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4 동맹은 제2의 사드 보복을 부를까?
■ 과기·산업 장관들 "칩4, 다른 산업에 영향 미칠 수 있어"
미국이 우리나라와 타이완, 일본을 포함한 네 나라가 가입하는 '칩(Chip) 4 동맹'을 요청했습니다.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종호 과학기술부 장관에게 기자들이 칩4에 대한 생각을 물었고 장관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중국에 다녀온 기업체 임원과도 통화하고 고민했는데, 결국 국가 이익에 부합되도록 해야하는 부분입니다. 반도체에 국한된 이야기이긴 하나, 어느 쪽을 선택했을 때 반도체 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도움도움되는가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튿날 이창양 산업부장관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다른 산업에도 칩4가 어떤 영향을 미칠 건지 신중하게 보겠다"는 것입니다.
반도체 동맹 이야기를 하는데 왜 다른 산업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요? 여기에는 공급자가 우위인 반도체 시장의 사정이 있습니다.
■ D램·파운드리에서 밀린 중국, 반도체로는 맞대응 어려워
'칩4 동맹'은 아직 실체가 분명치 않습니다. "미국이 제안을 했고 우리나라가 고민하고 있다", "미국의 기술과 장비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와 타이완의 생산시설과 일본의 소재 등을 결합해 안정적 공급망을 추구한다"는 정도가 추측되는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체 반도체 수출 가운데 60%가 홍콩을 포함한 중국으로 향합니다. 칩4에 반도체 가치사슬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내용이 담겨있을 수 있기에, 중국이 한국산 반도체 수입 제한으로 맞서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1분기 세계D램 시장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69.8%에 이릅니다. 여기에 3위 마이크론까지 합치면 95.6%가 우리나라와 미국의 단 세 개 업체에서 만들어집니다. 중국으로서는 D램에 대한 수입제한을 했다가는 IT제품 필수 부품인 D램 수급이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파운드리, 즉 시스템반도체 수탁생산 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이완의 TSMC 점유율이 53.6%. 여기에 2위 삼성과 3위 타이완의 UMC, 4위 미국의 글로벌 파운드리를 합치면 82.7%가 타이완, 우리나라, 미국 세 나라에서 만들어집니다. 중국 업체는 5.6% 점유율의 SMIC 등으로 비중이 높지 않습니다.
중국이 만약 한국 등 칩4 국가로부터의 반도체 수입을 막는다면 자국에 필요한 반도체를 수급하기 어렵게 될겁니다. 하지만 중국에 보복 수단이 없지 않습니다.
■'사드 보복'처럼 무관한 산업 분야로 보복할까?
중국은 과거에도 우리 경제에 강한 타격을 준 조치를 실행한 바가 있습니다. 바로 '사드 보복'으로 불린 한한령(限韓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콘텐츠나 우리나라 연예인의 광고 송출을 막았고,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광범위한 불매 운동과 관광 축소도 있었습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당시 피해가 연간 8조 5천억 원(현대경제연구원)에 이를 거라는 분석도 나왔을 정도입니다. 중국에서 유통업을 하던 롯데 그룹의 피해도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베이징 현대차의 지난해 중국내 판매량은 2016년에 비해 66% 줄기도 했습니다.
다만 중국이 다른 산업으로 보복을 한다고 해도 그럴 수 있는 분야는 과거보다는 많이 줄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 중국 수출에서 중간재 수출비중은 2012년 72.6%에서 2021년 79.6%로 높아졌습니다. 중간재는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되는 제품이 아니고 소재와 부품 수급을 위해 중국 산업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입니다. 불매운동의 대상이 될만한 소비재 품목 수출은 이미 타격을 입을대로 입은만큼 중국이 새로 타격을 줄 선택지도 줄어든 것입니다.
■ 中 "개방성 유지해야..차별은 안 돼"
상대적으로 신중한 우리와 달리 중국은 연일 강한 어조로 칩4 참여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즈는 22일자 기사에서 "중국이 오해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외교를 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한 뒤, "윤 대통령의 이런 신중함은 한국이 맹목적으로 미국의 대중국 기술 견제에 참여할 경우 입을 강한 타격을 감안한 계산 때문으로 관측통은 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SK하이닉스가 다롄에 웨이퍼 생산 거점을 신설할 계획인 가운데 SK D램의 45%가 장수성 우시에서 생산되고 있고, 삼성의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40% 이상이 시안 공장에서 생산되는 등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협력은 분리가 불가능하다면서 자신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IPEF 출범시에 보였던 중국의 자신감과 일맥 상통합니다.
수줴팅 중국 상무부 대변인도 칩4에 대해 "어떠한 협력 틀을 마련함에서도 포용성과 개방성을 유지해야지 타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문언상으로는 칩4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가입하지 않은 국가, 즉 중국에 대한 차별에 더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IPEF 출범 때와 비슷하게 중국은 '내용을 지켜보자'는 입장으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 반도체 대중 견제로 반사이익도 본 업계... 정부 '고심'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가 미중 갈등으로 손해만 본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과 장비 수출을 막으면서 중국 반도체 산업의 추격이 느려졌고 우리 업계는 일종의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사 이익에 대한 비용 청구서가 칩4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날아온 셈입니다.
칩4동맹에 대해 말은 많지만 동맹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미지수입니다. 동맹 가입 여부부터 어떤 내용으로 참여할지를 놓고 외교, 통상 당국은 고심하고 있습니다.
박대기 기자 (wait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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