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는 재정중독 사업이 아니다[정책과 딜레마](6)

2022. 7. 2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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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에 이명박 정부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모양새다. 정책의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회자한 말이 ABR(Anything But Roh)이었다. 우리말로 ‘노무현 정부가 하던 정책만 빼고 뭐든지’ 정도로 해석되는데 현실에선 ‘노무현 정부의 반대로만’ 혹은 ‘무조건 노무현 탓’ 등의 심리 상태로 정책을 결정함을 의미했다. 이 말의 원조는 2000년에 집권한 미국의 부시 행정부였다. 감세를 추진하는 동시에 대(對)중동·북한 등 주요 대외 정책을 모두 뒤집은 부시 정부의 정책기조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클린턴 정부가 하던 정책만 빼고 뭐든지’란 의미의 ABC(Anything But Clinton)가 등장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1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년 세제개편안’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 정부 탓’, ‘이재명표’는 그만

윤석열 정부가 최근 보이는 모습은 ‘문재인 정부가 하던 정책만 빼고 뭐든지’란 의미인 ABM(Anything But Moon)에 가까워 보인다. 탈원전 대신 원전 최강국을 내세우고, 재정 긴축과 법인세와 부동산 감세 기조를 분명히 했다. 여기에 기획재정부가 2023년 본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보도가 나왔다. 이미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지역화폐를 “국책연구기관(한국조세재정연구원)마저 경제 효과가 없다고 진단한 현금살포성 재정중독 사업”이라고 강력 비판하며 지역화폐 예산의 대폭 삭감을 예고하기도 했다.

향후 지역화폐는 정국의 핵심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15일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 추진’ 기사를 공유하며 “혹여나 ‘이재명표’ 예산으로 낙인찍어 정쟁의 소재로 삼을 생각이시라면 누가 했는지보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안에 담긴 국민의 삶을 봐주십시오”라고 밝힌 바 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정도 이어진다. 민주당은 8월에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구성하고,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9월 국회에 제출된다. 그 뒤엔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다. 국정감사에선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원한 지자체의 사무도 다뤄진다. 연말까진 예산안 심의가 이어진다. 지역화폐 논의를 어떻게 이끌어가느냐가 여야 모두에게 중요한 상황이다.

정권을 교체한 새 정부가 이전 정부의 정책을 뒤집거나, 정책의 방향을 선회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 가치와 근거에 기반을 두느냐다. 지역화폐의 새로운 방향을 정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정책과 딜레마’라는 이 연재글을 쓰면서 정책을 일부러라도 딜레마에 빠뜨려야 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래야 정책의 장단점을 균형 있게 인식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역화폐는 어떤 딜레마 속에 있을까.

지역화폐는 지역 내에서 통용되는 지불결제 수단으로 법률에 명시된 명칭은 ‘지역사랑상품권’이다. 2017년까진 고향사랑상품권으로 불렸다. 지역화폐 발행액은 2018년 3714억원에서 2019년 2조3000억원, 2020년 13조3000억원, 2021년 23조6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엔 30조원이 발행될 예정이다. 중앙정부가 부담하는 비용은 이 발행액의 4% 수준으로 주로 인센티브 지급에 활용됐다.

국내 지역사랑상품권은 크게 두가지 특징을 지닌다. 하나는 특정 지역 내에서만 통용되기 때문에 소비의 역외 유출을 막는다. 국내 광역 지자체 가운데 역외소비율은 2020년 하나카드와 신한카드 데이터로 한국은행이 추산한 결과 세종시가 59.7%로 가장 높고, 인천, 경북, 전남 순이다. 예상 가능하게도 서울이 20%대로 가장 낮고, 부산이 뒤에서 두 번째다. 요즘은 지역을 넘나들어 소비하는 것 외에도 대형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소비가 많다. 지역화폐는 이 역시도 지역 내 소비로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대부분의 지역화폐는 아직 온라인 결제가 불가능하며 지자체가 만든 공공 배달앱에 한정해 온라인 결제가 가능하다.

지역화폐의 두 번째 특징은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효과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가 지역화폐의 가맹점을 매출 10억원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이 특징은 이재명 지사 시절의 경기도가 주도해 만들었다. 본래 고향사랑상품권 시절엔 지자체가 조례로 가맹점 등록이 불가한 업종을 자체적으로 정하며 주로 유흥업소와 백화점, 대형마트 등에서의 소비를 제한했다. 경기도는 2019년 4월 청년기본소득과 산후조리비 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31개 시군의 지역화폐 발행을 지원하면서 ‘매출 10억원 이하’의 가맹점 기준을 만들었다. 이 기준은 2020년 전국 광역·기초 지자체로 지역화폐가 확대되면서 대부분 동일하게 채택됐다. 이 외에도 신용카드보다 낮은 결제 수수료(약 0.3%p)도 소상공인에겐 이득이다.

조세연 연구가 의미하는 것

지역화폐의 장점은 주로 두가지 특징인 지역 내에서 소비를 유도하고, 소상공인의 매출을 지원하는 효과에서 비롯된다. 단점은 지역화폐의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재정을 지출한다는 점이다. 관건은 지역화폐의 효과를 위해 어느 정도의 재정을 쓸 것인가에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역화폐의 효과가 없거나 부정적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인식의 근저엔 조세재정연구원(이하 조세연)의 연구가 있다. 그렇다면 조세연은 어떤 연구를 했을까.

인천 지역화폐인 ‘인천e음카드’의 홍보 포스터 / 인천시 제공


송경호·이환웅 조세연 부연구위원은 2020년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이란 보고서를 공개했고, 이를 재작성해 2021년 학술논문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의 경제적 효과: 소상공인 매출액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를 발간했다. 이들 연구의 핵심 내용은 두가지다. 첫째는 지역화폐의 역외 소비 방지 효과가 타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 경쟁을 유발해 사라진다는 것이다.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결국 모두가 이전처럼 소비를 하게 되고, 각 지자체의 예산만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역화폐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관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지역화폐로 인해 소상공인의 매출이 증가했다는 연구가 실은 ‘보조금의 효과’를 측정한 것이란 의견이다.

이런 조세연의 연구결과는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지역화폐가 지역 내 소비를 진작하는 효과는 많은 사람이 이미 체감한 바 있다. 2020년 5월 많은 사람이 지역화폐로 받은 재난지원금을 쓰기 위해 평소 다니지 않던 골목의 가게들을 찾았던 경험이 있다. 게다가 한국에선 대부분의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소비가 유출되는 현상이 심각한 편이다. 온라인 결제의 급증은 이런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조세연 연구의 문제점은 대형점포에서 매출 10억원 이하의 소상공인 매장으로 매출이 이전되는 효과를 누락했다는 점이다. 논문에서 매출 규모별로 매출의 변화를 측정한 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매장들 사이에서만 비교를 한다. 매출이 증대되는 효과가 대형 슈퍼마켓(165㎡ 이상)에서 14.1%, 상대적으로 작은 식료품 매장에선 8.2%로 측정됐다며 대형 매장의 매출 이전 효과가 더 컸다고 분석했다. 아예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없는 대형마트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소상공인들의 매출이 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아예 지역화폐가 사용 가능한 소형 점포로의 매출 이전 효과에 집중한 연구도 있다. 김건호 경기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2021년 12월에 발간한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 경기도를 중심으로’에선 재난지원금 사용 시점의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지역화폐 사용 가능 점포의 결제액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1.4~3.2%p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점점 진화하는 지역화폐

정리하면 지역화폐는 ‘재정중독 사업’이 아닌 재정으로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재정으로 얼마를 쓸지는 소상공인 지원의 중요성에 달려 있다. 조세연 역시 이를 인정하며 ‘온누리상품권’으로 재정 지원을 일원화하자는 대안을 제안한다. 온누리상품권은 2009년부터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발행하기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가맹점이 정체돼 있고 활성화되지 않는 데 반해, 지역화폐는 경기도가 2019년 4월부터 기초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을 지원한 이후 급속도로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로 확대됐다. 주민들의 정책 참여에 있어 지역화폐는 온누리상품권보다 월등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지역화폐의 운영 주체가 지자체란 점도 성공의 요인이다. 지자체들은 현장에서 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문제를 포착하고, 빠르게 개입하는 수단으로 지역화폐를 활용했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엔 인센티브를 한시적으로 늘려 발행했고, 서울 성북구에선 코로나19 재확산의 직격탄을 맞은 장위·석관·월곡동 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장석월 상품권’을 발행하며 신속하게 현장에 개입했다.

지역화폐는 지속적으로 진화 중이다. 이는 주로 새로운 기능을 더할 수 있는 지역화폐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처음 성남시가 청년기본소득이란 신규 복지정책을 도입할 때, 소상공인에게만 사용 가능한 지역화폐와 연계하며 ‘왜 청년만 지원하느냐’는 비판을 돌파했다. 경기도는 매출 10억원 이하의 소형 점포로 사용처를 제한했고, 이 역시 지역화폐의 핵심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인천시는 인천직구(온라인몰), e음장보기(전통시장 장보기), 나눔e음(기부) 등의 특화 서비스를 부가했다. 경기도와 대전 등은 지역화폐로 소비할 수 있는 지역의 공공 배달플랫폼을 만들어 소상공인이 지불하는 수수료를 낮추며 대형 플랫폼의 독점에 대항했다.

향후에도 지역화폐는 여러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문화예술이나 도서 구매 등에만 사용 가능한 지역화폐를 설계해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고, 대중교통 등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화폐 결제 기능을 부가할 수도 있다. 정부의 신규 복지정책이나, 업무추진비 등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도 방법이다. 즉 지역화폐는 다른 정책과 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끝으로 윤석열 정부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지역화폐 예산을 삭감하기 전에 지역 소상공인에게 혜택을 주는 다른 정책이 무엇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데도 이전 정부의 정책이란 이유로 폐지하려 한다면 그 후과는 뻔할 것이다. ABC, ABR의 귀결이 그랬듯이 말이다.

윤형중 정책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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