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전태일·박종철도 못받은 유공자 대우..'운동권 셀프보상' '신분세습법' 비판은 타당한가[팩트체크]

박홍두 기자 2022. 7. 2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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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왼쪽부터) , 박종철, 전태일 열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여야가 과거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예우하는 ‘민주유공자법’의 제정을 놓고 연일 정면 충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4·19나 5·18 국가유공자처럼 예우해줘야 한다”며 2년 만에 다시 입법에 나선 반면 국민의힘은 해당 법안이 대입 특별전형과 공무원·공기업 임용 가산점 등을 주는 ‘셀프 특혜’ ‘신분세습법’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학업·취업 등을 놓고 최근 청년층에서 민감한 ‘공정의 가치’ 문제까지 연결시키며 논란을 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당 법안은 여야의 정쟁을 넘어 사회갈등 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①민주유공자법의 대상자는 누구인가?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과 우원식 의원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9개월째 농성중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와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의 천막농성장을 방문해 유족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이 2020년 9월23일 발의하고 이번에 다시 입법을 추진 중인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보면, 유공자 지정 대상은 민주화운동 사망자·행방불명자, 부상자 중 상이를 입은 사람으로서 장해등급 판정을 받은 사람 등이다. 유공자 혜택을 받는 ‘유공자 가족’은 배우자와 자녀, 부모 등 직계존비속까지다.

국민의힘 측은 해당 법안의 대상자가 ‘운동권 출신’과 그 자녀들이라고 지목하며 특혜 논란을 제기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운동권 출신과 자녀들을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원받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법이 통과될 경우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유공자는 829명 정도로 추산된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측이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 심의를 받은 바 있는 민주화운동 공헌자의 수다. 유가협에 따르면 사망자 136명과 부상자 693명이 그들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추정에 따르면 이들 829명의 유가족은 3700여명으로 추산된다. 국민의힘 주장대로 ‘운동권 출신’이 모두 혜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망하거나 장해등급을 받을 정도의 고문이나 폭행 등을 당한 부상자만 포함되는 것이다.

해당 입법이 이뤄지면 민주화 역사의 상징적인 인물인 고 이한열·박종철·전태일 열사 등이 유공자로 지정된다. 현재 이들 열사들은 국가유공자가 아니다.

②‘운동권의 셀프보상법’인가?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 법이 “운동권 출신의 셀프보상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의 상당수가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는 인사들인 만큼 자신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법을 만들고 나섰다는 주장이다.

반면 법안 발의자인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25일 KBS 라디오에서 “사망한 열사들이 돌아와 이 법을 만드는 게 아니지 않나” “(예상되는 대상자) 829명 중 현재 정치인은 단 1명도 없다”고 반박했다.

유공 예상 대상자인 829명의 명단은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유가협 등 관계자들에 따르면 829명 중에는 현직 정치인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민주화운동가로 2011년 작고한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경우 부인인 인재근 의원이 현직 민주당 국회의원이지만 김 전 고문이 생전에 장해등급을 신고하지 않아 이 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유공자가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측 지적을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자신뿐 아니라 동료 운동권 출신 인사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입법에 나섰다는 의미로 해석하더라도 ‘셀프 보상’이라는 단어는 맞지 않게 된다.

또 국민의힘은 이 법안이 교육·취업·의료·주택·요양·대출 등 광범위한 특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법 자체를 국가유공자법에 근거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혜택 조항이 거의 그대로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유공자법 등과의 법적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국가유공자법 내용을 거의 그대로 준용했다는 것이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추산으로 최대로 잡아서 1년에 10억원이 든다. 이것을 가지고 침소봉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같은 민주화운동인데 4·19 희생자는 되고 왜 80년대 민주화 운동은 안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당은 아예 혜택을 줄여서라도 유공자 지정을 추진해 법안의 진정성을 보이겠다는 얘기도 하고 있다.

③‘현대판 음서제’ 신분세습?

국민의힘과 일부 보수층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문제삼는 부분은 민주화운동 유공자의 가족, 특히 자녀의 학업·취업특혜 논란이다. 정미경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운동권 인사들의 자녀에게 진학 등 특혜를 주려는 것”이라며 법안의 의도를 지적했다.

실제 법안은 ‘교육지원’과 ‘정부·공공기관 취업 가산점 특혜’ 등을 보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국가유공자 관련 법률과 마찬가지로 유공자 자녀에 대한 지원책이 그대로 담긴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주장대로 대입 특별전형 등 진학과 관련한 특혜는 규정돼 있지 않았다. 이는 다른 국가유공자법에도 없는 조항이다. 다만 초중등 교육기관과 대학 입학에 따른 수업료 면제, 학습보조비 지급 등 재정적 지원을 교육지원책으로 법안에 명시했다.

정부·공공기관 취업 가산점의 경우 다른 국가유공자법과 동일한 내용이 담겼다. 유공자 자녀의 경우 채용시험 시 만점의 5%를 가점받는 식이다. 다만 해당 법안에는 ‘가산점에 따른 합격자 수’를 다른 유공자를 포함한 인원이 전체 채용인원의 30%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해 일반 응시생의 합격 정원을 침해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가점 혜택은 주되 그 한계를 명시한 것이다. 취업 가점 혜택은 자녀 중에서도 1명만 받을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해당 특혜를 받을 자녀가 없다”고 맞받았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열사들은 대부분 대학생 시절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80%라 혜택받을 가족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가협 분석 결과 136명의 사망자 중 현재 30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경우는 1명에 불과했다. 136명 중 자녀가 있는 기혼자는 총 29명이었고, 이들 중 30세 이하 자녀가 있는 경우는 1명, 30세 이상 자녀가 있는 경우는 28명으로 집계됐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학 진학에서의 재정지원과 취업 가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20여명에 불과한 것이다. 유가협 관계자는 “부상자들의 자녀의 경우도 사망자들의 경우처럼 혜택을 볼 경우가 5~10명 가량으로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신분세습이라고 할 정도의 특혜 내용과 대상자 규모가 이 법안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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