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에 쪼개지는 유럽..가스 사용량 두고 남유럽 국가들 반발
유럽을 겨냥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가 본격화한 가운데 유럽 국가들이 가스 사용량을 두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제안한 가스 사용 감축안에 일부 국가들이 반기를 들며 EU의 반러시아 연대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2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EU 27개 회원국 외교관들이 집행위원회가 지난주 제안한 ‘가스 사용량 15% 감축안’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0일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 가능성에 대비해 EU 회원국들이 다음 달부터 내년 봄까지 가스 사용량의 15%를 자발적으로 줄이는 가스 수요 감축안을 제시했다. 계획에는 비상시 ‘연합 경보’를 발령해 회원국들에 가스 사용량 감축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도 담겼다.
집행위의 이런 제안은 독일과 등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의존도가 낮은 일부 남유럽 국가들은 감축 목표가 과하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폴란드와 포르투갈, 스페인, 키프로스, 그리스 등이 즉각 반대 의사를 밝혔고 이탈리아도 15% 감축안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회원국별로 에너지 비축분과 러시아 의존도가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감축 비중을 적용받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다. 포르투갈은 회원국별 가스 공급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인 15% 감축은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일각에선 집행위의 이번 제안이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가스 수요 감축안을 둘러싼 회원국 간 갈등이 불거지는 모양새다. EU 내에서 비교적 경제력이 약하거나 국가 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들의 경우 가스 수요 감축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집행위는 오는 26일 에너지장관급 이사회에서 최종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감축안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EU 회원국 인구의 65% 이상을 보유한 주요 15개국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이미 6개국이 반대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승인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장기화한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유럽국가들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맞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각기 다른 정치·경제 사정으로 쪼개지며 좀처럼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대러 제재에 지속해서 반기를 들어온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지난 23일 대러 제재 폐기를 촉구하며 또 한 번 EU 단결에 찬물을 끼얹었다.
오르반 총리는 이날 루마니아의 한 대학 강연에서 러시아에 대한 EU의 징벌적 제재는 실패했다며 EU의 대러 제재 조기 폐기와 미국·러시아의 평화협상 추진을 촉구했다.
헝가리는 아예 대러 제재를 무시하고 러시아에 추가적인 가스 공급을 요구해 논란이 되고 있다. 시야트로 페테르 헝가리 외무장관은 지난 21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7억㎥의 추가 가스공급을 요청했으며, 러시아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태도를 밝혔다.
헝가리의 이런 독자행동은 최근 악화한 자국 경제 상황을 대러 제재 동참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헝가리는 최근 두 자릿수 물가 상승률과 포린트화 가치 하락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오르반 총리가 러시아에 확실한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러시아에 85% 가까이 가스 수입을 의지하고 있는 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지적했다.
마리오 드라기 총기 사임으로 불안정한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도 유럽 단결에 악재가 될 수 있다. 이탈리아 정치권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등을 두고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9월 총선에서 반EU·친러 성향의 정당들이 연립정부에 진출해 목소리를 내게 되면 EU의 단결이나 대러 전선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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