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일감 몰아주기 1천억여원 감세.."정부가 총수 이익 챙겨줘"

이정훈 2022. 7. 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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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윤 정부, 재벌 사면에 세제 혜택까지 추진
기업별뿐만 아닌 사업부문별로도 과세 개편
국내 내부거래도 수출용이면 제외 추진도
개정시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 100여명 감세
수출용 납품하는 중소·중견기업은 일감 줄 듯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사면을 검토해 ‘재벌 특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 완화로 “재벌 총수 일가를 위한 세제 개편”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안대로 세제 개편이 추진되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총수 일가 100여명의 세 부담이 1천억원 이상 줄어들 전망이어서다. 소득세 과세표준 조정으로 월급쟁이는 평균 83만원의 세금이 감소하는데 비해, 재벌 총수 일가는 평균 10억원 이상의 세 부담이 줄어드는 꼴이다.

26일 국세청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재벌 총수 일가의 세 부담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상속·증여세법에 따른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2016년 681억원에서 2017년 1075억원, 2018년 1968억원, 2019년 1885억원, 2020년 1542억원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대기업 집단인 재벌 총수 일가 부담은 2016년 388억원(57.0%), 2017년 552억원(51.3%)으로 절반 수준이었다가 2018년 1594억원(81.0%), 2019년 1548억원(82.1%), 2020년 1322억원(85.7%)으로 비중이 3분의2 이상으로 높아졌다. 2020년에는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 홀로 947억원을 냈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공정사회’를 강조하면서 2012년 도입됐다. 그룹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법인에 일감을 몰아줘 매출을 늘리고 총수 일가 지분 가치를 올리면서 부의 편법적 대물림 논란이 일자 증여세를 부과한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약 30억원으로 현대글로비스를 세운 뒤 계열사들로부터 일감을 받아 수조원 가치 지분으로 끌어올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외국과 달리 일감을 몰아준 계열사들이 상장회사인 경우가 많은데,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기업에 사업기회나 일감을 몰아줘 해당 기업과 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다. 지금은 대기업의 경우 ‘세후영업이익×(내부거래 비중-5%)×총수 일가 주식 보유 비율’로 일감 몰아주기 세액을 계산한다. 공정거래법(제47조)이 상당한 유리한 조건 등으로 일감을 몰아줘 총수 일가 사익 편취를 감시하는 것이라면, 상증세법에 따른 과세는 일감 몰아주기가 실질적인 증여 행위로 보고 이에 따른 이익에 대한 세금을 납부토록 하는 제도다.

윤석열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 제도 합리화’라는 명분으로 이를 없애려고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서,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기업 단위가 아닌 사업부문별로 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현대모비스의 경우, 2021년 기준 내부거래 비중이 63.9%에 달해 세후영업이익(약 1조4천억원)을 과세표준으로 삼아 정몽구 명예회장(지분율 7.17%)과 정의선 회장(0.32%) 등에게 과세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세제 개편안대로 바뀌면, 현대모비스의 모듈·부품사업부문과 에이에스(AS)사업부문 등으로 나눠 내부거래가 많은 모듈·부품사업부문만을 과세표준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과세표준은 3분의1로 줄어들면서 정의선 회장 등의 부담은 대폭 줄거나 사라질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금은 일감 몰아주기 거래 가운데 해외 계열사와의 거래만 제외하고 있는데, 그 범위를 넓혀 수출 목적의 국내 계열사와의 거래마저 빼줄 계획이다. 현대모비스의 경우, 해외 수출을 위한 국내 계열사간 부품 거래도 빠지면 사실상 총수 부담은 없어지게 된다.

앞서 기재부는 2020년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이런 내용을 담은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 반대했다. 2019년 김정우 민주당 의원이 같은 내용으로 발의한 개정안에도 같은 자세였다. 김용범 당시 기재부 차관은 “한 법인의 영업이익은 여러 사업 부문의 활동이 복합적으로 모인 결과”라며 사업부문별 과세에 반대했다. 기재부가 2년 만에 태도를 바꾼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시에도 아주 반대를 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기업의 ‘모래주머니’를 풀어준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안대로 추진되면, 총수 일가는 1천억원이 넘는 세 부담이 줄고 기존 중소·중견기업 협력사 쪽은 일감이 줄어드는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재벌 계열사간 거래여도 수출용이라면 과세 대상에서 빠질 경우, 대기업 수출 제품에 사용되는 부품 등의 공급을 대기업 계열사가 맡으면서 대기업에 납품하던 기존 중소·중견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해질 수 있어서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정부는 과세제도 합리화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는 재벌 총수 이익을 챙겨주는 꼴"이라며 "향후 국회에서 세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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