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내려놓는 N잡러들.. 흔들리는 초단기 고용시장 [한국, 새 길에 서다]

최재성 2022. 7. 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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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플랫폼 (5) 고용시장 떠나는 '긱 워커'
주당 17시간 이하 근로자 218만8000명
팬데믹에 먹고살 길 급급해 아르바이트 인기
초단기 고용시장 변수 아닌 '상수'로 자리잡아
시장 포화되자 수익 떨어진 근로자들
다시 전통적 고용형태로 회귀 움직임
기간 정함 없는 구직건수 일년만에 19% 뚝
플랫폼발 무기근로 구인건수는 31% 늘어
수요·공급 엇박자 해소 위한 제도 마련 시급
고용보험·산업재해보험 등 안전망 마련돼야
알바 내려놓는 N잡러들… 흔들리는 초단기 고용시장 [

#. 코로나19가 본격화한 이후 초단기 고용시장에 몸을 던진 박모씨(35)는 세 개의 직장을 가진 전형적인 '긱 워커(Gig Worker·초단기 근로자)'다. 당초 근로조건의 제1요건으로 '안정성'을 내세웠던 박씨였지만, 코로나19 이후 생각을 바꿨다. 아니 '바꿀 수밖에' 없었다. 다니던 직장이 코로나19 장기화로 문을 닫으면서 새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다. 배달 업무를 통해 초단기 고용시장에 뛰어든 박씨는 요즘엔 쿠팡 아르바이트와 콜센터 상담사, PC방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

기간 계약을 아예 하지 않거나 아주 짧은 기간 계약을 하고 일하는 긱 워커들에게 두 개 혹은 세 개의 직업을 갖는 것은 필수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근로환경에서 직접 실천하는 셈이다.

최근 박씨와 같은 이들을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의 팬데믹 기간은 말 그대로 '긱 워커 전성시대'였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중심 플랫폼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이들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꽤나 괜찮은 수입을 보장한다는 소문에 초단기 고용시장에 뛰어든 이들도 급증했다.

하지만 모든 직장이 그렇듯 긱 워커들에게도 고충이 있다. 언제든 직장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 초단기 근로자들에 대한 부정적 시선까지 긱 워커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은 여전히 적지 않다.

박씨는 초단기 근로를 통해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것은 맞지만,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일했다"며 지난 2년을 회상했다. 그는 "'초단기 근로'를 통해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면서도 "개인사업자로서의 고충,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늘 함께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고용시장의 새 모습이 엔데믹 본격화 이후에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코로나19로 급격히 몸집을 키운 초단기 근로자 중심의 플랫폼 고용시장이 규모를 줄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엔데믹이 본격화했음에도 이 같은 고용시장의 트렌드가 이어지면서 초단기 근로자는 이미 고용시장에서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미 커질대로 커진 초단기 근로자 고용시장이 또 한번의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자유'와 '안정' 사이에서 거취를 저울질했던 근로자들이 엔데믹과 함께 전통적 근로 환경으로 회귀할 낌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변수 아닌 상수 된 '초단기 고용시장'

25일 고용노동부의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주당 17시간 이하 초단기 근로자는 218만8000명에 이른다. 2021년 200만명을 넘어서며 몸집을 불린 이후 규모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팬데믹 본격화 이후 기존 직장이 사라지거나 근로환경이 열악해지면서 플랫폼 중심의 초단기 고용시장은 전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마스터카드에 따르면 전 세계 초단기 근로자 중심 경제는 해마다 17%의 성장을 거듭, 2023년에는 4550억달러까지 규모를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상황 역시 이 같은 예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이나 택시, 일반 직장 등에서 생업을 이어온 이들이 플랫폼을 활용해 초단기 고용시장에 몸을 던졌다. 배달과 청소 등은 물론이고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다양한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했다. 여기에 자유로운 근로를 선호하는 MZ세대의 특성까지 반영되면서 시장 상황은 급변했다.

초단기 근로자들을 사용자와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은 호황을 거듭했고 초단기 근로자들 중 일부는 기존의 직장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수입을 올리며 열기를 더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플랫폼을 활용한 사용자들의 수요 역시 크게 늘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1월 '기간의 정함 없는 근로계약' 구인 인원은 16만1031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31% 증가했다. '기간의 정함 없는 시간제 근로계약'으로 범위를 좁힐 경우 증가율은 58%까지 치솟을 정도로 초단기 근로자를 찾는 사용자 수요는 급증했다.

■'불균형 조짐?'… 수요↑공급↓

하지만 최근 초단기 근로자 고용시장의 수요와 공급은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초단기 근로 일자리 수가 늘어날 대로 늘어나버린 상황에서 수요는 '관성적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공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구인구직 통계 현황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전년 대비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던 '기간의 정함 없는 근로계약(시간제)' 구직건수는 올해 4월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해 4월 '기간의 정함 없는 근로계약' 구직건수는 15만894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3% 줄었다. 같은 기간의 구인건수에 비해선 2만건 이상 적은 수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초단기 근로자를 중심으로 한 고용시장이 '레드오션'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용시장에 유입된 초단기 근로자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근로자 개인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줄었고 자연스레 공급도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초단기 근로자 시장에 뛰어든 이들이 엔데믹과 함께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떠난 것도 초단기 근로자 공급 감소로 이어졌다.

배달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배달업 종사자 수가 급격히 증가해 경쟁이 치열해졌고 엔데믹과 함께 배달음식 수요가 줄면서 수익 감소로 이어졌다"며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초단기 고용시장에 뛰어든 이들이 많았고 (초단기 근로자의) 70% 이상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N잡러'이기 때문에 감소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완전한 회귀' 어렵다…안전망 절실

업계는 초단기 고용시장의 수요·공급 '엇박자'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초단기 고용시장의 수요·공급 불균형 우려를 불식하고 선제적으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제는 고용시장의 상수로 자리 잡은 초단기 근로자들을 위한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근로자임과 동시에 사업자임을 자처하는 '비임금 근로자'들이 전통적으로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초단기 근로자들은 개인이 곧 사업자인 비임금 근로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와 함께 고용시장의 급변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법 체계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고용시장이 급격한 변화를 거듭했음에도 근로기준법이 일종의 '성역'처럼 여겨지는 바람에 실질적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고용보험과 산업재해보험을 중심으로 이들을 위한 제도적 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재보험 관련 법안의 경우 특수고용자를 포함하는 쪽으로 입법이 추진·진행되고 있지만 비임금 근로자들의 경우 사업자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별도의 방식을 새롭게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고용시장의 현상황과 법률 사이의 괴리를 해결하지 못하면 관련 산업, 나아가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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