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사이 샌드위치 신세..'딜레마'에 빠진 한국
미국 주도 '칩4 동맹' 참여도 말 못할 고민
[비즈니스 포커스]
한국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30년 가까이 ‘수출 텃밭’이었던 중국 수출이 흔들리고 있다.
대중 무역 수지가 5월 11억 달러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6월에도 12억1000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대중 무역 수지 적자는 1994년 8월 1400만 달러 이후 28년 만이다. 7월(1~10일) 대중 무역 수지도 8억4400만 달러의 적자를 나타냈다.
지난 28년간 흑자 행진을 이어 왔던 중국과의 무역에서 3개월 연속 적자가 이어지면서 만성 적자인 일본처럼 중국에 대해서도 무역 적자가 구조적인 적자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에 대한 무역 적자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인한 내수 소비 위축이다. 이와 함께 중국 제조 업체의 기술력 향상에 따른 경쟁 심화,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대내외적인 요인이 모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대중 무역, 세 달 연속 적자 행진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2016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당시 한한령(한류 금지령)을 통해 한국의 자동차·화장품·유통 기업들에 큰 피해를 준 것처럼 이번 대중 무역 수지 적자가 ‘제2 사드 보복’ 사태의 징후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5월과 6월 무역 수지 적자는 중국의 도시 봉쇄 여파로 인한 단기적인 이벤트로 봐야 한다”며 “진짜 이벤트성인지 구조적인 요인인지는 8월 대중 무역 수지 통계가 나오고 연간 통계를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이 줄어드는 분위기 속에 원자재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2021년 기준 25.3%로 주요국 중 가장 높다. 대중국 수출에서 10대 주요 수출 품목이 차지하는 비율은 39.1%에 달한다. 이 중 메모리 반도체 단일 품목에 대한 의존도는 20.5%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관련해 미국이 한국에 ‘칩4 동맹’ 참여를 압박하고 있어 중국의 반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칩4는 한국·미국·일본·대만 등 4개국을 가리킨다.
반도체업계는 미국이 대중국 견제용으로 내건 반도체 공급망 동맹인 칩4 동맹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득실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미국 정부는 한국에 칩4 동맹 가입을 요구하며 8월 말까지 참여 여부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 의원들은 자국의 반도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들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을 주는 반도체 산업 육성법안을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이 법을 염두에 두고 미국에 반도체 생산 기지를 지을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칩4 동맹이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이다.
칩4 동맹에는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이 있어 삼성전자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쑤저우에 공장을 운영 중이고 SK하이닉스는 우시·충칭·다롄 공장을 운영 중이다.
중국은 칩4 동맹에 대해 “미국은 국가 역량을 남용해 과학 기술과 경제 무역을 정치화·도구화·무기화하고 협박 외교를 일삼고 있다”고 주장하며 “우리는 관련 당사자 측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갖고 자신의 장기적인 이익과 공평하고 공정한 시장 원칙에 근거해 글로벌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의 안정을 수호하는 데 도움 되는 일을 많이 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한국이 칩4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내비친 것이다.
동맹 압박하는 美, 견제하는 中
2021년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 1280억 달러 가운데 대중 수출은 502억 달러로 약 39%를 차지했다. 홍콩을 더하면 60%에 이른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주요 생산 기지가 중국에 있고 최대 수출국인 만큼 칩4 가입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 반도체 산업 구조상 생산에서는 미국의 반도체 기술이 필요하고 수요와 관련해선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을 공급망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가장 먼저 가입했고 중국을 ‘구조적 도전’으로 정의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 참가하는 등 중국을 배제하는 미국 주도의 여러 동맹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런 동맹들은 전쟁 장기화·인플레이션·금리 인상 등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칩4 동맹의 실행 가능성도 아직은 불분명하다. 인텔 등 미국의 반도체·장비 회사들도 중국 관련 제한 조항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반도체 장비 회사들의 최대 구매자가 중국이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협의하는 데만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쿼드(Quad : 미국·일본·호주·인도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안보 협력체)만 봐도 인도는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확대하고 있다. 프랑스가 가입된 NATO가 6월 29일(현지 시간) 마드리드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구조적 도전’으로 명시한 직후 중국은 국영 기업을 통해 NATO 회원국인 프랑스의 에어버스 항공기 292대를 구매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을 세계 공급망에서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적 동맹에 중국 정부가 372억5700만 달러 규모의 항공기 외교 카드를 꺼낸 것이다.
철저한 이해득실 관계를 따져봐야 할 정부의 탈중국 발언도 성급한 외교 행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칩4 동맹 참여를 검토하면서 한·미 동맹 강화를 강조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유럽 순방길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가 ‘탈중국 선언’을 한 것에 대한 지적이다.
탈중국 발언 직후 중국 소비 관련주인 아모레G·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등 한국 화장품주를 포함해 중국 수출 의존도가 큰 패션주·면세점주도 줄줄이 하락했다. 전병서 소장은 “정부가 탈중국을 선언한 날 화장품·관광 관련주가 폭락한 것이 탈중국에 대한 시장의 대답”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의 중국 전략의 방향이 ‘각자도생의 실리 외교’로 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드 사태 당시 결국 기업 스스로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했던 것처럼 공급망 대응 태세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전 소장은 “중국이 제재한다면 한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원부자재를 제재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들 스스로 수입처 다변화, 국산화 등 공급망 대응 태세를 갖추지 않으면 중국은 제2의 요소수 사태처럼 한국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찌를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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