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활용방안 놓고 문화계 분열.."정부의 행정 난맥과 소통 부족이 이유"

도재기 기자 2022. 7. 2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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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계와 학계, 문체부 방안 "역사성 무시" 반발
문화재위 위원장단 회의, 문화재청 노조 비판 성명
미술계 단체들, 지지와 환영 입장 발표
대통령실과 문체부 행정 엇박자, 대통령실 뒤늦게 자문단 구성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청와대 국민 개방 기념행사가 열린 지난 5월 청와대 본관 앞에서 관람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의 청와대 활용 방안을 놓고 문화예술계가 분열되면서 정부의 정책 발표에 앞선 여론 수렴과 소통 부족, 행정 난맥상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힌 전시 중심의 복합 문화예술공간으로서의 청와대 활용 방안에 대해 문화재계와 학계는 25일 우려와 비판을 내놓았다. 반면 미술계 단체들은 이날 시각문화 중심의 복합 문화공간화를 지지한다며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문화재계는 정부의 활용 방안이 청와대가 지닌 역사성과 장소적 특성을 무시하고, 활용을 위한 조사·연구와 여론 수렴 등 기초 절차마저 지키지 않는 전근대적 밀어붙이기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문화재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문화재위원회의 각 분과위원회 위원장단은 이날 오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례적으로 긴급 모임을 갖고 정부의 청와대 활용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전영우 문화재위원장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속하기 위해 청와대 구역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보존할 수 있는 문화재 지정 방안을 적극 모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이나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등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적으로 지정되면 역사문화 유적으로서의 보존이 우선돼 현상을 변경할 경우 문화재위원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한다. 문체부 활용방안이 수정 또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등록하면 사적보다 활용이 쉬워진다. 회의에 참석한 한 분과위원장은 “문체부의 방안은 제대로된 청와대 활용을 위한 기본적인 조사와 연구도, 여론 수렴도 없이 만들어졌으며, 고려시대 남경부터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후원으로서의 역사성을 도외시한다는데 공감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앞서 전 문화재위원장은 문체부 방안이 활용만을 강조한다고 지적하며 문화재위원회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문화재청 노조도 이날 비판적 논평을 발표했다. 문화재청 노조는 ‘청와대, 다시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논평에서 “청와대를 ‘거대한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켜 ‘베르사유 궁전처럼 꾸민다’는 것에 우려를 표명한다”며 문체부 활용 방안이 “청와대의 역사성과 개방의 민주성을 도외시하고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으로 되돌리는 퇴행은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노조는 “문체부는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고자 하는 관계 전문가, 현재 청와대를 관리하고 있는 문화재청의 의견을 묻고 들은 적이 있는가. 국민에게 물었는가”라고 꼬집었다.

한편 한국미술협회, 한국전업작가협회 등 54개 시각문화 관련 문화예술단체는 청와대를 시각문화 중심의 복합문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정부안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단체들은 “청와대의 시각문화중심의 복합문화공간화를 환영한다”며 “미술관, 시각문화시설을 중심으로 한 복합문화공간화 계획은 선진국 국격에 맞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환골탈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 발표에 참여한 한 단체 대표는 “유구한 역사성과 장소적 특성에 대한 조사와 연구에 이어 훼손하지 않는 보존도 중요하다”며 “다만 현존하는 건물, 공간의 활용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활용 방안을 둘러싸고 문화예술계의 분열은 정부의 행정 부실과 소통 부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청와대 개방 2개월이 넘었지만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실, 문체부 등이 정책 엇박자를 빚는 등 행정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대통령실은 이날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실은 자문단이 “출범과 함께 국민의견 수렴~부처 실행방안 논의~(청와대)관리활용 로드맵 발표 등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가 이미 지난 21일 활용 방안을 보고한 가운데 대통령실이 뒤늦게 자문단 구성에 이어 관리활용 로드맵 발표를 예고한 것이다. 한 건축학자는 “대통령실과 문체부간 업무 협의나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청와대 개방의 정치적 효과에만 매몰돼 정작 보다 중요한 체계적 정책 마련에는 부실했음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청와대와 관련, 대통령실에서는 인수위원회 시절 청와대이전TF에서 이어진 관리비서관실이 담당하고 있고, 청와대 개방과 관련한 임시 관리는 문화재청이 맡고 있다. 그런데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지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청와대 활용 방안을 내놓으며 “1단계로 청와대를 개방한데 이어 2단계에서는 문체부가 전반적으로 주도해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체부의 주도권 발표는 관리비서관실이나 문화재청과 협의 없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계 관계자는 “업무보고에 앞서 문체부 관계자들이 공식적으로는 문화재청과 상의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상의, 협의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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