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의 적' 미분방정식, 코로나 방역 정책에 쓰이네 [Science]

정희영 2022. 7. 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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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로켓 회수·핵연료 배치
과학기술 진보 이끄는 수학의 힘
미분 수리모델로 확진자 예측
머스크가 기획한 로켓 '팰컨9'
대서양 목표지점에서 회수
미분으로 속도·각 정확히 계산
한수원 핵연료 재배치 과정서
'외판원 문제' 활용해 경로 단축
확률·통계학자는 AI 공동연구
증시 주가변동 예측까지
수학의 응용 영역 계속 확대
허준이 교수 수학 분야 연구
IT·반도체 기술 응용될 수도
"미분이 뭔지 알아?" "적분 거꾸로 한 것" "그럼 적분은 뭐야?" "미분 거꾸로 한 것".

영화 '해바라기'의 유명한 대사다. 등장인물 희주는 미분과 적분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미적분을 비롯한 수학은 단지 '어려운 숫자놀음'이다.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전국의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와 문송(문과라서 죄송)한 사람들은 덧셈과 뺄셈을 넘어가면 머리가 아파진다. 대화에서 '미분'만 나와도 시선을 돌리게 된다. "수학은 대체 어디 쓰느냐"는 질문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화택 국민대 기계공학부 교수(책 '미적분의 쓸모' 저자)는 "미적분의 등장으로 인류는 멈춰 있는 상태를 넘어 변화를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영화 '해바라기'의 대사도 틀린 건 아니다"며 "한 상태에서 덧셈과 뺄셈이 반대를 의미하듯 미분과 적분은 변화하는 양에서 같은 관계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분은 변화하는 움직임을 잘게 쪼개 순간의 변화량을 측정한다. 적분은 이처럼 잘게 쪼갠 대상을 다시 합친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이게 어떻게 가능해?'라는 의문을 자아내는 기술에는 고도의 미적분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 우주항공기업 스페이스X의 팰컨9이 대표적이다. 스페이스X는 2015년 우주로 쏜 발사체를 다시 목표 지점에 정확히 세우는 형태로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각도와 속도 등이 계산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는 가속도와 각속도를 제어하는 미분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이 한 교수 설명이다.

2016년 4월 8일(현지시간)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스페이스X가 쏘아올린 로켓 팰컨9이 대서양 한가운데 설치된 무인 착륙 지점을 향해 내려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속도와 각속도를 제어하는 미분의 원리가 적용됐다. [로이터 = 연합뉴스]
한국 정부도 지난 6월 발사체 '누리호'를 통해 위성을 궤도로 올려놓은 데 이어, 발사체 재사용을 차세대 발사체 사업의 목표 중 하나로 두고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좀 더 생활 가까이에서 미분의 원리가 활용되는 사례로는 과속방지카메라가 있다. 도로에 일정한 간격으로 속도를 측정하는 기기를 둔다. 두 기기 사이의 거리를 0에 가깝게 좁힐수록 순간 속도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차량의 길이와 측정 오차 등을 고려해 간격이 유지된다.

그렇다면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술 가운데 적분을 활용한 사례는 없을까. 의료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컴퓨터단층촬영(CT)에 적분이 활용된다. 독일 물리학자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며 인체를 해부하지 않고도 뼈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X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미지는 평면, 2차원에 한정된다. 인체의 3차원 상태는 X선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의료용 CT는 환자를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뒤, 이를 통해 얻은 신체 내부의 정보를 기반으로 사진들을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적분이 사용된다.

한 교수는 "넓게 보면 수학의 응용 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학자들이 주식시장에 들어와 주가 변동을 예측하기도 하고,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조금씩 더 수치화·계량화를 요구하는 연구 방법들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방역정책을 수립하는 데도 수학이 활용되고 있다. 의료 체계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유행 규모와 중환자 발생 수준 등을 예측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수리모델링 태스크포스(TF)는 2020년 11월부터 '수리모델링으로 분석한 코로나19 유행예측' 자료를 주기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각 연구팀이 감염재생산지수 등의 변화에 따라 향후 유행 규모를 예측한 내용이 담긴다.

정은옥 코로나19 수리모델링TF 위원장(건국대 수학과 교수)은 "확진자 수와 변화율, 오미크론 변이, 각각의 치료제와 백신 등 자료를 기반으로 미분방정식을 이용해 미래의 유행 규모를 예측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과는 굉장히 잘 맞았던 적도 있고 맞지 않은 적도 있다"며 "상황이 심각해질 것으로 예측되면 방역정책에 변화가 생기고, 이로 인해 결과가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또 "어느 시점에 의료 시스템에 한계가 올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이에 대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의료 체계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수학의 산업적 응용인 '산업수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구소도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국가수리과학연구소(NIMS)다.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최적화 문제뿐 아니라 의료 현장, 공공 의제에 대해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곳이다. 김현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은 "허 교수처럼 순수수학을 하는 학자들은 고등과학원 등에서 수학 자체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한다. 우리는 사회적 문제나 산업과 관련되는 문제를 수학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수력원자력의 '핵연료 삽입체 재배치' 문제를 들었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주기적으로 핵연료와 연료 삽입체를 교체·재배치하는 계획예방정비를 시행한다. 이후 삽입체를 점검한 뒤 교체와 정비를 거쳐 다시 사용되기 위해 이동시키는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삽입체의 이동 거리가 짧을수록 안전 문제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NIMS 연구팀은 조합론 분야 최적화 문제인 '외판원 문제(Traveling Salesman Problem)'와 관련된 기법을 응용하고, 계산하기 복잡한 알고리즘을 재검토했다. 이를 통해 과거 작업자가 경험에 기반해 삽입체를 이동시켰을 때에 비해 경로를 약 40% 줄이는 성과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도시가스에서 의뢰한 '도시가스 사용량 예측' 문제도 NIMS를 거쳤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검침 오류·이상 가구를 판별하고 미래 사용량을 예측해 직접 검침하지 않은 가구에 대해서도 신뢰도 높게 사용량을 추정하자는 목적이었다.

연구진은 시간과 온도를 고려한 월별 사용 모델을 개발해 미래 사용량을 예측했다. 또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가구나 평균과 사용량이 동떨어진 가구 등 규칙을 기반으로 이상 데이터를 분류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이외에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 정확도를 높이는 작업 등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산업수학에서 다양한 수학 분야 연구자들 간 협업이 필수가 되는 추세다. 가령 인공지능(AI) 관련 연구를 해야 하면 AI 연구자뿐 아니라 통계·확률 연구자들도 참여하는 형태다.

김 소장은 "수학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기업에서 모두 수학자를 뽑기는 어렵다. 산업 현장에서 맞닥뜨린 문제가 수학적으로 적용이 가능한지 판단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에서 수학이라는 약한 고리를 우리가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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