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방향성을 잃었다..'좌충우돌' 새정부 기후·에너지 정책
그래픽으로 보는 새정부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 (상)
'백년대계' 기후·에너지 정책, 어디로 향하나?
지구의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묶어야 한다. 이는 몇몇 운동가들의 말이 아닙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과 각국 정부가 과학적으로 확인하고, 만장일치로 합의한 '마지노선'이죠. 그 선을 넘어서면 어떻게 되는지, 넘어서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지난 140회에 걸친 연재를 통해 풀어왔습니다. 그 '마지노선'까지 남은 시간, 2022년 7월 24일 일요일 0시 기준으로 6년 11개월 27일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뿜어내고 있는 이산화탄소, 그 배출량을 줄이지 않았을 때를 가정한 결과입니다.
지난 5일, 제30회 국무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심의·의결한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민국 온실가스 배출의 87.2%(2019년 기준)는 에너지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새정부 정책 비전의 제일 첫 단어 역시 '기후변화 대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효과'와 '향후계획'에선 에너지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각오나 기대는 찾을 수 없습니다.
2030년, 원전의 발전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불과 4% 포인트 가량입니다. 그런데 화석연료의 수입의존도는 현재 81.8%에서 60%대로 크게 낮춘다는 계획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석유나 석탄을 캐지 않는 이상, 석탄과 LNG 등 화석연료 발전을 줄이고, 내연기관차 비중을 줄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여기에 재생에너지 발전비중도 기존 목표보다 낮춘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LNG화력발전소로 대체한다는 계획 역시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대폭 줄인다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유연탄도 LNG도 모두 수입산이니까요.
정부는 베트남 15-1광구(석유공사-SK이노베이션), UAE 할리바 유전(석유공사-GS에너지) 개발은 성공사례로, 향후 지원 분야 예시로는 해외 유전·가스전 개발 기술, 유전·광산의 공정 자동화를 꼽았죠. 화석연료의 비중을 낮추고, 수입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과는 그 방향이 분명 달라 보입니다.
발전믹스에 대해선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임기 내 화력발전 비중을 40%대로 낮추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습니다. 임기(2027년 5월) 안에 40%대로 낮아진다면, 2030년 화력발전 비중은 40% 또는 그 이하가 될 것입니다. 화력발전 비중의 감축이라는 방향성은 임기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원전과 신재생의 비중이 최소 60%를 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 담긴 '기존 목표 대비 원전 비중은 늘리고 신재생 비중은 조절한다'는 기조로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인 셈이죠.
이런 상황에서 지난 18일, 환경부는 정부의 '새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 발맞춘 환경 정책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른 부문의 감축 부담을 줄일 수 있을 만큼 발전부문의 온실가스를 줄여내는 일, 지금의 에너지 정책 방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일단, 기존 목표 대비 원전 비중을 늘리고, 신재생 비중을 줄이는 일은 결국 온실가스 측면에선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셈입니다. 그것도, 각각 늘리고 줄이는 비중이 같을 때에나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종류에 상관 없이 각종 탈탄소 전원을 최대로 늘리겠다'고 해도 모자란 상황입니다.
최근 10년간 원전의 발전량이 가장 많았던 때는 2015년이었습니다. 연간 164.8TWh를 발전해 그해 원전의 발전 비중은 31.2%에 달했습니다. 2030년, 원전의 발전 비중이 30%가 되려면 연간 최소 183.7TWh를 발전해야 합니다. 2050년, 발전 비중 30%를 유지하려면 연간 최소 377.3TWh를 발전해야 하죠. 해마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과거의 30%와 오늘의 30%가 갖는 무게감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아직 지어본 적은 없지만, 현재 우리가 건설할 수 있는 가장 최신의 원전은 APR+ 원전입니다. 1기당 설비용량은 1500MW로, 연간 11TWh 가량의 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030년에도 2050년에도 원전의 비중이 30%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답을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당장 내년부터 2045년까지 해마다 최소 1기의 원자로를 건설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저 '지금 있는 원전을 더 쉴 틈 없이 돌려서'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죠.
이는 국무회의를 통과한 범정부 차원의 '정책 방향'입니다. 원전만 해도, 공사에만 6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고, 한번 지으면 60년을 사용합니다. 흔히들 에너지 정책은 백년대계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군소 기관의 연구결과가 아닌 만큼, 20여 차례에 걸쳐 전문가 회의를 거친 만큼, 어디에 얼마나 지을지, 염두에 둔 장소나 규모도 없이 '30% 이상'이라는 '정책 방향'을 내놓은 것은 아니겠죠. 또한, 이 숫자가 그저 '임기 중 30% 이상'만을 의미할 뿐, 그 이후는 모른다는 무책임한 계획도 아닐 겁니다.에너지 정책은 연속성을 갖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일이며, 정부가 직접 '원전 생태계의 활력 복원'을 약속했으니 말입니다. 이 약속이 5년짜리 시한부 약속이라면, 즉 '새 부지에 새 원전을 추가로 짓는 일'이 없다면, 원전의 발전비중은 2050년 10%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나올 세부 계획에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시간과 장소뿐 아니라 비용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입니다. 1기당 5조원 가량의 공사비가 투입되는 만큼, 해마다 최소 1기씩은 더 지으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니까요. 물론, 20여 차례의 회의를 통해 시간과 장소뿐 아니라 비용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을 거라 기대해봅니다.
①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 핵연료(ATF) 이용해야 한다.
②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등 폐기물 처리와 폐로 계획 등 요구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유럽에서든 한국에서든, 위의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서 원전을 짓는 일은 현재로써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한 R&D 투자가 '녹색 투자'로 분류될 수는 있지만, 당장 원전 건설에 자금을 투입하는 일이 '녹색 투자'로 분류될 수는 없는 것이죠.
물론, 이는 한국에서 큰 문제가 되진 않을지도 모릅니다. 택소노미는 투자자들이 참고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과 같습니다. 설령 원전이 택소노미에 포함되지 않는다 해서 원전 건설이 불법인 것도 아니거니와, 국내의 경우 원전을 국가의 돈으로 짓는 만큼, 택소노미 개정 없이도 원전 건설 비용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위의 기준은 앞으로의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민간 투자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이 기준을 충족할 기술력을 가진 곳과 계약을 맺으려 할 테니까요.
기후위기는 미래의 일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고, 기후·에너지 정책은 이러한 현실과 더불어 100년 앞을 내다봐야 할 중요한 정책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를 무시한 채 추진된 정책의 결과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탈석탄을 외쳤음에도 오늘도 여전히 공사가 진행중인 강원도의 석탄화력발전소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부디, 앞서 열렸던 20여 차례의 전문가 회의와 앞으로 펼쳐질 정책이 그저 '5년의 임기'만을 바라본 것이 아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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