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바)퀴벌레" 정규직 모욕이 더 아팠다, 대우조선 트라우마
조선하청지회 51일 파업 31일 점거농성
원청 노동자 연장·휴일근로 수당 줄어
오픈 채팅방서 하청노동자들 비하·비난
점거농성 현장에선 천막 찢고 폭력 행사
원청지회 "주로 생산 책임진 현장관리자"
지난 2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51일 파업과 31일 점거농성이 끝났다. 원·하청 사쪽의 고압적인 협상 태도에 정부의 ‘공권력 투입’ 압박까지 더해져 긴장감이 한껏 고조된 파업 현장이었지만, 정작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은 그보다 원청 노동자들의 ‘폭력’에 더 큰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24일 ‘대우조선해양을 지키는 모임’이라는 ‘오픈 채팅방’에 파업 기간에 올라왔던 글들을 보면, 일부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은 하청노동자들을 ‘하퀴벌레’(하청+바퀴벌레)라 부르며 맹비난했다. 조선하청지회의 파업으로 일부 공정의 생산이 중단되고, 그만큼 연장·휴일근로를 할 수 없게 돼 임금 손실 등이 발생하자 이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대우조선 생산직으로는 4800여명의 원청 정규직 노동자와 1만1천여명의 하청노동자가 일한다.
얼린 생수병 던지고, 농성장에 자전거 던지고
지난달 2일부터 조선하청지회는 조합원들이 근무하는 공정을 중심으로 일손을 놓기 시작했다. 조선소 내부에 거점 8곳을 정해, 하청노동자들에게 함께 일손을 놓자고 호소했다. 하청업체들은 이를 “작업방해”라고 주장하지만, 조선하청지회는 목적·수단·절차가 적법한 쟁의행위라고 맞받는다. 일부 공정이 멈추고, 지난달 22일부터 제 1도크(배 만드는 작업장)에서 ‘끝장 농성’이 시작되자, 정규직 직·반장 등 중간관리자로 구성된 ‘현장 직반장 책임자 연합회’나 ‘민주노동자협의회’ 등을 중심으로 ‘린치’가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 8일 조선하청지회가 농성 중인 천막을 찾아와 커터칼로 찢고 부수거나, 농성 물품 등을 내다 버렸다. 얼린 생수병을 하청노동자에게 던지거나, 농성 중인 도크로 자전거를 집어 던지려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하청노동자들이 다쳤다.
28년 차 하청업체 도장공 이아무개(51)씨는 “일부 직영(정규직 노동자) 100여명이 농성 천막에 찾아와 욕설하고 물리적으로 위협했다. 도장공 중엔 연세가 많은 여성노동자도 있는데 예외가 없었다”며 “거점에서 계속 밀리다 보니 건조 중인 배를 잡자(점거하자)는 방안을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27년 차 하청업체 곡직(선체 부재를 치수대로 구부리는 작업)공인 김기성(52)씨는 “특히 현장책임자연대가 침탈을 너무 많이 해서 농성 천막을 두 번 세 번 또 짓고 그랬다”며 “사람을 질질 끌어내고 그래서 허리 쪽 뼈 두 군데가 골절된 여성 동지도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하청 비난집회 간다고 조퇴하면 ‘유급 처리’
일부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자들은 앞장서서 농성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옥포조선소의 도크 점거 현장을 방문했을 때, 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찰)청장 방문이 아니라 경찰을 투입하라’ ‘불법파업, 우리 자녀들에게 부끄러운 행동입니다’ 등 피켓 시위를 하기도 했다.
원청 노조가 지난 21일 끝내 금속노조 탈퇴안(산별노조 탈퇴, 기업별 노조 전환)을 총회 찬반 투표에 부치고 양쪽의 갈등으로 다음 달 8일 법원 결정 때까지 개표가 중단된 것도 이런 현장의 갈등이 응축된 결과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원청지회) 관계자는 “하청 노동자 파업에 부정적인 일부 원청 노동자들이 익명 카카오톡방을 열어 원색적인 비난을 하거나 현수막을 찢는 등의 행위가 있었다”며 “주로 생산 책임이 있는 현장관리자들이 맞불집회 등에 동원돼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원청지회는 처음부터 노노 갈등은 안 된다는 입장을 조합원들에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원청 노동자들의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사쪽이 용인한 정황도 있다. 대우조선은 파업 때문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하청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예정하면서도, 원청노동자들이 하청노동자들을 비난하는 집회를 연다는 명목으로 ‘조퇴’를 할 때 이를 모두 유급처리했다.
대우조선 원청은 조선하청지회 간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도 한다. <한겨레>가 지난 19~22일 옥포조선소에서 취재하는 동안, 대우조선 보안경비 외주 업체인 ‘에스텍’ 직원이 김형수 지회장을 따라다녔고, 김 지회장이 멈추면 휴대전화로 보고했다.
이에 대해 대우조선 쪽은 “김 지회장이 예전에 대우조선 시설을 점거한 적이 있어서, 이를 예방할 목적으로 따라다니는 것일 뿐 위법한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서 삼성 임직원들은 노조 와해를 목적으로 조합원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이를 기록했다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거제/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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