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소 안하면 배임? 파업 피해 책임은 왜 노동자만 지나[노동:판]
쌍용차 옥쇄파업 이후 노사 갈등 불거질 때마다 '손배소' 반복
사측 "손해배상 청구 안하면 경영진이 배임 혐의 받아" 주장하지만 실제 기소 사례 거의 없어
"노사 양측 갈등인데 경영진 책임은 쏙 빠져..파업 종료만 말하지 말고 파업한 배경도 살펴야"
대우조선해양 파업은 51일 만에 마무리됐지만, 손해배상 청구 논란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거론되고 있다.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손배소', 우리의 파업은 왜 노동자들의 책임을 물으며 마무리될까.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조인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벌인 파업의 막판 쟁점은 손해배상 소송의 제기 여부였다. 노조는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묻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사측의 거부로 합의안에 담기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파업 이후 묻는 형사상의 책임은 업무방해 혐의, 민사상의 책임은 업무방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 이른바 '손배소'를 말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이 달 초 파업을 벌인 조합원들에게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파업 끝난 자리마다 노동자에게 찾아오는 '손배소'
대규모 파업 이후 사측이 '손배소' 카드를 꺼내드는 것은 대우조선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CJ대한통운이 올해 초 본사 점거 농성을 벌였던 택배노조를 상대로 2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하이트진로도 운송료 문제 등으로 파업에 참여했던 화물운송 노동자 11명에게 5억 7800여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전북 군산에서는 사측의 손배소에 항의하며 지난 22일부터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벌어지고 있다. 닭고기 가공업체인 참프레 사측이 파업 중 발생한 손실금 100억 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겠고 주장하자 화물연대 전북본부 간부 2명이 참프레 공장 위에서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는 파업으로 갈등을 겪더라도, 교섭을 통해 사태가 마무리되면 노사 양측이 서로에게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묻지 않도록 교섭 합의문에 담곤 했다.
단순히 파업이 끝나면 다시 현장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일할 사이니 좋게 마무리하자는 현실적인 이유만이 아니었다. 비록 파업은 노동자들이 일으켰지만, 끝내 파업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갈등이 불거지는 동안 노사 모두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반성과 화해의 의미도 담겼다.
이를 반영하듯 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조에도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됐다.
하지만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이후 사측과 정부가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인 후로는 노조에게 파업 기간 동안 사업장이 멈춰 일어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이 줄을 이었다. 현대차, 기아차, 한국GM, 현대제철, 한진중공업, 발레오만도, KEC, 기륭전자, 유성기업, 갑을오토텍…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노사 갈등이 빚어졌던 현장마다 어김없이 손배소 문제가 뒤따랐다.
손해배상을 다루는 민법 750조에 따르면 "고의·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배상 책임이 있다고 규정됐다. 따라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인 파업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손해를 배상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파업의 목적은 협소하게, 절차는 복잡하게 정한 노조법 조항 탓에 '합법 파업'의 자격을 얻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위 조항의 '이 법에 의한 쟁의행위'라는 정의는 같은 법 2조에 있는데, 사실상 직접적인 노동조건을 위한 쟁의행위만이 합법이다. 이 때문에 업계의 상황을 일거에 바꿀 정부 정책에 반대해도 '정치적 불법 파업'이 된다. 대량 정리해고가 단행되더라도 '경영상 판단'이므로 파업을 벌이면 '불법' 딱지를 피할 수 없다.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 윤지선 활동가는 "경영진이 단체교섭을 거부하거나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근로기준법 위반 등을 벌여 이를 항의하기 위해 파업을 벌여도 사측은 '불법 파업'이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며 "특히 이미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진 사례가 있어 심지어 사측이 손배소를 하겠다고 위협만 해도 노조를 압박하는 효과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손배소 제기하지 않으면 배임? "업무 정상화 위한 경영적 판단은 배임 아냐"
다만 최근 법원은 '파업 중 피해'만을 이유로 손해배상의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2017년 대법원이 철도노조의 파업은 예고된 파업으로 '전격성' 요건이 없어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후부터 파업 과정에 명확한 불법 행위가 있느냐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는 편이다.
대우조선의 경우, 파업을 진행한 하청노조가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조정중지 결정을 받았고, 조합원의 쟁의행위 투표도 거치는 등 법적 쟁의권을 합법적으로 획득했다. 또 원청사업장 안의 하청노동자 파업에 대해서도 이미 업무방해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에 '합법 파업'을 진행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조선소 내 1도크를 점거하고 건조중인 선박에서 농성을 벌이는 등 노조가 파업 중 벌인 일부 행위에 대해서는 정부와 사측이 '불법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법원이 이를 인정한다면 손해배상의 책임도 뒤따를 수 있다.
실제로 노조법 시행령 제21조에 따르면 건조·수리·정박 중인 선박은 쟁의행위 중 점거가 금지된 시설로 분류된다. 하지만 바로 올해 한국에서도 발효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가운데 노조의 자유로운 활동 등을 보장하는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에 따르면 이러한 제한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반박도 나오기 때문에 이 역시 불법 여부는 아직 따져볼 여지가 있다.
물론 아예 사측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한다면 논란의 여지도 없다. 그러나 사측은 '회사에 손해가 크게 발생했는데 경영진이 이를 가만히 두면 배임 혐의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번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 가능하고 이 때 사측이 유리할 수 있다는 것과, 사측이 손배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경영진이 배임 혐의를 받게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금속노조법률원장 김유정 변호사는 "경영진이 자신의 임무에 위배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경우가 업무상 배임죄"라며 "파업을 마치며 법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하는 것은 오히려 회사 업무의 빠른 정상화를 위한 행위이므로 업무상 배임이 성립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파업 후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상 배임 혐의를 받아 처벌받거나, 기소된 사례가 거의 없다"며 "사측의 논리는 교섭을 마치며 임금을 인상하기로 약속해도 회사의 비용 부담을 초래했으니 배임 혐의를 받을 것이라는 말로, 단체 교섭의 본질을 망각한 비합리적인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노사 갈등으로 파업 시작했는데 책임은 노동자만…대립 부른 경영진 책임은 어디에?
한편 대우조선 파업을 다룬 기사들에 대해 한동안 인터넷에서 '일침'이 유행했다. '노조가 임금 4.5%를 더 받자고 수천억원의 손실을 일으켰다'는 기사에는 "그렇다면 경영진은 진작 임금을 4.5%만 올려주면 되는데 왜 수천억원의 손실을 방치했느냐"고 되받아치는 농담이었다.
어찌보면 이러한 지적은 파업 이후 반복되는 손배소 사태의 본질을 짚는 지적이기도 하다. 분명 노사 양측의 입장 차이로 파업이 일어났는데, 경영진의 책임 없이 오로지 노동자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만약 파업 과정에서 사측이 대화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아 노사 갈등을 유발했다면, 경영진이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회사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배임과 같은 일을 벌인 것은 아닐까.
윤지선 활동가는 "사측은 물론 법원이나 언론도 노동자가 갈등을 만든 장본인처럼 묘사하고, 파업이 끝나야 모든 갈등이 종식된다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며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1년 넘게 대화하려 노력했는데, 이 때 회사가 적극적으로 응했다면 파업이 이처럼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불법행위가 있었느냐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대화를 거부하고, 노동권을 부정하는 행위를 했는지 따져보면 회사도 책임을 질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파업의 모든 피해를 노동자에게 묻는 것은 경영진의 책임까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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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te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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