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기업 성장 짓누르는 해묵은 논쟁들
[비즈니스 포커스]
“지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기준을 만들었지만 실제 이용자들의 피해가 많다는 목소리도 들어왔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7월 20일 브리핑에서 ‘대형마트 월 2회 의무 휴업’ 폐지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형마트 의무 휴업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온라인으로 의견을 물어 제도 개선 여부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2012년 도입돼 10년간 지속된 대형마트 의무 휴업 규제가 풀릴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새 정부가 기업 발전을 저해하는 제도들을 손보겠다는 방침을 내건 가운데 유통업계에서도 오랜 기간 업계가 요구한 규제가 풀릴 것인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미 정부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유지 여부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해 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면세점업계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기획재정부는 현행 600달러인 면세 한도를 연내 800달러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에서 규제 완화 등 각종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은 유통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2010년께 이뤄진 스마트폰의 보급부터 2020년 등장한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변수들이 이 같은 현상을 만들어 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규제도 급변한 산업 흐름에 맞춰 변해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대형마트와 면세점이 대표적이다.
골목 상권 파괴 주범 낙인으로 생긴 규제
두 산업 모두 과거엔 잘나갔다가 급속도로 침체기를 맞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대형마트부터 보자. 201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신규 대형마트 출점은 곧바로 관련 기업들의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쾌적하고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생필품을 싼값에 판매했던 대형마트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늘 문전성시였다. 이때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업계 ‘빅3’를 두고 생긴 별명이 ‘유통 공룡’이다.
하지만 장사가 너무 잘되다 보니 이들을 향한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유통 공룡들은 골목 상권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낙인 찍혔다.
모든 장 보기 고객들을 대형마트가 끌어가 전통 시장을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전통 시장을 살리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이를 해결해야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 결과 영업시간 제한과 같은 대형마트 규제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결국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형마트가 월 2회 문을 닫고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다는 규제가 시행됐다. 이는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2012년과 2022년의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최근 대형마트의 모습은 어떤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스마트폰을 통해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로 사람들이 장을 보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사람들이 밖에 나가기를 꺼리면서 쇼핑의 무게 추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완전히 이동했다. 대형마트의 시대는 저물어 가는 모습이다. 이마트는 2020년 첫 분기 적자를 기록했고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점포 수를 크게 줄였다.
홈쇼핑업계 “과도한 송출 수수료 정부 개입 필요”
온라인 전환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다 보니 대형마트를 물류 기지로 활용한 새벽 배송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의무 휴업과 영업 제한 등으로 인한 대형마트 3사의 매출 감소액은 연간 3조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잘나갔던 시절 만들어졌던 규제를 이제는 없애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시민들도 불편을 호소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보면 일요일 대형마트의 의무 휴업으로 불편하다는 글들과 함께 이런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정부 또한 이런 여론들을 반영해 이번에 대형마트 의무 휴업 여부를 대통령실 온라인 투표에 부치겠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과를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벌써부터 소상공인들이 들고일어나는 등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업계 일각에서는 투표가 ‘찬성’쪽으로 기울더라도 규제 철폐까지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면세점도 규제 완화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될 조짐을 보인다. 우선 정부는 여행자 면세 한도를 800달러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014년 600달러로 올랐던 면세 한도가 8년 만에 다시 상향되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면세 한도 약 1800달러) 등에 비하면 조정 폭이 아쉽지만 그래도 8년 만에 구매액이 상향돼 살짝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면세점업계에서는 5년마다 재심사를 거쳐야 하는 면제 사업자 특허 제도도 이번 기회에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5년 특허 허가제는 2013년 첫 시행됐다. 이전까지도 면세 사업을 하려면 특허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기간이 10년이었고 큰 결격 사유가 없으면 특허를 자동으로 갱신해 줬다.
2013년 기간을 5년으로 줄이면서 갱신도 자동에서 경쟁 입찰제로 바뀌었다. 만약 특허를 받지 못하게 되면 그간 쏟아부은 투자비 또한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5년 경쟁 입찰 사업권을 10년 주기로 다시 바꾸고 과거처럼 결격 사유가 없는 경우 이를 자동으로 갱신해 줘야 마음 놓고 사업을 펼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가 하면 대형마트와 면세점과는 반대로 홈쇼핑업계에서는 규제 신설에 대한 얘기가 해묵은 논쟁거리다. TV 송출 수수료다.
스마트폰에서 실시간 상품을 판매하는 라이브 방송의 등장으로 과거 홈쇼핑이 갖고 있던 ‘방송’ 유통 사업자라는 독점적 지위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들이 인터넷TV(IPTV)와 같은 유료 방송 사업자에게 내는 송출 수수료는 매년 늘어나는 실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2021년 홈쇼핑이 유료 방송사들에 낸 송출 수수료는 2조2000억원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홈쇼핑사 전체 매출액은 약 3조8000억원이었는데 전체 매출 중 절반 이상을 송출 수수료로 냈다. 홈쇼핑업계에서는 정부가 개입해 시장의 현실을 반영한 수수료를 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현재 정부는 홈쇼핑과 유료 방송 사업자 간의 송출 수수료 결정을 양측이 자유롭게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송출 수수료에 관여하지 않으면 계속해 매년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시장이 처한 현실”이라며 “점차 TV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는 만큼 결국 비싼 송출 수수료를 감당하지 못해 TV 홈쇼핑 사업을 포기하는 기업도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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