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되는 사건만 '10년간'..진짜 이상한 변호사들이죠"
“그깟 공익사건이 뭐라고!”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엔에이)에서 한 파트너 변호사는 새터민 관련 공익사건을 맡은 동료 변호사에게 이렇게 외친다. 공익사건 때문에 수십억원짜리 사건 수임을 못하게 됐다는 분노에 찬 비난이었다. 드라마에서 업계 2위 대형로펌 ‘한바다’는 프로보노(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료 변론)의 하나로 공익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나오는데, 현실에서는 이른바 ‘돈 되는’ 사건을 마다하고 공익사건 만을 위해 뛰는 공익인권변호사들도 존재한다.
“우리는 변호사 자격을 가진 활동가에 가깝다”고 말하는, 올해로 설립 10돌을 맞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이하 희망법)의 류민희(대표)·김두나·김재왕·박한희 변호사가 그들이다. 지난 19일 서울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희망법 사무실에서 진짜 ‘이상한’ 변호사들을 만났다.
‘소수자 인권 옹호 사건 전업으로’
2012년 2월 6명 의기투합해 창립
사법연수원 동기·민변·로스쿨생 등
‘서울 학생인권조례 방어’ 첫 승소
장애인·동성혼 등 패소해 항소중
“지더라도 부딪혀 싸우는 사람들”
희망법은 2012년 2월3일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 사법연수원에서 인권법학회를 함께한 김동현·류민희 변호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 발족을 준비하던 서선영·조혜인·한가람 변호사, 그때 로스쿨 재학 중이던 김재왕 변호사가 초창기 멤버다. “‘소수자 인권 옹호 사건을 전업으로 하는 변호사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뜻이 모였다”는 게 김재왕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후 로스쿨 시절 희망법에서 진로상담을 받으면서 인연을 맺었던 박한희 변호사, 시민사회에서 반 성폭력 운동을 하다 법조인의 길로 뛰어든 김두나 변호사가 합류했다. 김두나 변호사는 “반 성폭력 운동을 하다가 활동을 좀더 잘 해보고 싶어서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렇기 때문에 졸업 뒤 인권운동 분야에 기여하는 활동가로 일하고 싶었고, 희망법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흔히 공익사건이라고 하면 경제적 약자에게 변호사가 무료로 변론해주는 일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희망법이 집중하는 공익사건은 개인적인 분쟁보다는 차별적인 법 제도나 관행을 바꾸는 소송들이다. 희망법의 첫 수임 사건인 ‘서울 학생인권조례 방어 사건’이 대표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12년 1월 교내집회 허용,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 등이 담긴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했는데, 교육부는 조례 내용과 절차적 하자 등을 이유로 그해 2월 무효소송을 냈다. 조례안을 제정한 ‘피고 서울시의회’를 대리해 소송에 나선 희망법은 이듬해 대법원으로부터 승소 취지 판결을 받아냈다. 류 변호사는 “역사적 의미가 큰 조례인데 통과되자마자 반대편에서 이를 훼손하려는 법적 시도가 있었다. 서울시의회의 수임 요청에 흔쾌히 응하면서 희망법의 첫 소송이 됐는데, 이겨서 기뻤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현재 진행중인 시각장애인의 놀이기구(롤러코스터) 탑승 소송과 동성혼 관련 소송도 승소가 확정되면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건이다. 희망법은 2015년 시각장애인에게 롤러코스터 탑승을 제한한 에버랜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는데, 2년 반 넘게 2심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을 대리하는 김재왕 변호사는 “시각장애인에게 롤러코스터는 위험하다는 근거를 찾기 어려움에도 한국 사회에선 ‘장애가 있으면 돌발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할 것이다’ ‘위험하니 타면 안 된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이런 인식에 문제제기하기 위해 소송을 냈는데, 항소심이 길어지고 있어 힘든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2015년부터 제기된 동성부부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라는 취지의 소송은 모두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보수적이고 천천히 변화하는 사법부 특성상 소수자 권리 보장 관련 사건에서도 법원은 기존의 판단을 답습하는 사례가 많다. 느릿느릿한 법원의 인식 변화가 답답하진 않을까. 그러나 이들은 이 과정을 ‘루징 포워드’라고 했다. “‘지면서 나아간다’는 뜻인데요, 이게 끝이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더 하면 좋을지 도출해내서 나아가기 때문에 좌절하진 않습니다. 크고 작은 승리를 경험하면서 사회가 바뀌는 경험도 했기 때문에 당연히 나아질 거란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류 변호사)
이들은 ‘공익사건=착한 사건’, ‘공익 변호사=착한 변호사’가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소수집단의 권리 보장을 위해 내는 목소리는 때때로 사회적 논쟁을 야기하고 누군가의 안온한 일상을 흔들기도 한다. 박한희 변호사는 “흔히 공익사건은 불쌍하고 힘없는 사람을 무료로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공익인권변호사라고 해서 그런 것만 지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익사건은 누군가에게 민폐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기 위해 싸우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부딪히고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한국사회 인권 이슈에 대해 소임을 다하고 싶다. 격동하는 시기에 인권이 더 후퇴하지 않고 보호될 수 있도록 희망법이 노력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며 웃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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