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백악관 '연봉까지 공개' vs 대통령실 '이름도 비공개'

남승모 기자 2022. 7. 2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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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가 된 청와대, 그 중에서도 기자들의 업무 공간이었던 춘추관은 제게는 남다른 곳입니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과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이렇게 두 번 그곳에서 일했습니다. 보수-진보 정권 청와대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자로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말기였던 이명박 정부 때는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는 장면을 직접 옆에서 지켜봤고,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인수위 없이 정부를 출범시켰던 청와대 사람들처럼 저 역시 뭔가 준비할 겨를 없이 곧바로 춘추관에 짐을 풀었습니다.

춘추관 2층에는 브리핑 룸이 있습니다. 1백여 명은 족히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규모로 50석이 채 안되는 백악관 브리핑 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절 세워진 영향이 아닐까 합니다. 이 브리핑 룸 연단 뒤쪽에 청와대 본관으로 통하는 문이 있습니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 때까지는 이 문을 통해 언제든 비서동에 출입하며 청와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출입 시간이 일부 제한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사실상 출입이 막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기자들 사이에선 무늬만 '청와대 출입기자'이지 사실상 '춘추관 출입기자'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청와대 내부 행사 취재를 위해 들어가는 경우는 있지만 개별적인 취재로는 출입이 불가능했습니다.

막힌 문…폐쇄성이 만드는 폐해들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보니 당연히 비서실에 누가 근무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제가 출입하는 동안에는 홍보수석실 혹은 국민소통수석실을 통해 비서관급 이상 고위직에 한해 이름과 직책,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실무자인 행정관들은 과거 정당 출입 때 알던 인맥이나 이런 저런 취재를 통해 알음알음 재주껏(?) 파악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어디서 일하는지, 그 사람 연락처가 뭔지 그 자체가 일종의 취재력을 판가름하는 잣대였던 셈입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더욱 까다로워졌다고 하는데, 비서관급 이상은 전처럼 언론에 발표를 하긴 하지만 연락처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행정관을 공개하지 않는 건 물론입니다. '행정관' 하면 감이 잘 안 오실 수 있는데, 2급부터 5급까지가 행정관입니다. 선임행정관의 경우 2급(이사관)으로, 일반 정부 부처 국장이나 부장검사, 경찰 치안감에 해당합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청와대 행정관이 지방에 내려가면 군수가 직접 영접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뜩이나 구중궁궐이라 불릴 만큼 폐쇄적인데다 일하는 사람마저 비공개로 하다 보니 말이 말을 만드는 부작용이 적지 않았습니다. 전에 정당을 출입하던 때 여권 고위관계자에게서 청와대 내부 동향을 듣고 종종 다른 고위인사에게 확인 취재 차 "청와대 기류가 이런 저런 상황이라면서요?"라고 물으면, "누구의 청와대?, ○○○의 청와대, 아니면 △△△의 청와대?"하고 되묻곤 했습니다. 특정인의 전언에만 의존해야 하는 취재 환경이 청와대 내부의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만들었던 건 아닐까요?

모든 직원 연봉까지 공개하는 미 백악관

이런 것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던 한국에서 취재를 하다 특파원으로 미국에 온 뒤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색다른 보고서를 접했습니다. 제가 찾은 건 아니고 누구에게나 공개되는 건데 한 번 확인해보라고 전달 받고 찾아봤습니다. 백악관이 해마다 의회에 제출하는 직원 보고서로 (2022 Annual Report to Congress on White House Staff) 백악관 전체 직원의 이름과 채용 형태 (채용인지, 파견인지), 연봉, 직책까지 모두 적혀 있었습니다.

해마다 작성하기 때문에 직원 수와 급여 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올해 발표 직후 미국 언론들은 1년 전 560명이던 직원 수가 86명 줄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1995년, 의회가 전 직원의 연봉을 공개하라고 백악관에 요구한 뒤 매년 보고서를 제출해오고 있는데 지난 2009년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는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도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악관 측에서 자료를 공개하면서 주로 강조한 건 인적 구성의 다양성이었습니다. 인종이 다양한 미국이다 보니 전체 미국 인구의 구성 보다 더 다양성이 높게 구성 됐다거나 여성 비율이 전체 인구 성비보다 높다는 식의 언급이 많았습니다. 참고로 올해 발표된 보고서에서 백악관 내 여성 비율은 58%로 50.5%인 전체 인구 중 여성 비율보다 높았습니다. 윤석열 정부 초기 내각 구성 때 여성 장관 비율이 낮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대통령실 인적 구성까지 공개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미국 백악관의 직원 명단 공개에 대해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 면서 "혹시라도 의회에서 결정을 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그게 아닌 상황에서 저희가 먼저 '그렇게 해야겠다', '말아야겠다' 말하는 건 선후가 바뀐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정부 부처의 경우 대부분 홈페이지를 통해 직원 검색이나 업무 담당자 검색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데 반해 유독 청와대만 직원 공개를 하고 있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언론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그런 것들이 사회여론으로 만들어지면 제도가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명단 공개가 가져올 수 있는 변화

대통령실은 최근 대통령 지인의 아들 채용 논란으로 시끄러운 모습입니다. 이런 사적 채용 논란과 직원 명단 공개가 직결된 건 아닙니다. 다만, 누가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공개한다면, 대통령실 스스로 채용 초기부터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사람은 걸러내려 할 겁니다. 명단 공개가 채용의 공정성을 확보해줄 수는 없지만 언론과 일반 대중에 의한 사후 검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실 스스로 더욱 조심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는 충분합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이야기했듯이 중요한 건 여론이고 또 여론을 제도로 구현하는 국회의 역할입니다. 더 이상 대통령실이 '궁궐'이나 '용궁'이란 소리를 듣지 않도록 보다 개방된, 그래서 국민의 소리를 더 잘 듣고 또 반대로 국민이 직접 대통령실이 어떤 사람들 손에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들여다 볼 수 있는 투명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불필요한 논란도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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