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 글로벌 경제 리뷰] 필립스 곡선의 실종, 스태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

대니얼 바크먼 2022. 7. 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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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바크먼딜로이트 인사이트미국 경제 예측 및모델링 책임자 존스홉킨스대 정치경제학, 브라운대 경제학 박사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높은 실업률 또는 실업률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1960년대 중반 영국 경제의 상태를 일컫는 말로 처음 사용됐다. 이후 1969년 미국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하자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수출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해 인위적인 경기 억제를 시도했는데, 정작 물가는 잡지 못하고 경기침체만 유발해 일시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1970년대 미국 경제 상황이 매우 암울하기는 했지만, 엄밀히 보자면 당시 스태그플레이션은 극히 짧은 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현재 고물가가 이어지며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다시 확산하고 있다. 과거 스태그플레이션의 의미를 파악해 향후 어떠한 영향을 초래할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상충관계

런던정치경제대학 교수 윌리엄 필립스(William Phillips)는 1958년에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시기 실업률이 하락한다는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 이론을 제시했다. 당시 이 이론은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 간 상충관계로 해석됐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책결정자들은 실업률을 낮추는 대가로 물가 상승을 용인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이 이론을 따른 경제 정책은 약 10년 후 미국의 첫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그림 1은 1960년대 미국의 필립스 곡선을 보여준다. 약 10년간에 걸쳐 물가가 상승하면 실업률이 낮아지는 안정적 추세가 명확히 보인다. 이 시점까지 필립스 곡선에 따른 경제 분석은 들어맞았고, 유일하게 남은 실질적 문제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물가 상승을 감수할 수 있느냐뿐이었다.

하지만 1969년 연준이 긴축으로 선회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1970년에 실업률이 3.5%에서 5.0%로 급등했지만, 인플레이션율은 필립스 곡선의 상충관계를 따르지 않고 약 0.5%포인트 상승했다.

 

1970년대가 본격화하자 이러한 상황이 더 자주 발생했다(그림 2). 필립스 곡선의 상충관계는 1971~73년 나타났다가, 1974~76년 사라졌고, 1970년대 말에야 다시 나타났다. 1971년과 1975년에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이 동시에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특징이 나타났다.

또한 1970년대에는 비슷한 실업률 수준에서 1960년대보다 인플레이션율이 높았다. 1962년 실업률이 5.6%일 때 인플레이션율이 1%였다면, 1979년 실업률이 5.9%일 때 인플레이션율은 11%를 기록했다. 필립스 곡선은 1969~70년 경기침체 이후 한 차례 방향을 뒤집었고, 1973~75년 경기침체 이후 또 방향을 바꿨다. 이러한 일이 반복될 때마다 동일 실업률하에서 인플레이션율은 더 높아졌다. 마치 정책결정자들이 필립스 곡선의 상충관계를 이용하려 할 때마다 곡선을 그래프상의 오른쪽으로 더 밀어내며 인플레이션을 더욱 끌어올린 셈이 된 것이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관계

필립스 곡선이 방향을 바꾼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 경제학자들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시장과 전혀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세계에서 물가는 환경 변화에 즉각 반응한다. 반면 실제 세계에서는 시장 참여자들이 가격 변동을 결정 및 수용하는 데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바로 이 때문에 경기가 둔화하는 와중에도 인플레이션이 과거의 관성을 유지하고, 때때로 1970년대 경기침체 때와 같이 필립스 곡선 이론과 반대로 경기 하강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스태그플레이션은 단기적 현상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 회복이 시작되면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기존의 상충관계로 돌아온다. 1970년대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기억으로 얼룩져 있지만, 1970년대 후반에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대신 실업률이 하락하는 정상적 필립스 곡선이 나타났다. 1960년대보다 곡선이 그래프상 더 높은 곳에 있었을 뿐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후반의 가장 큰 차이는 기업과 근로자들이 1970년대 상당 기간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대인플레이션도 계속 상승해, 물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제로 임금 협상과 가격 정책이 이뤄졌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물가는 계속 오른다는 전제가 경제 기본 원칙으로 깔려 있다. 그 결과, 하락 중이더라도 상대적으로 높은 실업률과 높아 보이는 인플레이션이 공존하게 된다. 하지만 물가가 상승하면 실업률이 하락하는 것은 여전히 우세한 추세이며,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이 동시에 오르는 현상은 절대 장기간 지속된 적이 없다.

물가 잡으려면 기대인플레이션을 억제하라?

1970년대 물가 상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에 직면한 정책결정자들은 긴축 통화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인위적으로 둔화시켜 기대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리려 했다. 당시 이런 정책을 이끌던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 전 연준 의장과 지미 카터 및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로 인해 미국 경제가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볼커 전 의장이 미국 경제를 징벌적 경기침체로 몰아넣었지만, 처음에는 의도했던 대로 기대인플레이션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림 3은 1980년대 필립스 곡선을 보여준다. 볼커 전 의장은 1980년대 초반 실업률 상승을 유도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억제해 곡선을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기대인플레이션이 억제되면서, 실업률이 추가 상승하지 않았는데도 인플레이션율이 하락했다(물론 이는 1980년대 초반 실업률 상승이라는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얻은 ‘공짜 점심’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말이 되자 동일한 실업률 대비 인플레이션율이 전보다 낮아지는 새로운 필립스 곡선이 형성됐다.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없애야 스태그플레이션 피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실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 현상은 경기침체 또는 심각한 경기 하강 시기에 잠시 나타났다가 경제가 회복되면 사라진다. 물가가 상승세여도 완전고용은 가능하다. 하지만 물가 상승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이 거세지면 정책결정자들은 경제 성장을 억제하거나 심지어 경기침체를 유도하더라도 기대인플레이션을 용납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연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은 ‘안착(anchored)’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과 민간 기업 모두 인플레이션 압력이 조만간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준은 기대인플레이션 동향을 계속 예의주시할 것이다.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1년 미만의) 짧은 기간에 종종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립스 곡선이 완전히 방향을 바꾼 상태가 길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1980년대처럼 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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