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모형 복원' 논란 옛 본관(조선총독 관사)은 어떤 곳

이강은 2022. 7. 2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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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저자세 외교도 부족해 관계 개선을 호소하는 선물이라도 보내려는 것이냐. 이러다 조선총독부였던 중앙청 모형도 복원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민주당 신현영 대변인)

현재 구 청와대 본관 터에 있는 철거전 사진과 설명문
“청와대 구(옛) 본관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역대 대통령 집무실의) 초소형 모형물(미니어처)을 제작하려는 것이다. 청와대 관람객, 특히 2030 세대로부터 1993년 철거된 옛 본관에 대한 질문이 많았기 때문이다.”(국민의힘 이용호 의원,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주요 정책과제 업무보고를 하면서 청와대 활용 방안 중 하나로 옛 본관 모형 복원 계획을 밝힌 뒤 적절성 논란이 여야 정치권까지 가세해 확산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문체부는 “실제 건물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30년 전 모습을 관람객에게 안내하기 위해 작은 모형(미니어처) 제작을 검토한 것임을 알려드린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청와대 옛 본관이 대체 어떤 곳이길래 그럴까. 

25일 대통령기록관에 남아 있는 1993년 10월15일 옛 본관 철거 당시 자료에 따르면 청와대가 위치한 터는 1104년 고려조 숙종 9년부터 이궁터로 사용됐다. 이후 1395년 조선조 태조 4년 경복궁이 창건되며 신무문 밖 궁궐의 후원 역할을 했다. 경농당·오운각·융문당·융무당·벽화당·수궁 등의 건물이 있었다.

조선을 침략한 일제는 수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총독관사를 신축했으며, 그 외에 기존 건물들은 모두 철거했다. 1939년 9월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총독 9명 중 마지막 3명인 미나미 지로, 고이소 구니아키, 아베 누부유키가 해당 관사에 살았다. 해방 후인 1945년 12월부터 1948년 3월까지는 미 군정 사령관 존 리드 하지 중장이 관저로 썼다. 

미나미 지로는 데라우치 마사타케 다음으로 역대 조선총독 중 가장 악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인들에게 내선일체를 강조하고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하게 했다. 지원병 제도로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고, 창씨개명·한국어 사용 금지 등 조선 민족말살정책을 폈다. 19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건강을 이유로 1954년 가석방됐고, 이듬해 사망했다.

고이소 구니아키는 미나미 총독이 만든 지원병제를 학도병제로 강화, 강제 징병·징용, 근로 정신대, 일본군 위안부 등 만행을 저질렀다. 1950년 종신금고 복역 중 죽었다.

아베 누부유키는 재임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는 마지막 조선총독이다. 짧은 재임기간 동안 전임자들 못지않은 강경책을 통해 온갖 물자 수탈과 인력 징집을 강행했다. 국민의용대를 만들어 독립운동가 색출을 벌이기도 했다.
1945년 9월 하지 중장이 주도한 항복 조인식장에 나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아베는 철수 과정에서까지 조선의 물자를 쥐어짰다. 한국에 체류하던 일본인들의 본국 귀환비용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막대한 조선은행권을 찍어냈고, 이는 해방 후 우리 국민들이 인플레이션 공황을 겪게 했다.

옛 본관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8년 8월15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경무대(집무실+관저)로 쓰였다. 이후 1991년 9월3일까지 43년간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살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전반기인 1991년 10월 현재의 본관을 짓고 옮겼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정부는 “어둡고 쓰라렸던 과거를 청산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잡겠다”며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그해 10월15일 옛 본관을 철거했다. 다만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옛 본관 건물의 600대 1 축소 모형을 만들어 ‘효자동 사랑방’(청와대 사랑채 전신)에 전시했다. 건물이 철거된 터에는 지형의 원 상태대로 능선을 복원해 잔디를 입히고 기념 표석을 세웠다.

앞서 민주당은 문체부가 청와대 옛 본관 모형 복원을 추진키로 한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에 대한 저자세 외교도 부족해 관계 개선을 호소하는 선물이라도 보내려는 것이냐”라며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인지 의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현영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이러다 조선총독부였던 중앙청 모형도 복원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문체부는 일제의 잔재로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지어졌던 건물을 복원하겠다는 발상이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인지부터 분명하게 답하라”고 촉구했다.

비판 여론이 일고 문체부 추가 설명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국민의힘은 “오해에서 비롯된 비판은 자제해달라”고 밝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이용호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문체부의 청와대 구 본관 모형물 제작 검토에 대한 오해와 비판이 과도한 것 같아 문체위 여당 간사로서 입장을 밝힌다”며 “우선 청와대 구 본관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초소형 모형물(미니어처)을 제작하려는 것이다.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검토되고 있는 모형물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철거한 조선총독부 건물이나 조선총독관저(6년 사용) 모형이 아니다. 1948년 이승만 전 대통령 이래 43년 간 사용한 우리 대통령 집무실의 모형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참고로 지금 본관은 1991년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건립된 것으로, 그러다보니 청와대 관람객, 특히 2030 세대로부터 1993년 철거된 옛 본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며 옛 본관 모형 제작 검토 배경을 설명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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