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하청 숙련공, 선박 '수주 호황' 웃을 수 없는 이유

안태호 2022. 7.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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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1㎥ 감옥의 외침, 그후
떠난 조선 하청숙련공 왜 안돌아오나
물량팀·돌관팀..고착화된 재하청 구조
품질·안전 문제 발생..기술 축적도 안돼
원청 생산직과의 작업장 내 불공정도 문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51일째인 지난 22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 인근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51일 이어진 대우조선해양 파업이 마무리됐지만, 파업이 던진 물음표는 아직 유의미하다. 한국 조선업이 긴 불황의 터널을 건너 곧 호황기를 맞이할 텐데, 그에 대한 준비가 충분히 돼 있느냐이다. 조선업 종사자들이 전한 현실은 “아직 준비가 덜 됐다”였다. 무엇보다 저임금 구조에 떠난 하청 인력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재하청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숙련 노동자가 줄고 뜨내기 물량팀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대로는 선박 수주를 많이 해도 건조할 능력과 인력 모두 충분치 못해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은 한국 조선업계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조선업은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산업이다. 1990년대 이후 호황기를 맞을 때마다 조선업계는 부족 인력을 하청노동자로 채웠다. 사실상 첫 장기 불황이 시작된 2015년부터는 하청노동자가 대거 현장을 떠났고, 남은 인력은 저임금·고강도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2015년 13만3천명에 달했던 하청 생산직은 올해 5월 기준 4만8천여명에 불과하다.

문제는 하청업체들의 고용의 질 마저도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조선업은 다단계 재하청 구조이다. 무기계약직(본공), 단기계약직(일당공), 물량팀(특정 공정의 업무를 일정 기간 수행하는 팀), 돌관팀(단기간 웃돈을 얹어서 업무 수행하는 팀) 등으로 이어진다. 물량팀·돌관팀은 과거 호황 시 일감이 넘치고 인력이 부족할 때 쓰던 인력 풀이다. 정년이 보장되는 하청 ‘본공’들로는 감당이 안될 때 물량 단위로 웃돈을 주고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대신 4대 보험과 퇴직금 등이 없다. 고용과 사회적 안전망을 포기하고 높은 임금만 받는 셈이다.

그런데 불황을 맞아 일감이 줄었는데도 물량팀·돌관팀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조선하청지회 이김춘택 사무장은 “과거엔 본공이 조선소 생산인력의 기본을 차지하고 물량 변화에 따라서 물량팀 재하도급을 줬는데,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이 구조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본공보다 시급은 높지만 관리가 편하고 4대보험 등을 챙겨주지 않도 돼 하청업체들이 물량팀을 상설화시켜 쓰고 있다는 것이다. 물량팀 비중이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또 있다. 품질 저하, 안전 불감증, 숙련공 부족 등이다. 이김 사무장은 “물량을 빠르게 처리하면 수익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품질이 떨어지고 안전은 뒷전이 돼버린다”며 “사내 협력사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니 기술이 축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작업장 내 불공정도 하청 직원들이 감당해야 하는 불합리한 지점이다. 상대적으로 쉬운 업무는 본청 생산직들이 도맡고, 어렵고 위험한 업무는 하청노동자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윤용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선박의 녹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면, 외판은 정규직이 하고 블록 안 쪽은 하청이 한다. 외판은 장애물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일할 수 있다”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며 최저시급을 받는 하청노동자가 많다”고 말했다.

25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작업자가 용접 작업 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청이 이같은 문제를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사내협력사 대표는 “하청 인력 단가가 시간당 3만원 정도인데, 2016년부터 원청에서 50∼60% 수준만 주고 있다. 월급은 또 제대로 줘야 하니 대표들 빚이 늘어간다”며 “3사 조선소장 이상급들이 3개월에 한번씩 회동을 하면서 담합을 한다”고 말했다. 3사 하청노조 관계자도 “원청들끼리 협의해서 (하청 단가) 수준을 맞춘다. 한쪽이 올리면 다 그쪽으로 몰려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현실에 떠난 하청 인력은 주로 경기도 제조업 단지나 건설현장에 자리를 잡았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업계나 일반 제조업은 조선업에 비해 근로 강도 대비 임금이 훨씬 높다. 지금 같은 조건으로는 조선업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조선업계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전 세계 선박 발주량 2153만CGT 중 45.5%(979만CGT)를 수주하면서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탈환했다. 하지만 하청 인력 생태계를 재건하지 못하면 수주받은 선박을 제 때 건조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배규식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지금의 조선업 하청 질서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다. 호황 때 전혀 대비를 안해놨다. 수주가 많이 돼도 일할 사람이 없어서 위기가 다가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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