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방향성을 잃었다..'좌충우돌' 새정부 기후·에너지 정책

박상욱 기자 2022. 7. 2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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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1)
그래픽으로 보는 새정부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 (상)
'백년대계' 기후·에너지 정책, 어디로 향하나?

지구의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묶어야 한다. 이는 몇몇 운동가들의 말이 아닙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과 각국 정부가 과학적으로 확인하고, 만장일치로 합의한 '마지노선'이죠. 그 선을 넘어서면 어떻게 되는지, 넘어서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지난 140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 풀어왔습니다. 그 '마지노선'까지 남은 시간, 2022년 7월 24일 일요일 0시 기준으로 6년 11개월 27일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뿜어내고 있는 이산화탄소, 그 배출량을 줄이지 않았을 때를 가정한 결과입니다.

2022년 7월 24일 0시 기준, 지구 평균기온 1.5℃ 상승까지 남은 시간. (자료: MCC)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이 시계를 늦출(혹은 멈출)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새정부의 답이 최근 잇따라 나왔습니다. 새정부 에너지 정책과 환경 정책 방향이 공개된 겁니다. 주요 기간산업 및 발전 설비들의 수명이 최소 30년에 달하고, 메탄은 최소 10여년, 이산화탄소의 경우 200년 등 온실가스는 한번 뿜어져 나오면 대기중에꽤나 오랜 시간 머뭅니다. 새정부의 판단과 결정이 탄소중립의 성패를 가르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기후위기로 인한 각종 재난재해로 입을 직접적 피해규모와 기후위기 대응에 따른 간접적 피해규모를 결정짓는 것이죠. 모든 정권이 공히 5년의 시간을 부여받습니다만, 앞으로의 5년이라는 시간은, 그 시간 우리나라의 기후·에너지 정책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지난 5일, 제30회 국무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심의·의결한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번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차질없이 이행할 경우, 원전, 재생, 수소에너지의 조화를 통해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가 2021년 81.8%에서 2030년 60%대로 감소하여 2030년 화석연료 수입이 2021년 대비 약 4천만 석유환산톤(TOE)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에너지 신산업 창출과 수출산업화로 에너지혁신벤처기업이 2020년 2,500개에서 2030년 5,000개로 성장하여 일자리 약 10만개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 정부가 설명한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의 기대효과'입니다.

대한민국 온실가스 배출의 87.2%(2019년 기준)는 에너지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새정부 정책 비전의 제일 첫 단어 역시 '기후변화 대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효과'와 '향후계획'에선 에너지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각오나 기대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이날 정부는 발전믹스의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2021년 기준 27.4%인 원전의 발전비중을 2030년 30% 이상으로 높이는 한편,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은 기존 2030년 목표인 30.2%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존 목표가 '불합리'하다는 것으로, 이는 목표 하향을 시사합니다. 노후한 석탄화력발전소는 LNG로 대체하는 한편, 글로벌 수급 대란이 일고 있는 LNG의 경우 중동 의존도를 완화하고 전략비축을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연도와 숫자가 언급되면서 얼핏 합리적·논리적으로 보이지만 그 숫자를 살펴보면 자연스레 의문이 생깁니다. '2030년에 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것인가'하는 의문 말입니다.

2030년, 원전의 발전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불과 4% 포인트 가량입니다. 그런데 화석연료의 수입의존도는 현재 81.8%에서 60%대로 크게 낮춘다는 계획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석유나 석탄을 캐지 않는 이상, 석탄과 LNG 등 화석연료 발전을 줄이고, 내연기관차 비중을 줄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여기에 재생에너지 발전비중도 기존 목표보다 낮춘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LNG화력발전소로 대체한다는 계획 역시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대폭 줄인다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유연탄도 LNG도 모두 수입산이니까요.

“원전과 재생에너지, 수소의 조화로 화석연료 비중을 낮추겠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같은 내용도 발표했습니다. 민간 중심으로 해외자원개발 산업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에 있어 “민간 리스크 완화를 위한 공기업-민간-정부의 협력을 확대한다”고요. 여기까지 보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성공사례 등 예시를 보면 또 다시 의문이 생깁니다.

정부는 베트남 15-1광구(석유공사-SK이노베이션), UAE 할리바 유전(석유공사-GS에너지) 개발은 성공사례로, 향후 지원 분야 예시로는 해외 유전·가스전 개발 기술, 유전·광산의 공정 자동화를 꼽았죠. 화석연료의 비중을 낮추고, 수입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과는 그 방향이 분명 달라 보입니다.

발전믹스에 대해선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임기 내 화력발전 비중을 40%대로 낮추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습니다. 임기(2027년 5월) 안에 40%대로 낮아진다면, 2030년 화력발전 비중은 40% 또는 그 이하가 될 것입니다. 화력발전 비중의 감축이라는 방향성은 임기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원전과 신재생의 비중이 최소 60%를 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 담긴 '기존 목표 대비 원전 비중은 늘리고 신재생 비중은 조절한다'는 기조로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인 셈이죠.

'원전의 비중을 40%로 높이면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2030년까지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글로벌 평균 원전 공사기간은 93개월에 달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글로벌 평균 대비 압도적으로 빠른 56개월입니다만, 이는 '공사기간'만을 따진 시간입니다. 새로운 원전을 지을 부지를 선정하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리죠. 대통령의 임기 내에는 물론이거니와, 2030년까지 원전 발전량을 대폭 늘리는 일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결국, 화력발전 감축과 화석연료 수입의존도 감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입니다. 가능한 한 최대로 탈탄소 전원을 늘리는 일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8일, 환경부는 정부의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 발맞춘 환경 정책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이날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지키되, 부문별 감축목표를 다시 설계하겠다”며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과 연계해 원전의 역할을 늘려 발전부문의 온실가스를 최대한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확보한 감축 여유분을 활용해 산업부문 감축 부담을 낮춘다는 것이었죠.

다른 부문의 감축 부담을 줄일 수 있을 만큼 발전부문의 온실가스를 줄여내는 일, 지금의 에너지 정책 방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일단, 기존 목표 대비 원전 비중을 늘리고, 신재생 비중을 줄이는 일은 결국 온실가스 측면에선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셈입니다. 그것도, 각각 늘리고 줄이는 비중이 같을 때에나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종류에 상관 없이 각종 탈탄소 전원을 최대로 늘리겠다'고 해도 모자란 상황입니다.

정부는 이번 에너지 정책 방향을 발표하기에 앞서 “산업계·학계·시민단체 등 대상으로 에너지위원회, 공청회, 토론회, 간담회 등 20여회 개최했다”며 전문성을 강조했습니다. 과연, 여기에 참석한 전문가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이미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원전 밀도가 높은 한반도에 2030년까지 몇 기의 원자로를 더 설치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일까요.

최근 10년간 원전의 발전량이 가장 많았던 때는 2015년이었습니다. 연간 164.8TWh를 발전해 그해 원전의 발전 비중은 31.2%에 달했습니다. 2030년, 원전의 발전 비중이 30%가 되려면 연간 최소 183.7TWh를 발전해야 합니다. 2050년, 발전 비중 30%를 유지하려면 연간 최소 377.3TWh를 발전해야 하죠. 해마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과거의 30%와 오늘의 30%가 갖는 무게감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아직 지어본 적은 없지만, 현재 우리가 건설할 수 있는 가장 최신의 원전은 APR+ 원전입니다. 1기당 설비용량은 1500MW로, 연간 11TWh 가량의 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030년에도 2050년에도 원전의 비중이 30%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답을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당장 내년부터 2045년까지 해마다 최소 1기의 원자로를 건설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저 '지금 있는 원전을 더 쉴 틈 없이 돌려서'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죠.

이는 국무회의를 통과한 범정부 차원의 '정책 방향'입니다. 원전만 해도, 공사에만 6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고, 한번 지으면 60년을 사용합니다. 흔히들 에너지 정책은 백년대계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군소 기관의 연구결과가 아닌 만큼, 20여 차례에 걸쳐 전문가 회의를 거친 만큼, 어디에 얼마나 지을지, 염두에 둔 장소나 규모도 없이 '30% 이상'이라는 '정책 방향'을 내놓은 것은 아니겠죠. 또한, 이 숫자가 그저 '임기 중 30% 이상'만을 의미할 뿐, 그 이후는 모른다는 무책임한 계획도 아닐 겁니다.에너지 정책은 연속성을 갖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일이며, 정부가 직접 '원전 생태계의 활력 복원'을 약속했으니 말입니다. 이 약속이 5년짜리 시한부 약속이라면, 즉 '새 부지에 새 원전을 추가로 짓는 일'이 없다면, 원전의 발전비중은 2050년 10%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나올 세부 계획에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시간과 장소뿐 아니라 비용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1기당 5조원 가량의 공사비가 투입되는 만큼, 해마다 최소 1기씩은 더 지으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니까요. 물론, 20여 차례의 회의를 통해 시간과 장소뿐 아니라 비용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을 거라 기대해봅니다.

환경부의 정책 방향 발표에선 원전에 대한 민간 투자와 관련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K-택소노미(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하겠다고 한 것이죠. 이 같은 내용의 택소노미 개정을 9월까지 확정하겠다는 계획입니다만, 그 길은 험난해 보입니다. 당장 사회적 합의를 얻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환경부는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EU가 택소노미에서 부여한 안전기준을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러 기준 가운데 핵심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①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 핵연료(ATF) 이용해야 한다.
②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등 폐기물 처리와 폐로 계획 등 요구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유럽에서든 한국에서든, 위의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서 원전을 짓는 일은 현재로써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한 R&D 투자가 '녹색 투자'로 분류될 수는 있지만, 당장 원전 건설에 자금을 투입하는 일이 '녹색 투자'로 분류될 수는 없는 것이죠.

물론, 이는 한국에서 큰 문제가 되진 않을지도 모릅니다. 택소노미는 투자자들이 참고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과 같습니다. 설령 원전이 택소노미에 포함되지 않는다 해서 원전 건설이 불법인 것도 아니거니와, 국내의 경우 원전을 국가의 돈으로 짓는 만큼, 택소노미 개정 없이도 원전 건설 비용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위의 기준은 앞으로의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민간 투자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이 기준을 충족할 기술력을 가진 곳과 계약을 맺으려 할 테니까요.

기후위기는 미래의 일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고, 기후·에너지 정책은 이러한 현실과 더불어 100년 앞을 내다봐야 할 중요한 정책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를 무시한 채 추진된 정책의 결과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탈석탄을 외쳤음에도 오늘도 여전히 공사가 진행중인 강원도의 석탄화력발전소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부디, 앞서 열렸던 20여 차례의 전문가 회의와 앞으로 펼쳐질 정책이 그저 '5년의 임기'만을 바라본 것이 아니기를 바라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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