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생 성폭행사망] '여대생'..피해자가 전시되는 제목, 바꿀 수 없나

김양원 2022. 7. 25. 12: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열린라디오 YTN]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2년 7월 23일 (토요일)

■ 진행 : 김양원 PD

■ 대담 : 윤복실 박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하대생 성폭행사망] '여대생'..피해자가 전시되는 제목, 바꿀 수 없나

- 피해자 발견 당시 상황 '알몸', '여대생' 제목..선정적이고 성차별적

- 상업성과 공적가치가 충돌하는 디지털 저널리즘의 양면성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 김양원 PD(이하 김양원)> 한 주간 뉴스를 꼭꼭 씹어보는 시간, 미디어 비평입니다. 오늘은 미디어 문화연구자 윤복실 박사와 함께 합니다. 윤박사님 어서오세요.

◆ 윤복실 박사(이하 윤복실)> 네 안녕하세요.

◇ 김양원> 이번 한주 뉴스들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학생이 성폭행을 당한 뒤 숨진 사건이 있었죠. 다른 곳도 아니고 학내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충격에 빠졌는데요. 윤박사님, 오늘은 이 사건 보도 짚어주신다고요?

◆ 윤복실> 네, 미투 보도 이후 그래도 우리 언론의 젠더 감수성이 많이 높아졌을 것이란 기대가 많았는데요, 이번 인하대생 사망사건과 관련한 보도가, 그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습니다.. 선정적인 헤드라인과 자극적이고 성차별적인 표현이 많았습니다.

◇ 김양원> 좀 구체적으로 짚어볼까요? 지난 7월 15일 사건이 발생하고, 언론이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는데, 이 기사가 온라인 상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제목부터가 문제다, 란 지적이 나왔어요.

◆ 윤복실> 네. 그렇습니다. 제일 먼저 이 사건을 보도한 매체는 통신사인 연합뉴스였는데요, '인하대서 여성 옷 벗은 채 피 흘리고 쓰려져... 경찰수사'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 제목 자체가 문제가 참 많은 것인데,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언론사에서 그대로 따라쓰기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에서 사건이 보도된 뒤에 다수의 언론에서 '옷 벗은 채', '탈의한', '나체로' 등 피해자가 발견된 당시 상황을 선정적으로 묘사한 제목의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연합뉴스는 이후 "옷 벗은 채"라는 표현을 삭제했습니다.

◇ 김양원> 그나마 연합뉴스는 '여성'이라고 제목을 달았는데, 다른 언론에선 '알몸의 여대생'이라는 표현이 들어가기도 했죠?

◆ 윤복실> 네, 다수의 매체가 '여대생'이라는 표현을 무척 많이 제목에 사용했는데요, 기사 제목에는 없더라도 기사 본문에 '여대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매체는 무척 많았습니다. 아시겠지만 직업 앞에 '여'를 붙이는 것은 해당 직업군의 표준이 남성이며 여성은 특수한 존재라는 식의 전제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교사, 여기자, 여대생 등의 표현은 지양되어야 할 차별적 표현입니다.

법무부는 지난 2월에 인권·젠더 데스크를 설치하고 인권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위한 홍보물 등 제작 배포 가이드라인을 시행한다고 밝혔는데요. 이 가이드라인에는 인권 보호와 성범죄 피해자 보호 관련 조항이 두루 담겨져 있습니다. 또 성범죄 보도 홍보물 사전 체크리스트도 있는데요. '○○녀', '꽃뱀' 등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만한 정보는 없었는가, 성범죄 발생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는가 등 13개 점검 사항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가이드라인은 많은 기자 분들이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김양원> 그래서 언론 시민단체가 보도 당일 이런 문제를 지적했던데요?

◆ 윤복실> 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이 문제를 사건 보도가 이루어진 당일, 7월 15일 오후 3시 기준으로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된 인하대 사망 사고 관련 뉴스를 전수 분석했는데요, 분석 결과, 발견 당시 상황에 대해 구체적, 선정적 표현을 제목에 가장 많이 쓴 언론은 유감스럽게도 YTN으로 밝혀졌습니다. 해당 표현을 제목에 쓰진 않았지만 사진 기사를 24건 보도한 뉴시스를 제외하고 관련 보도를 가장 많이 한 언론은 각 4건을 보도한 YTN‧SBS였는데, YTN은 4건 중 3건에서 '나체로', '알몸으로' 등의 표현을 제목에 사용했다고 하죠.

빅카인즈에서 7월 15일부터 7월 19일까지 인하대를 키워드로 검색했는데, 600여건의 기사가 생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키워드 순위를 보면 '성폭행'이 203회로 압도적으로 많았고요. 그 다음이 준강간치사혐의, 그 다음 순위가 피해자 순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인하대와 관련한 보도를 가장 많이 생산한 매체는 세계일보로 55건으로 확인되고요, YTN은 50건으로 그 다음 순으로 확인되었습니다. YTN의 기사에는 유독 '단독'을 내세운 기사가 많은 것도 특징이었습니다.

◇ 김양원> YTN은 이후 보도에서는 이런 의견을 반영하고 시정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건보도에서도 젠더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세요.

◆ 윤복실> 그렇습니다. 선정적이거나 성차별적인 기사제목은 보도윤리 위반입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 보도준칙에 따르면 '범죄·폭력·동물학대 등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행위를 보도할 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저속하게 다뤄서도 안 됩니다. 따라서 사건 발생을 알리고자 한 의도였다 하더라도 '나체로', '알몸으로' 등의 선정적이고 불필요한 묘사는 보도윤리에 어긋나는 것이죠. 한국기자협회의 '성폭력, 성희롱 사건 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 요강'에도 가이드 라인이 있는데요. 언론은 성폭력‧성희롱 사건의 가해방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하고 특히 피해자를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 김양원> 이번 사건 보도의 심각성을 느낀 한 누리꾼이 SNS에서 이 사건 기사의 제목을 언론사별로 어떻게 뽑았는지 비교하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 윤복실> 각 언론사의 헤드라인만을 뽑아서 비교하는 글을 올렸는데, 이 누리꾼은 유일하게 한겨레 기사의 제목만이 보도 윤리를 어기지 않았다고 하며 한겨레의 보도를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한겨레 콘텐츠총괄 정은주 기자가 "선정적·성차별적 제목, 고백합니다". 라는 칼럼을 통해 원래 처음 한겨레 신문의 보도가 연합뉴스와 다를 바 없음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편집자가 한겨레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을 지킴으로써 타 언론과 달라질 수 있었음을 고백했습니다. 바로 게이트 키핑의 중요성을 알린 것이죠.

◇ 김양원> 그렇다면, 다른 언론사의 게이트 키핑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군요?

◆ 윤복실> 잘 아시겠지만, 언론사의 기자가 기사를 쓴다고 해서 바로 보도되는 것이 아닙니다. 편집자와 부장 등이 일선 기자가 생산한 기사를 검토하는 과정, 즉 게이트 키핑을 거칩니다. 따라서 젠더 관점의 게이트 키핑이 작동했다면 이러한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 김양원> 언론사내에 젠더 감수성이 뿌리내리지 않았다... 이렇게 볼 수 있을까요?

◆ 윤복실> 네, 맞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젠더 감수성이 낮은 것이 문제인 것이죠. 지금으로부터 한 5년전 '미투운동'이 한국 사회에 부상했었죠, 그 당시 학계에서 한국의 언론사의 낮은 젠더 감수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그때 저도 미투 보도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편집국장을 비롯한 현장 기자 14명을 인터뷰하는 연구를 수행했는데, 인터뷰에서 언론인들은 '미투'와 '미투' 뉴스가 언론사 내부의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가 어느 정도 개선되는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보도의 측면에서 '미투'가 우리 사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주요 '아젠다'로 다뤄지지 못하고 '사건'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의 젠더 감수성이 무감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연구 결과, '미투' 와 관련한 젠더 뉴스는 새로운 것, 더 충격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으면 뉴스 아이템으로 다뤄질 수 없는 한계에 상황에 놓인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낮은 젠더 감수성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특히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미디어의 출현이 젠더 보도에 관련해서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 김양원> 저는 요즘의 언론환경 탓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대부분 온라인 기사를 통해 먼저 보도되고, 조회 수가 얼마나 나왔냐가 언론사로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문제도 있거든요.

◆ 윤복실> 그렇습니다. 언론사의 수익이 클릭 수에 달렸기 때문에 더 선정적이고, 피해자가 전시되는 제목이 나오는...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많은 언론사에서 클릭을 유도하는 기사의 제목을 생산하고 그에 따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이나 기사를 생산하는 것인데요, 한 마디로 상업적인 가치와 공적 가치의 함께 지니는 저널리즘의 양면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인터넷이 탄생하고 디지털 저널리즘 생태계가 진화하면서 더욱 심각해진 것에 있습니다. 홍남희 박사는 '소셜 미디어 시대 여론 극화와 상품으로써 젠더 뉴스'라는 최근 연구'에서 디지털 저널리즘의 발전 과정에서 젠더 뉴스가 '클릭 유발' 콘텐츠'이자 독성화의 주요한 수단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 김양원> 디지털 저널리즘이 상업적가치와 공적가치를 동시에 지니는 양면성을 가진다, 특히 젠더 뉴스는 클릭 수를 유발하는 콘텐츠이다....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은데요. 이번 대학생 사망 사건의 경우 2차 가해와 함께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신상털기도 심각하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죠?

◆ 윤복실> 네, 2차가해와 신상털기가 잇따르는 끊임없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데요. 이미 인터넷에서는 숨진 인하대 학생의 신상정보는 물론 가해자의 신상정보가 유출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가해자의 이름과 사진, 초등학교 시절에 받은 표창장까지 낱낱이 유출된 상황입니다. 그뿐 아니라 가해자와 그 부모에 대한 직업까지 유출이 된 상태입니다. 그에 따라 2차 가해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 김양원> 사건보도이다 보니, 사건의 피해상황과 정황을 보도하게 되고, 특히 이렇게 남성 가해자, 여성 피해자 구도의 젠더 보도.... 보도하면 할수록 성차별이나 2차가해의 부작용도 나타나는데요, 어떻게 보도해야할까요?

◆ 윤복실> 지난 7월 19일자 YTN의 보도를 그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단독]으로 "인하대 동급생 성폭행범 불법촬영 시도 정황.."제대로 촬영 안 돼" 라는 제목의 기사가 생산됐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전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참으로 자극적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존의 저널리즘 원칙입니다. 기존의 저널리즘 원칙은 육하원칙에 따른 객관주의, 중립적인 보도를 중시합니다. 하지만 예시로 든 기사의 제목처럼, 젠더와 관련된 보도에 있어서는 상충되는 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젠더 보도와 관련해서 객관적인 보도가 무엇인지? 육하원칙에 의한 보도는 올바른 것인지? 과연 '젠더와 관련한 보도에서 중립적 기사는 정말 중립적인 것인지 함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습니다.

◇ 김양원> 저는 이번 사건명에 학교 이름이 계속 들어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반드시 특정 학교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이 중요한 것일까, 우리가 경악하는 것은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사건보도의 원칙과 젠더 보도의 중립주의가 어쩌면 상충하기도 하는 이런 상황 조속히 어떤 기준을 언론과 전문가들이 찾는 과정이 필요해보입니다. 지금까지 문화연구자 윤복실 박사와 말씀 나눴습니다. 고맙습니다.

◆ 윤복실> 감사합니다.

YTN 김양원 (kimyw@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