수발을 들긴 힘들어 간병인을 구했다. 하루 12만원. 추가 비용을 제외하고 기본으로 들어가는 간병비만 한 달에 최소 360만원에 달했다. 돈 걱정을 하는 자신이 불효자 같아 내색도 못하지만, 자신 역시 곧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처지여서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간병 수요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25일 학술지 ‘보건경제와 정책연구’에 실린 ‘사적 간병비 규모 추계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정책적 시사점’(2021년 4월) 논문을 보면, 유급 간병비와 가족 간병인의 기회비용 등을 더한 ‘사적 간병비’ 규모는 2008년 3조6550억원에서 10년 뒤인 2018년 8조240억원으로 증가했다. 사적 간병 수요는 연인원 기준 같은 기간 5774만명에서 8944만명으로 늘었다.
◆월급이 간병비로… ‘간병파산’은 현실
간병인의 하루 일당은 보통 12만원 안팎인데, 환자의 상태에 따라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예컨대 △감염성 질환 △욕창 △신체 마비 유무 등에 따라 비용이 더해진다.
또 영리 목적의 요양원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고질적 병폐로 꼽힌 저질(低質) 서비스 우려도 보호자의 고민을 키우는 요소다. 서울의 한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B씨는 “요양원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놀랐던 적이 많다”며 “책임감과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고, 개인이 운영하는 요양원에서는 비용을 줄이려고 기저귀 같은 물품도 최대한 아껴서 사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의료 없이 돌봄만 책임지는 장기요양
간병인을 고용하지 않아도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가 되면 재가서비스를 받으며 집에 머무를 수 있다. 건강보험이 의료를 담당한다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돌봄을 맡는다. 등급에 따라 월 한도액만큼 요양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다. 시설급여를 받으면 요양시설에 입소해 활동 지원을 제공받고, 재가급여를 받으면 방문 요양·간호·목욕 등 가정 방문 요양서비스를 지원받는다. 일상생활에서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정되면 가장 높은 1등급을 받게 되는데, 이 경우 월 167만원까지 급여가 지급된다.
집에서 간병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의료와 돌봄이 분리된 구조 탓에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자들은 따로 의료서비스를 구해야 한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돌보다 생활고를 못 견뎌 아버지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강도영씨 사건이 지난해 알려지면서 간병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한번 커졌다. 당시 제20대 대선 후보들은 앞다퉈 간병 문제 해결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윤석열정부의 국정과제에도 국가의 돌봄 책임을 강화하고 의료돌봄 통합서비스를 확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역사회 중심 통합돌봄서비스를 강화해 일명 ‘한국형 커뮤니티케어’를 실현하겠다는 비전도 내비쳤다.
지난 19일 국회 도서관에서 진행된 ‘지역사회 통합의료돌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김형수 건국대 교수(예방의학과)는 “일본은 장기요양보험으로 커뮤니티케어가 운영된다”며 “우리도 커뮤니티케어의 실현을 말하지만 그 대상과 수요자가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건보(의료)와 장기요양보험(돌봄), 공공과 민간이 섞이지 않고 각각 운영돼 수요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서비스를 일원화하는 등 효율적인 방식을 고민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커뮤니티케어가 무엇인지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커뮤니티케어가 성공하려면 의료와 돌봄이 통합돼야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커뮤니티케어 정책은 의료가 배제된 탈의료기관, 탈시설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 소장은 대안으로 요양 병원·시설이 융합된 일본의 개호의료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요양의원’ 제도 신설을 제안했다. 또 의원급에서도 장기요양 환자를 케어할 수 있게 하고 방문진료 참여를 높이기 위한 방안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살아있는 동안 고립되지 않는다면 고독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의 저자인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는 매년 태어나는 아이보다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이 많은 일본 사회에 시각의 전환을 요구한다. 집에서 혼자 죽는 노인이 더는 ‘불쌍’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방문 간병·간호·의료가 갖춰지면 집이 아닌 시설이나 병원에서 삶을 마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고령자나 질병,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되도록 병원이나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살던 곳에 머무르며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받는 배경의 중심에 커뮤니티케어가 있다. 커뮤니티케어의 원조는 영국이다. 영국은 국가가 돌봄 시스템의 주축이 돼 서비스의 질을 일정 수준까지 담보하고, 지역사회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다. 의료서비스는 중앙정부가 맡고 성인돌봄의 경우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중앙정부보단 지역사회의 책임이 커졌고 민간의 영역도 늘어났다.
돌봄서비스의 대상자는 주로 노인이나 질병 또는 장애를 가진 사람, 알코올·약물 의존증자 등이지만 이들을 돌보는 가족이나 보호자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돌봄뿐만 아니라 예방서비스도 제공된다. 대상자의 상태에 따라 보호계획(케어플랜)이 마련되고 예산이 정해지면 구체적인 서비스 방식을 정한다. 이때 서비스 이용자는 자기주도적 지원인 개인 예산제도를 활용해 추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다. 이용자와 보호자가 필요에 따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유연성을 높였다.
일본의 커뮤니티케어는 지역포괄케어로도 불린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거품)경제가 무너지고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면서 간병 문제가 사회문제로 일찍이 대두됐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75세 이상 고령자가 되는 2025년에 대비해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는 2013년 △개호 △의료 △예방 △생활지원 △주거 등으로 포괄적 지원이 구체화됐다. 지역이 중심이 된 돌봄네트워크를 통해 건강한 상태에서부터 개호 예방에 단계적으로 들어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은 대략 30분 이내에 필요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일상생활권을 목표로 하는데 지역마다 정착된 방식과 추진 속도는 다르다.
2018년부터는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개호의료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간병과 의료가 합쳐진 형태로 우리나라의 요양병원과 요양원(시설)이 융합된 것으로 보면 된다. 의사가 상주하고 간호사나 요양보호사의 간병도 받을 수 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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