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눈으로 직접 본 중앙아 국가들, 러와 거리두기

강영진 2022. 7. 2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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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우크라 침공 지지 단 한 나라도 없어
서방 제재에도 일부 동참하는 움직임
러 통한 석유수출 차단되는 등 위협 느껴
"우리가 우크라 다음 차례?"…미 틈새 공략중

[AP=뉴시스 자료사진]왼쪽부터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세르다르 베르디묵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6월 29일 투르크메니스탄 아슈가바트에서 열린 카스피해 연안국 정상회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6.29.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연초 카자흐스탄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러시아가 2000여명을 파병해 진압을 도왔다. 6주 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카자흐스탄이 보답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은 인근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중립을 지킴으로써 전쟁을 지지한 나라는 옛 소련 공화국 가운데 벨라루스 한 곳 뿐이었다.

오히려 서방에 대한 석유수출을 늘려 서방의 대러 제재를 도왔고 국방비를 늘리고 미국 대표단을 받아들여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미국 노력의 중심국이 됐다.

이와 관련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이 예기치 않게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뒤 수십년 동안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군사 및 경제 지원을 하면서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그중 서유럽보다 면적이 넓고 석유 부국인 카자흐스탄이 가장 큰 초점이었다.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국경은 7644km에 달해 미국-캐나다 국경에 이어 두번째로 길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본 카자흐스탄은 러시아를 중시하는 외교정책을 재고하면서 미국, 튀르키예(터키), 중국 등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달 푸틴이 주재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 회의에 참석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카자흐가 러시아 지원 우크라이나 동부 공화국 2곳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패널 사회자가 서방의 압력을 받느냐고 질문하자 강력히 부인했다.

방문 동안 토카예프 대통령은 러시아 국영TV에서 카자흐가 러시아의 제재 위반을 돕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카자흐는 동맹으로서 의무를 다할 것"이라며 러시아가 핵심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미묘한 줄타기였다. 카자흐는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는 반전시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러시아의 전쟁 상징인 Z 사인을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불법화했다.

이에 대해 카자흐의 사야사트 누르벡 의원은 시베리아 속담을 들었다. 곰이 친구 사이인 다람쥐 등을 두드려주는 척하다가 할킨 것 때문에 다람쥐 등에 줄무늬가 생겼다는 내용이다. 누르벡 의원은 "곰과 친구라면 아무리 친해도 항상 뒤를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카자흐는 지난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는 유엔총회 결의 표결에서 반대 대신 기권하면서 처음으로 러시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에 보잉 767편으로 의약품 26t 등 여러차례 지원해왔다. 이달초 카자흐 재무부가 대러 서방 수출 제재 일부를 따를 것임을 밝혔다.

카자흐의 이런 입장에 대해 러시아가 화를 내고 있다. 러시아 국영 TV 진행자 티그란 케오사얀은 "카자흐 사람들이여 도무지 감사할 줄 모르나.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를 보라. 그렇게 교활하게 하고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했다.

카자흐는 그런 협박에 익숙하다. 카자흐 인구의 20% 가량이 러시아인이며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카자흐 북부가 러시아 영토라고 주장해왔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름 반도를 합병할 당시 푸틴은 카자흐가 소련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까지 국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런 푸틴의 발언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카자흐가 유일하게 러시아와 접경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 남쪽에 자리한다. 이들 국가 모두 침공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공개적으로 돈바스 공화국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이 틈을 미국이 이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지난 4월 이래 미 당국자들이 이 지역을 빈번히 방문하고 있다. 우즈라 제야 인권특사에 이어 도널드 루 국무부 차관보도 지난 5월 카자흐,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다. 지난달에는 신임 미 중부 사령관 에릭 쿠릴라 중장이 이 지역을 순방했다.

러시아 국립과학아카데미 중앙아시아 담당 안드레이 그로진은 러시아가 미국의 카자흐 관여를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은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카자흐 정부가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기미를 보이면 국경이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더 길어 러시아에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카자흐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지도자들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라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첫 해외 방문국으로 타지키스탄을 방문해 "우리 동맹국과의 우호적 관계에 매우 만족한다"고 정상회담에서 밝혔다.

우즈라 제야 미 국무부 인권특사가 카자흐에 이어 방문한 키르기스스탄에서 루슬란 카자크바예프 외교장관과 미국과 키르기스스탄은 미국이 경제 및 교육 원조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카자크바예프 외교장관은 8일 뒤 러시아의 압력을 받아 사임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는 문화적, 경제적, 역사적 관계가 매우 깊다. 러시아는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에는 대공미사일 시험장이 있다.

지난 5월초 카자흐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1만명이 참여하는 나치독일 승전 기념 행진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러시아 국기, 요시프 스탈린 사진을 들고 군가를 불렀다.

러시아는 이들 국가의 최대 교역상대국이며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국내총소득(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타지키스탄의 4분의1, 우즈베키스탄의 10%를 차지한다.

서방이 제재를 시작한 이래 러시아를 경유하는 카자흐의 대유럽 교역이 절반 가량 중단됐다. 이에 따라 카자흐 당국자들은 새로운 교역로를 찾기 시작했다. 세계은행(WB)은 올해 카자흐 경제가 4.1% 위축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쟁 수주 뒤 카자흐 당국자들이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를 방문해 중간회랑 부활문제를 논의했다. 중간회랑은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지방, 튀르키예를 거쳐 유럽에 이르는 교역로다.

과거에는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활용하지 않던 교역로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국과 튀르키예는 물론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러시아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카자흐의 카스피해 연안 항구도시 악타우와 쿠릭이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1~4월 콘테이너 수송량이 지난해의 3배로 늘었다. 카자흐로서는 교역 다원화가 생존이 걸린 문제다. 러시아는 러시아를 거쳐 흑해 연한 노보로시스크항까지 이어지는 카스피해 파이프라인을 최근 2달 새 두 차례 차단했다. 카자흐는 이를 통해 석유의 80%를 수출해왔다.

최근 몇 년 새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의 안보를 책임지고 중국은 경제를 책임지는 등 역할을 분담해왔으나 이같은 관계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 4월 웨이핑허 중국 국방부장이 카자흐를 방문해 양국간 군사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카자흐는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와도 관계 강화에 적극적이다. 지난 5월초 토카예프 대통령이 앙카라를 방문 카자흐에서 군용 드론 합작 생산에 합의했다.

카자흐는 국방예산도 4410억 텐게(약 9억1800만달러)를 증액했다. 이 예산의 일부는 예비군을 늘리는데 사용된다. 카자흐는 또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을 보면서 군의 기동성을 높이고 재래식 전쟁과 사이버전쟁, 정보전쟁, 선거개입 등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전투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한 고위 당국자는 러시아의 야심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면 우리가 다음 차례가 될까"라고 반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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