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화분 357개가 경찰서장 집단행동 처벌 근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통령실이 전국 경찰서장 회의 참석을 ‘군사쿠데타에 준하는 집단행동’으로 규정하면서 조만간 현장 참석자들에 대한 본보기성 중징계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검사들의 집단행동은 합법이라며 감싸는 이중 잣대를 분명히 함에 따라, 무더기 징계가 현실화할 경우 당사자들의 취소소송도 잇따를 전망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5일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이하 형사처벌도 가능한 사안이라고 했다. 이와 별개로 경찰청은 회의 참석자 징계를 위한 감찰을 진행 중이다.
처벌 및 징계 근거로 거론되는 것은 주로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국가공무원법 제57조(복종 의무), ‘공무원은 집단·연명으로 국가 정책을 반대하거나 국가 정책 수립·집행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3조2항(근무기강 확립)이다. 이 장관이 징역 1년 이하 형사처벌을 거론한 것은 국가공무원법 제66조(집단행위 금지)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이날 “윤희근 경찰청장 직무대행의 해산 지시를 불이행한 복무규정 위반으로 판단했다”고 거듭 밝혔다. 지난 23일 경찰서장 회의 개최 전 모임 자제를 요청했고, 회의 중에도 이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 쪽에 ‘즉시 모임을 중지할 것과 참석자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회의 뒤 언론에 단체 입장문 발표도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당초 ‘회의 결과를 전달해주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던 경찰 지휘부가 돌연 입장을 바꾼 이유로 든 건 ‘대규모 참여 인원’과 ‘무궁화 화분’ 때문이다. 총경 계급장을 상징하는 무궁화 화분 357개 등은 단체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일부 인원이 모여 의견수렴하는 정도로 봤는데, 당일 대규모 참여 인원과 화분 등이 단체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류 총경이 경찰정복을 입고 언론 카메라 앞에 선 것도 문제삼았다.
전문가들은 정복 착용, 무궁화 화분 등 지엽적인 것까지 세세하게 따지며 처벌·징계 명분을 쌓아가는 태도 자체를 지적했다. 정하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지휘부가 열지 말라는 회의를 연 건 복종의무 위반으로 볼 수 있지만, 지휘부가 총경들의 의견 제출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 역시 의무 위반이다.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서로 노력하고 설득할 문제지 하나하나 위법성을 잡아내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고 말했다. 권형둔 공주대 법학과 교수는 “복종의무 위반은 형식적 법치주의 관점에서는 가능하겠지만 경찰국 설치의 위헌성을 항변하는 행위에 대한 징계가 정당한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지난 4월 검찰청법 개정에 반발하는 검사들이 연일 집단행동을 할 때도 “검찰의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나왔었다. 시국선언문 한장만 내도 공무원을 무더기 기소했던 검찰이 자신들의 집단행동은 “합법”이라며 국가공무원 위반 혐의에 ‘셀프 면죄’를 했다는 비판이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무원 집단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돼 왔다. 검사들이 집단으로 움직일 때는 아무런 조치도 안하다가 경찰만 국가공무원법상 집단행위 금지와 복종의무 위반으로 엄포를 놓는 게 과연 형평성에 맞느냐”고 했다.
경찰의 해산 명령과 감찰 자체가 ‘월권 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복종의 의무’는 업무 수행과 직결되는 사안에서 최소한으로 적용되어야 하는데 이를 경찰청이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취지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전 보장 등 실질적인 위험을 야기할 명백한 조짐이 보이는 경우면 해산 명령이 가능하겠지만, 단순히 모여 의견을 수렴하는 행위에 대한 해산 명령은 경찰청장 재량권을 벗어난 월권 행위”라고 말했다. 130명이 넘는 화상 참석자는 제외한 채 현장 참석자 56명만 징계하겠다는 것도 속 보이는 본보기성 징계라는 지적이다.
한편 국가공무원 복무규정(근무기강 확립)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11월 신설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4대강 사업 등에 반대하는 공무원 시국선언이 쏟아지자 공무원 근무기강을 확립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같은 금지 규정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탓에 위헌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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