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20만원 주는 데로 빨리 옮겼어야"..숙련공 떠나는 조선소
저임금·고용불안에 대거 이직
하청업체 대형화해 고용 안정화
재하도급 금지해 처우개선 필요
“다른 업종으로 가려고 진지하게 생각 중입니다. 매일 30kg씩 되는 자재를 몸으로 끌어올려가며 힘들게 일하는데 하루 일당이 12만원밖에 안 돼요. 기계 정비나 건설 쪽만 가도 하루 일당 20만원에 일도 수월하다는데, 더 빨리 나갔어야 할 걸 너무 오래 끌었다 싶습니다.”
10년 경력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김아무개씨(59)는 최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2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51일에 걸친 파업을 하고도 임금 추가 인상이 불가능해지자 ‘더 이상 조선소에 남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 2016년 상여금 가운데 400%가 기본급에 산입돼 최저임금 인상이 유명무실해졌고, 나머지 150%는 아예 삭감됐다. 그 후 올해 처음으로 300원 오른 시급 9670원을 받았지만, 지난달 일하던 하청업체마저 4대보험료를 체납하고 폐업하자 일자리를 옮길 채비를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은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수십년 차 기술직 월급이 200여만원밖에 안 되는 낮은 임금 수준, 임금 체불, 사회보험료 체납, 소규모 하청업체의 잦은 폐업, 하청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제한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2016년 조선업 불황으로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노동 처우가 열악해진 하청 노동자들은 수년이 지나도 여건이 개선되지 않자 일터를 떠나기 시작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하청의 기능직 노동자는 2014년 13만975명에서 지난 5월 4만8303명으로 8만2천여명(63.1%) 줄었다. 이는 같은 기간 원청 기능직 노동자가 3만7251명에서 2만2468명으로 1만4700여명(39.7%)가량 줄어든 것보다 훨씬 큰 규모다.
이 때문에 조선업 구인난을 해결하기 위한 ‘종사자 보호책’을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협상력 없는 소규모 업체들이 난립하면 원청은 기성금(발주자가 공정률에 따라 나눠 지급하는 금액)을 낮추기가 유리하다. 반면 하청업체는 낮은 기성금 안에서 이윤을 내기 위해 재하도급을 주고 소속 노동자 처우 개선은 뒷전으로 미룬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처우 개선과 고용 불안 개선의 첫 단추는 폐업이 잦은 소규모 하청업체를 대형화하고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것인데, 건설업처럼 조선업도 이런 내용을 담은 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청노동자가 원·하청 사용자와 ‘공동 교섭’하는 구조도 필요하다. 원청 조선소 안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가 혼재돼 일하는 조선업 현장 특성상, 임금과 휴가 등 하청노동자의 핵심 노동조건을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업체가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원 판례는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를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사용자’로 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원청 사용자가 하청노동자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우조선해양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용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수십년 누적된 원·하청 공동교섭 문제를 이제 국회가 넘겨받아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계기로 조선업 원-하청 노동자의 임금·처우 격차 해소 방안 검토에 나섰다. 이정식 장관은 이날 열린 전국 기관장 회의 모두발언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파업에 대해 “우리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인한 근본적 문제들을 되돌아보고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깨닫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어 “다단계 하도급 문제 해결, 원·하청 상생방안 마련 등 구조적 과제는 경사노위 등을 통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현재 각 국실별로 조선업 원·하청 노동자 격차 해소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19일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점거 현장을 찾아 “구조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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