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내부 의사결정은 면밀하게, 결정한 거래는 확실하게[LAW Inside]

2022. 7. 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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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
이진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jinwoo.lee@bkl.co.kr
이 기사는 07월 22일 09:4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내부적 준법경영 의무의 강화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강조되고, 기업 내부의 컴플라이언스 체제를 보다 면밀하게 구축·운용해야 하며, 공시의무의 범위가 확대되는 등 기업의 경영진에 대한 요구가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다. 

일본 동경지방재판소는 최근 후쿠시마제1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를 둘러싼 주주대표소송에서 주주측의 주장을 인정해 당시 경영진 4명에게 회사에 대하여 총 약 13조엔의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근래 사외이사 등 회사의 상무에 종사하지 않는 이사도 대표이사, 사내이사와 동일한 감시의무를 부담한다고 판결하였고(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다279347 판결), 대표이사는 회사의 운영 과정에서 문제될 수 있는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활용하여 적극적인 감시 활동을 이행해야 한다고 판시(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17다222368 판결)하는 등 기업 내부에서 적법 경영에 대한 경영진의 법적 의무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이렇게 회사 내부에서의 의사결정과 그 실행 과정에서의 적법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강제적인 절차로서 법은 예컨대 영업의 중요한 일부를 양도하려면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하고, 중요한 자산의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은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한다. 또한 정관이나 이사회규정 같은 사규로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 사항을 정할 수도 있다. 나아가 법에 명확하게 써 있지는 않지만, 대표이사는 당연히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외부적 거래비용의 최소화
우리 회사 내부에서 위와 같은 준법경영의 여러 요구와 절차적 요구를 준수해서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실행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우리 회사와 거래하는 상대 회사에서도 잘 하고 있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면, 거래비용이 과도하게 증가할 것이다.

물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가령 영업양도처럼 상법에서 주주총회의 결의를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서 이를 결여한 경우에는 상대 회사가 이를 알았건 몰랐건 간에 해당 거래(영업양도계약이나 이에 준하는 영업자산의 양도)는 무효로 본다(대법원 2012. 4. 12. 선고 2011다106143 판결). 주주총회 결의는 사업의 근간에 관련되는 정말 중요한 사항들에 대해서 요구되는만큼 이를 결여한 경우에 거래상대방이 이를 몰랐다는 이유로 보호하면서까지 회사의 이익을 침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경우에는 어떨까. 최근 대법원은 기존의 입장을 변경했다.
회사의 이사회 규정에 '다액의 보증행위'를 이사회 부의사항으로 정하고 있음에도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채 회사 명의의 보증을 했는데, 자금대여자가 해당 회사에게 보증채무의 이행을 구하자 해당 회사는 위 보증행위는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맞섰다. 

이런 경우 기존의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거래상대방 즉 자금대여자가 보증을 한 회사에서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악의 또는 과실) 보증행위를 무효라고 보았다. 그런데 금번에 대법원은 거래상대방이 이사회 결의가 없었음을 알았거나 몰랐던 데에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악의 또는 중과실)에만 보증행위가 무효가 된다고 보아 기존의 입장을 변경했다. 그러면서 여기서의 중과실이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이사회 결의가 없음을 알 수 있었는데도 만연히 이사회 결의가 있었다고 믿음으로써 거래통념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하는 것으로, 거의 고의에 가까운 정도로 주의를 게을리하여 공평의 관점에서 제3자를 구태여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고 했다(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5다45451 전원합의체 판결). 금번 대법원 판결은 입장 변경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법률은 다른 조건이 같다면 가급적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정되고 해석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어떤 사태에 대한 위험은 그 위험을 좀 더 쉽게 예견하고 좀 더 적은 비용으로 회피할 수 있는 쪽이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회사법은 주주, 이사, 채권자 등 이해당사자들 간의 이해를 적절하게 조정하고 시장에서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중략)… 이사회가 잘 운영되도록 하는 것은 회사 내부의 문제인데, 이사회 기능이 작동하지 못한 위험을 상대방에게 전가할 수 있다면 회사로서는 이사회를 제대로 운영해야 할 유인이 줄어든다 …(중략)… 따라서 회사 이사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서 대표이사가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도 이를 게을리한 경우에, 그 위험을 거래상대방에게 전가시키는 방법으로 회사를 보호하기보다는 회사가 그 위험을 부담하되 회사의 손해는 대표이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등의 방법으로 전보받도록 하는 것이 이사회 권한의 강화 또는 이사회 역할의 정상화라는 관점에서도 바람직하다. 이렇게 할 때 회사도 이사회가 의사결정기관이자 대표이사의 업무집행을 감독하는 기관으로 본래의 기능을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기업 내부의 적법경영에의 의무의 수준은 높이되, 기업 간의 거래에 있어서는 과도한 거래비용이 발생하지 않게끔 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법적 규율의 균형을 잡아 나가고 있다는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관련 문제 : 대표권 남용
이와 관련해 대표이사가 회사 내부의 이사회 결의 등은 모두 거쳤으되 주관적으로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로써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경우라면 어떨까. 예컨대 대표이사가 자기의 친지에게 회사의 재산을 저렴하게 양도하는 것과 같은 행위로, 이른바 대표권 남용의 문제라고 부른다. 이 경우 대법원은 일관되지는 않으나 대체로 '설령 대표이사가 회사의 영리목적과 관계 없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그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일단 회사의 행위로서 유효하고, 다만 그 행위의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진의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무효'라고 한다(대법원 2013. 7. 11. 선고 2013다16473 판결 등).

다시 말해, 거래상대방으로 하여금 대표이사의 진의를 확인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인데, 이사회 결의 등의 절차적 요건을 모두 갖추었음에도 대표이사 내심의 의도에 문제가 있는지를 거래상대방에게 조사하라고 하는 것은 거래비용의 과도한 증가를 초래하여 바람직하지 않다. 차제에 이 부분 판례도 가다듬어지기를 바란다. 참고로 2020년 시행된 개정 일본 민법은 대리권 남용에 관한 조문을 신설해서 '거래상대방이 대리인의 남용적 목적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이를 무권대리로 간주한다'고 하였는데(제107조), 개정 논의의 중간시안에서는 '중과실'로 하는 안이 채용되었다고 한다. 중간시안이 타당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여하튼, 현재 판례의 흐름은 각 회사에서 내부적인 컴플라이언스를 잘 챙겨야 한다는 것이고, 경영진의 책임은 엄격하게 묻되 일단 성사된 외부적 거래는 돌이키기 어렵다는 방향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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