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꽃, 잠들다

정지윤 기자 2022. 7. 2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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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 이두화 선생이 정전협정 69주년을 이틀 앞둔 25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2차 송환 희망자였던 선생은 2018년부터 전남 나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내왔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선생은 항일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만주로 이주했다. 당시 전주 제일 보통학교 교사였던 선생의 아버지는 중국 용정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다. 10살 때 선생과 가족들은 두만강을 건너 함경남도 함주군 천원면에 정착했다. 아버지가 태어난 고향마을이었다.

비전향 장기수 고 이두화 선생의 생전 모습. 2018.7.24/정지윤 선임기자

이후 선생은 김일성대학에서 조선사를 전공했다. 대학 3학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정치공작 도당학교 강사로 전남 무안군에 파견되었다. 같은 대학에 다니던 여동생도 함께 내려왔다. 15살이던 남동생은 인민군에 지원했다. 선생은 인천상륙작전으로 돌아갈 길이 끊기자 영암 월출산으로 들어갔다. 그 후 동생들과도 연락이 끊기고 더 이상 소식을 듣지 못했다. 선생은 주로 도당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해인 1953년 가을에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가 이듬해 봄에 체포되었다.

비전향 장기수 고 이두화 선생의 생전 모습. 2018.7.24/정지윤 선임기자

군사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되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시 재판받았다. 광주교도소에서 3년을 복역했다. 감옥에서 천식과 기관지염을 앓던 선생은 강요에 의한 전향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형기가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30살 나이에 출소한 선생은 광주지역에서 미용학원 강사와 막노동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32살에는 빨치산 활동을 함께했던 최장열 선생과 결혼해 나주에 정착했다. 정식 교사 자격증은 없었지만, 전남 곡성군 옥과면을 오가며 사립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선생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21살 되던 해에 천식을 앓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농사일 하며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주던 남편도 2017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선생은 2018년부터 광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2차 송환을 기다리며 혼자 지내왔다.

비전향 장기수 고 이두화 선생의 생전 모습. 2018.7.24/정지윤 선임기자

빈소는 광주 서구 매월동 국빈 장례문화원 101호실에 마련되었다. 추도식은 26일 오후 7시에 빈소에서 진행된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 반이다. 유해는 화장된 뒤 광주 영락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문의:(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회장 김혜순) 02) 874-4063.

이두화 선생 별세로 2차 송환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는 이제 9명만 생존해 있다. 이광근, 문일승, 양원진, 최일헌, 박정덕, 박희성, 박순자, 김영식, 양희철 선생이다.

정지윤 선임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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